[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7) 베트남 정치는 안정적인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한우 서강대 교수
입력 2020-04-26 18: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하노이 홍강 강변에서 이한우 교수]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7) 
베트남 정치는 안정적인가?
 


-----------------------------------------------------------------------------
아주경제는 베트남 개혁·개방을 연구하는 최고 전문가인 서강대 이한우 교수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는 베트남의 개혁 과정을 톺아보고 분석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이한우 교수는 서강대에서 베트남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개혁으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 관계 20년> 등의 책과 베트남 개혁에 관한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냈다. [편집자 주]
-----------------------------------------------------------------------------


정치적 안정과 부패

흔히 베트남 개혁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정치적 안정을 꼽는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건과 같이 사회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일이 베트남에 없었다는 점에서는 안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과연 베트남 정치는 안정적인가?

베트남 정치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관료들의 부패다. 공산당 당원들이 주요 관직을 겸직하고 있어, 당원들이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대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산당 최고위 지도자들도 부패가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노이 택시 기사들도 부패가 공산당 1당 통치로 인해 생긴다고 4, 5년 전부터 얘기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공산당과 정부는 부패 척결을 강조해 왔지만 실질적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일찍이 1997년에 북부 홍강 델타의 타이빈(Thai Binh)성 7개 현 중 6개 현에서 농민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그 1년 후 국가주석이 이 지역을 방문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어느 시위에는 시위자들이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농민들은 세금 이외에 지방정부에 내는 부담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하면서 일이 확대됐다. 농민들은 지방 관료들이 공금을 착복한 것에 분노하여 그들을 구타하고 그 재산을 강탈하며 건물을 불태웠다. 1998년에는 그 옆 남딘(Nam Dinh)성에서도 유사한 농민 시위가 발생했다. 공산당과 정부는 급히 조사단을 파견하였고, 부패한 지방 관료들을 해직시켰다. 기층 민주화를 도모하는 규칙을 발령했고, 지방정부의 발전계획·토지활용정책 등을 공지하도록 규정했다. 정부가 급하게 해결책을 마련했지만, 이런 일이 다시 생길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개혁과정에서 경제적 이권을 챙기려는 시도는 계속하여 발생했다. 특히, 응우옌떤중(Nguyen Tan Dung)이 총리를 담당했던 2006~2016년에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 즉 비경제적 수단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가 확산됐다. 이에 응우옌푸쫑(Nguyen Phu Trong)을 선두로 하는 보수적 인사들이 이들을 제어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016년 1월 응우옌푸쫑이 총비서로 재선임된 후 반부패운동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반부패운동에서 획기적 사건은 2017년 12월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호찌민시 당 위원회 비서 딘라탕(Dinh La Thang)을 전격 체포한 것이었다. 법원은 그에게 페트로베트남 사장 시절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30년 형을 선고하였다. 2020년 1월 공산당 중앙감찰위원회는 정치국 위원이며 하노이시 당위원회 비서 황쭝하이(Hoang Trung Hai)와 전임 정치국원 겸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 레타인하이(Le Thanh Hai)에게 징계를 내렸다. 황쭝하이에게는 2007~2016년 부총리로 있던 기간 중 타이응우옌 철강공사 확장사업(TISCO II 프로젝트) 집행과정에서 관리감독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레타인하이는 2001~2006년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주석, 2006~2016년 호찌민시 당위원회 비서로 있었다. 그는 임기중 호찌민시 2군 투티엠(Thu Thiem) 지역의 개발사업 집행과정에서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받았다. 투티엠은 호찌민시 1군에서 사이공 강 건너편에 있는 개발지로서 눈독을 들일 만한 곳이다. 이들 외에도 전임 부총리, 장관, 장군, 경찰 간부 등 많은 이들이 부패로 처벌받았다.

공산당은 2020년 1월 중앙감찰위원회 총괄회의에서 2016~2019년 110개 당 조직을 감찰하였고 당원 5만여명을 징계했다고 발표했다. 징계를 내린 인사들에는 현직 정치국 위원 2명, 중앙위원회 전·현직 위원 21명, 경찰간부 38명 및 장군 23명 등이 포함됐다. 전·현직 정치국 위원을 징계조치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단한 일이다. 최근의 반부패운동은 공산당과 정부의 신뢰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20년 초 발표된 베트남부패지표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49%의 응답자가 현 반부패운동이 효과적이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호찌민시 13%, 하노이 35%였다. 국민들은 부패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베트남 농촌 풍경. 사진@이한우 2017]

 


