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만의 중국몽 좌초위기 .. 시진핑 '예술정치'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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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0-04-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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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요즘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동안 GDP성장률 지상주의로 국력을 키워왔는데 중국의 GDP성장률도 마땅치 않고, 대체할 만한 수단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17일 발표한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6.8%였다. 비록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중단된 탓이긴 하지만, 분기별 GDP성장률이 발표되기 시작한 1992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한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시작한 때로부터는 42년 만에 처음이다.

내년 2021년은 1921년 상하이(上海)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8년 전 2012년 11월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은 “두 개의 100년”이라는 목표를 인민들에게 제시했다. 내년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는 ‘샤오캉(小康)’을 달성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중산층이 충분히 확보된 샤오캉과 중국의 꿈 달성 여부는 모두 GDP성장률과 연결시켜 놓았다.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8% 정도. 미국은 23.9%이다. 중국의 꿈이란 서양 제국주의의 침공을 받기 전인 1820년 세계인구의 36%를 가진 청(淸) 왕조의 GDP가 당시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중국의 GDP는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미국과의 거리는 아직 제대로 좁히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을 중단시키는 바람에 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미국과의 GDP 경쟁 전망이 헝클어져 버렸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9년 12월 30일 우한(武漢) 중심의원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친구 의사들에게 SNS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발견됐다”고 알리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시간을 리셋(reset)할 수 있다면 2019년 10월 31일 그날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날 중국공산당은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폐막했다. 28일부터 나흘간 개최된 4중전회에서 채택된 결정 내용을 담은 공보(公報)의 핵심은 치리(治理 · Governance) 체계의 현대화에 관한 결정이었다. 결정의 내용은 “2035년까지 국가 치리 체계와 능력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중화인민공화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는 치리 체계와 능력의 현대화를 전면적으로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40년간 빠른 발전을 해온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제대로 펼쳐보겠다는 꿈을 새로운 정치 목표로 설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시진핑 총서기에게는 2035년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2019년 12월 30일 의사 리원량이 발견한 폐렴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Covid-19로 인한 것이었고, 얼마 안 가 우한(武漢)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이라는 국가의 거버넌스 수준이 밑바닥까지 공개됐다. 1840년 청 왕조가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에 패배해서 반(半) 식민지 상태에 빠진 직후 들었던 ‘동아시아의 병자(病夫)’라는 말까지 다시 듣게 됐다. 시진핑 총서기로서는 막을 틈도 없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확진자 수에 브레이크를 걸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우한 외부로 통하는 교통을 차단하는 도시봉쇄를 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속수무책이었던 후베이(湖北)성 당서기를 교체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었다. 다행히도 2월 13일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 당서기를 경질하고, 잉융(應勇) 상하이 시장 겸 당 부서기를 후베이에 투입하자 확진자 숫자 증가 추세가 잡히기 시작했다. 인민은행 행장조리 출신으로 경제통이던 장차오량 전 후베이 당서기가 잡지 못해 폭증하던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를 무장경찰 출신의 잉융 신임 당서기는 발령 나흘 만에 네 자리 숫자를 세 자리 숫자로 꺾어놓는 실적을 보여주었다. 장차오량 전 후베이성 당서기는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된 성 인민대표대회에서 2019년에 7.5%의 GDP성장률을 보고했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무력했다.

