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9)'퍼' 먹으면 눈물난다, 베트남의 '인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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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조선대 교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입력 2020-04-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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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교수]


[베트남 ZOOM IN] 필자 안경환(安景煥) 전)조선대학교 교수 = 1955년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으며, 베트남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생활 베트남어회화>, <행복한 한-베 다문화가정을 위한 길잡이>, 역서로는 호찌민의 <옥중일기(獄中日記)>, 응우옌주의 <쭈옌 끼에우>, 당투이쩜의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 꾸었네>, 보응우엔잡 장군의 회고록 <잊을 수 없는 나날들>, 베트남어 번역서로는 권정생의 <몽실 언니>, <한국전래동화>가 있고, <김동인 단편선>은 팜꽝빈과 공역하였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문화진흥공로 휘장, 평화우호 휘장을,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 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고, 베트남문학회로부터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10월 12일에는 하노이 수복 60주년 기념으로 하노이시로부터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받았다. 2014년부터 6년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했다.[편집자 주]


 

[분짜]





베트남 속담에 “조화를 이룬 친구들이 동해라도 비운다.”는 말이 있다. 베트남 문화는 분열과 갈등이 아닌 단결과 조화, 중화의 문화적인 특성이 있다. ‘퍼(phở)’가 바로 단결과 조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음식이다, ‘퍼(phở)’에는 5가지 맛이 있다.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이 있지만 서로 어울려줌으로써 중화의 맛을 낸다. ‘퍼(phở)’의 맛은 3합이 아니라 5합의 맛이다. 베트남 음식은 복합문화의 전형으로 베트남 토착문화와 중국 문화, 인도 문화, 프랑스 문화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는 중국과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결과이며,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미군의 참전으로 미국의 식문화가 베트남 음식 문화에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음식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쌀과 채소의 사용이 많고, 기름기가 적어 건강식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베트남 음식 전문점 ‘퍼호아(Phở Hòa)’를 시작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 정상화 이후 한국기업의 베트남 투자가 증가하면서 인적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고, 베트남 다문화가정의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김치가 있고, 일본에 스시가 있듯이 베트남에는 퍼가 있다. 퍼는 베트남 음식들 중에서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중의 하나이다. ‘퍼(phở)’는 여러 종류의 쌀국수 가운데 하나의 명칭에 불과하다. 퍼는 쌀농사의 특징을 보여주는 음식으로, 쌀을 재료로 한 국수 종류가 다양하여 조리방법이 지역마다 다르고 명칭 또한 다르다. 때문에 퍼를 쌀국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김치를 외국에서도 김치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냥 ‘퍼’라고 해야 옳다. 퍼는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표방하면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베트남에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베트남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 약 100여 년 전에 출현한 ‘퍼(phở)’
퍼가 베트남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베트남이 세계적인 쌀 생산국이고, 퍼를 만드는 재료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퍼는 농촌은 물론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부터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든지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하루 3끼 가운데 최소한 1끼는 퍼로 해결할 만큼 사랑받는 음식이다. ‘퍼(phở)’라는 단어는 1931년에 출판된 베트남 사전에, “퍼는 잘게 썬 면발과 소고기로 이루어진 음식이다.”라고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1909년에 출판된 화집(畵集)에 나온 것을 보면, 퍼는 약 100여 년 전에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버 후에]






◼ ‘퍼(phở)’의 기원
퍼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으나, 이를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자료는 아직 없다. 역사학자인 다오훙(Đào Hùng:1932~2013)은, “퍼”라는 명칭은 중국의 "粉(분) -phấn)"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베트남인들이 정착하였던 곳이 광동성과 광서성 지역이라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방지역 사람들이 벼를 재배하고 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요리한 반면, 북방지역의 사람들은 밀을 재배하여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퍼’는 중국의 분(粉)에 기원한다고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만든 베트남 음식이다. 파와 채소, 백리향, 고수(ngò) 등의 향료는 베트남인들이 즐겨먹는 향채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밀가루 국수를 먹지 않았다는 점에서, 퍼의 사리는 중국 남부 지역이나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육수는 베트남 전통의 물소 고기 국에서 소고기 국물로 바뀌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프랑스가 식민 지배하던 시기에 하노이 정육점에서 파는 소고기 가격이 저렴하였고, 소뼈까지 함께 덤으로 주었기 때문에 싸우쩌우(물소 고기 국수) 대신에 싸우보(소고기 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싸우보는 분(bún-국수사리)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바인퍼(국수사리)를 넣어 먹었다. 분이나 퍼는 모두 쌀로 만든 국수사리이지만. 분이 퍼에 비해 사리가 가늘고, 모양이 둥글다. 퍼는 얇고 납작한 모양이다. 싶게 이야기하면, 분은 사리 모양이 잔치국수와 같이 둥글고, 퍼는 손칼국수 사리와 같이 넓적하다.