토지 분규와 시위

하노이나 호찌민시 거리를 걷다 보면 어쩌다 시위대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 도시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보통 토지 보상 요구와 중국에 대한 반대로 발생한다. 토지 분규는 개발사업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며, 정부와 종교단체 간에도 발생한다. 농민들은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보내기도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위에 나서게 된다. 몇 년 전 하노이 인근 흥옌(Hung Yen)성 반장(Van Giang) 지역에 ‘에코파크’라는 신거주지를 개발하며 분규가 발생했다. 응우옌떤중 총리 딸의 회사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 호찌민시 투티엠 지역은 그야말로 핫스팟이다. 정부가 1996년 투티엠 신도시 건설계획을 승인했는데, 호찌민시와 건설부가 구체적 계획도 없이 사업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호찌민시는 1996년 계획도를 분실했다고 하였고, 그 계획도의 존재 여부로 논쟁이 이어졌다. 또한 이주과정에서 부당한 토지 수용, 불충분한 보상 등으로 분쟁이 계속됐다. 이에 주민들이 2018년 5월 시 인민의회 의원들과의 회합에서 강력히 항의했고, 일부 주민들은 하노이에 가서 항의를 지속해 왔다. 토지를 둘러싼 갈등은 여러 지역에서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편 중국에 대한 시위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공세적으로 나서며 확산됐다. 중국이 베트남전쟁 기간에 북베트남을 적극 지원했지만 1974년 파라셀 군도의 남베트남 지배 지역을 점령하고 이후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세력을 확장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계속하여 갈등을 빚어 왔다. 중국의 공세는 특히 베트남의 경계심을 높였고,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2018년에 베트남 정부가 북부 번돈(Van Don), 중부 냐짱 인근 박번퐁(Bac Van Phong), 남부의 푸꾸옥(Phu Quoc) 세 지역에 특구를 설치하고 99년간 토지를 임대해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이에 국민들은 특구법이 통과되면 중국 자본이 밀려들어 이 지역을 잠식할 것이라며 전국적 반대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반(反)중국 구호를 적은 종이를 들고 시위에 참여해 전 국민적 저항을 표시했다. 일부 국민들은 중국에 우호적인 정치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블로그에 올렸고, 결국 특구법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호찌민시 1군에서 사이공 강 건너 본 투티엠 지역. 사진@이한우 2016]

 

체제 비판과 제2의 쇄신

외부 관찰자들은 베트남이 아직 개인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프리덤 하우스도 정치적 권리 7점, 시민적 자유 5점으로 베트남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들은 베트남이 공산당 1당 통치를 해소하고 다원화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국내에서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까지 주로 개인적 수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조직화된 활동은 주로 해외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반체제운동은 베트남 국내에서도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해외 단체들과 연계되었다. 그간 설립된 반체제 정당들로 해외에서 ‘비엣떤(Viet Tan, 베트남혁신혁명당)’, 위민당, 베트남 내에는 베트남인민민주당, 베트남민주당, 베트남승진(昇進)당 등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 가운데 현재 ‘비엣떤’이 비교적 활동적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임시베트남국정부’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 반체제 조직들은 남부 출신 인사들이 이끄는 경우가 많다. 통일 이전 남베트남인 베트남공화국을 복구하는 데 목표를 둔 단체도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테러단체로 규정한다. 한편 평화적 방법을 통해 현 체제를 자유민주주의 다원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들도 있다.

베트남 국내에서 대규모 조직화의 양상을 나타낸 것은 ‘블록 8406(Bloc 8406)’이었다. ‘블록 8406’은 2006년 4월 8일 118명의 서명으로 “베트남 자유민주 선언”을 발표했다. 공산당도 참여한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다원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변호사, 지식인, 종교인 등이 이에 참여했다. ‘블록 8406’은 그해 11월 하노이에서 개최된 APEC 회의를 전후해 일련의 활동을 벌였지만, 이후 베트남 당국이 그 지도자들의 검거에 나서면서 수면 아래로 침잠하게 됐다. 지도자 역할을 하던 변호사 응웬반다이(Nguyen Van Dai), 레티꽁년(Le Thi Cong Nhan), 응웬반리(Nguyen Van Ly) 신부 등이 체포돼 3-4년 형을 선고받았다.
비판적 인사들 중에는 체제 내 비판자들도 있다. 영어로 ‘loyal opposi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중에는 전직 연구소장들도 여러 명 있다. 중앙경제관리연구원장 레당조아인(Le Dang Doanh), 사회학연구소장 뜨엉라이(Tuong Lai), 발전연구원장 응우옌꽝아(Nguyen Quang A)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직언하는 ‘선비’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이다.

근래 베트남 내외에서 가장 효과적 비판은 블로거들이 수행하고 있다. 베트남의 인터넷 사용자는 전 인구의 70%에 이르렀다. 베트남에는 페이스북, 구글, 유투브 사용자가 많다. 인터넷 사용자 중 페이스북 사용자는 80%에 달한다. 인터넷을 통한 체제 비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그중 ‘아인바삼’(Anh Ba Sam), ‘보크사이트 베트남’(Bauxite Vietnam), ‘전람바오’(Dan Lam Bao), ‘띠엥전’(Tieng Dan)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버섯 엄마’라는 뜻인 ‘매넘’(Me Nam) 명의로 활동하던 블로거가 수감됐다가 미국으로 추방된 일도 있었다.

베트남이 정치적 안정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부패, 토지 분규 등 문제는 통치자들이 서둘러 해결책을 내 집행하면 될 일이다. 베트남이 지금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1당 통치의 정당성으로 과거 역사적 역할과 사회주의 건설의 영도적 역할을 여전히 내세운다. 논리가 구태의연하다. 체제 전환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복리를 증진하고 저변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사회경제 발전을 도모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1986년 베트남이 ‘도이머이’를 선포할 때 사고의 쇄신이 있었듯이, 지금은 제2의 쇄신이 필요한 때다. 어떤 체제든 물리력을 동반한 ‘권력’에 의존한 정치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과제는 자발적 동의에 기반한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