더구나 놀랍게도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G5국가들의 거버넌스가 무력하게 무너지는 바람에 중국이 바이러스 발생국에서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으로 놀라운 변신을 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일단 국내정치적으로 다급한 위기는 벗어났다. 이제 시진핑 당 총서기가 우선 해결해야 할 정치일정은 해마다 3월 3일이면 규칙적으로 개최해오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3월 5일의 인민대표대회 개최, 이른 양회(兩會)를 회복하는 일이다. 양회는 전국 31개 지방 성·시·자치구(省市自治區)에서 개최한 다음 수도 베이징에서 전국의 인민대표들이 모여 개최하는 중국 정치행사 가운데 인민들에게 공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연례 정치행사다. 양회(兩會)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가 끝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끄는 개혁개방 시대가 시작된 1983년 이래 37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무기 연기된 가운데 아직도 개최일정 발표를 못하고 있다. 전국 31개 지방 양회 가운데 이미 29개 지방 정부의 양회는 바이러스 확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 1월말까지 회의를 마쳐놓은 상태다. 하지만, 인민대표 3000여명, 정치협상회의 대표 2000여명에 회의 진행 요원까지 하면 모두 1만여명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여 3주 넘게 회의를 해야하는 양회의 개최 일자를 중국공산당은 선뜻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오는 26일 개최한다고 공고한 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회에서 5월 중순 정도의 개막일자를 결정해서 발표할 가능성은 있다. 2003년 사스(SARS) 때도 연기하지 않았던 양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상황은 개혁개방 4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시진핑 총서기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정치과제는 내후년인 2022년에 두 번째의 5년 임기가 끝나기 이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어떤 형태로든 발표해야 하는 일이다. 개혁개방 40년을 이끌어온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두 전임 당총서기 모두 두 번째 5년 임기 중반에 열린 4중전회를 하면서 후계자를 공개하는 정치관례를 만들어왔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런 전통을 무시한 채 2018년 3월 12일 전인대 회의를 통해 헌법에 규정된 국가주석 3연임 금지조항을 삭제함으로써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19기 중앙위원회 4중전회 때에는 후계자를 공개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대신 내세운 것이 “국가 치리 체계와 치리 능력의 현대화”였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16일 후춘화(胡春華) 정치국원 겸 부총리가 14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과 후난(湖南)성 농촌을 순회 시찰하면서 “봄 농사(春耕)와 돼지 사육을 독려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1963년생으로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의 후춘화 부총리는 2012년 시진핑이 당 총서기에 선출될 당시 전임 후진타오가 후계자로 지정해준 인물이다. 인민일보의 지난 16일 후춘화 동정 보도는 후춘화가 오는 2022년 제21차 당 대회 이전에 시진핑의 후임 당 총서기로 공개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중국공산당 간부들에게는 받아들여질 것이었다. 시진핑의 후계자 선정과 관련,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홍콩 미디어들은 2022년 21차 당 대회에서, 또는 그 이전에 후계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후춘화 이외에 천민얼(陳民尒·1960년생) 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딩쉐샹(丁薛祥·1962년생) 정치국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우리의 당 사무총장 격)도 거론하고 있다.

시진핑의 정치적 자산 가운데 가장 든든한 것은 풍부한 인맥이다. 시진핑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경제참모였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후광 때문에 ‘태자당(太子黨)’으로 분류되는 데다가, 문화혁명 후반부인 1969~74년 기간에 중국공산당 혁명의 고향인 산시(陝西)성에 스스로 하방(下放)해갔을 때 알게 된 산시인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위에 칭화(淸華)대학 인맥에 왕년의 국방부장 겅바오(耿彪)밑에서 현역으로 복무할 때 엮어진 군 인맥, 허베이(河北)성에서 현(縣) 당 위원회 서기 시절에 맺어진 허베이 인맥, 푸젠(福建)성 여러 도시 시장과 푸젠 성장 시절에 쌓은 푸젠 인맥, 2002~2007년에 저장(浙江)성 당서기와 성장을 하면서 함께 고생한 저장 인맥, 2007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시절 연결된 상하이 인맥 등 전임자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부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코로나19가 조성해놓은 정치환경은 2003년의 사스(SARS · 급성호흡기 증후군) , 2009년의 조류독감 스와인 플루(H1N1), 2013년의 메르스(MERS)에 이은 2019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은 시진핑 총서기에게 “6년마다 잇달아 중국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진핑이 과연 코로나19 이후의 중국 국내정치에서 자신이 저장성 당서기 시절에 썼던 책 ‘즈장신어(之江新語)’에 나오는 “예술 같은 통치술(領導藝術)”을 보여줄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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