◼ ‘퍼’의 지역적 특성: ‘북부 퍼’, ‘사이곤 퍼’
오늘날 베트남 내에서 퍼는 ‘북부 퍼’와 ‘사이곤 퍼’로 대별된다. 일반적으로 북부 퍼는 조금 짠 맛이 특징이며, 사이곤 퍼의 육수는 약간 달고 기름기가 약간 있으며, 생 숙주나물과 같은 야채와 함께 먹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남부의 국수사리는 북부의 국수사리 보다 가늘다. 퍼의 사리는 쌀가루를 물에 묽게 반죽하여 얇게 펴서 찐 다음에 채를 썬다. 이것을 베트남어로 바인퍼라고 한다. 퍼를 요리할 때는 바인퍼와 육수가 있어야 한다. 육수의 맛이 퍼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유명한 퍼 식당의 육수는 특별한 비법이 대대로 가전되어 내려온다. 일반적으로 육수는 소뼈를 오랫동안 끓인 다음, 맛을 내기 위하여 돼지 뼈나 새우, 말린 오징어 등과 같은 해산물을 추가하고, 여기에 손님의 취향에 따라 향료를 추가한다. 북쪽에서는 남딘과 하노이 지역의 퍼가 가장 인기가 높다. 퍼는 처음에 베트남 북부에서 출현하였지만, 1954년 제네바 협정 체결로 베트남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단되면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북부 베트남사람들에 의해 남으로 전해졌다. 남부로 전해진 퍼는 점차로 남부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조리되어, ‘북부 퍼’와 ‘사이곤 퍼’의 맛이 다르게 변한 것이다.

◼ 1945년 8월 혁명 이전: 소고기 퍼, 닭고기 퍼
퍼는 하노이 사람들이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퍼는 1945년 8월 혁명이 일어난 후에 북부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하노이 최초의 퍼 식당은 버호(Bờ Hồ-서호 둘레길)에 있던 중국인 주인의 식당과 꺼우고(Cầu Gỗ) 108번에 있던 베트남인 식당이었다. 1주일에 2일이면 소고기 재료가 모두 소진되자 대안으로 1939년에는 ‘닭고기 퍼’가 선을 보였다. 소고기 공급이 달린 것은 냉장시설 부족과 소나 물소가 농사와 운반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에 가축의 도살을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퍼는 한국 사람들이 세끼 밥을 먹듯 날마다 먹는 음식이라 ‘소고기 퍼(phở bò)’를 대신하여 ‘닭고기 퍼(phở gà)’가 개발된 것이다. 처음에는 소고기 퍼에 맛이 길들여진 사람들이 닭고기 퍼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나, 점차적으로 베트남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갔다. 그리하여 ‘북부 퍼’와 ‘사이곤 퍼’로 대별되던 것이, 조리 재료에 따라 ‘소고기 퍼’와 ‘닭고기 퍼’로 분화되게 된 것이다.

◼ 1945년 8월 혁명이후: ‘항전 퍼’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다. 때문에 퍼는 피난민들과 함께 농촌과 산악지방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전쟁기간 동안에는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소를 잡아서 고기를 먹게 하고, 퍼를 만들에 먹게 하였다. 게릴라 기지와 방어 진지 근처의 퍼 음식점은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여 퍼는 항전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당시에 퍼는 ‘항전 퍼’라고 불렀다. 항전 퍼의 특징은 열악한 환경에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모두 넣어서 퍼를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인퍼(국수사리)도 말린 사리를 썼고, 느억맘이나 향채 없이도 조리하였다. 퍼를 먹는 대상이 모두 전쟁 중인 전사들이었기 때문에 맛보다는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맛보다 양이 중요시했다. 그래서 ‘항전 퍼’는 군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향수의 음식이자 독립역사를 간직한 음식이 되었다.

◼ 통일전쟁 시기 출현한 고기 없는 퍼: ‘무인 퍼’
퍼는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될 때 남쪽으로 전파되었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퍼는 ‘남부지역 만의 퍼’의 특징을 갖게 되었다. 남부 퍼는 남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지역 문화적 특징이 가미되었는데, 생 숙주나물, 향채, 아시아 바질, 고수, 라임, 검은 장 (짠맛), 칠리소스(매운 맛)등과 함께 설탕의 단맛이 추가되었다. 1964년 북쪽에서 치열한 반미전쟁이 일어나면서 퍼는 특별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무인 폭격기가 출현하자, 이를 빗대어 고기가 없는 퍼인 ‘무인 퍼’가 등장하였다. 이제 ‘무인 퍼’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추억의 퍼가 되었다. 이 시기에 사이곤에는 퍼호아(Phở Hòa)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1960년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식당 이름은 ‘호아록(Hòa Lộc)’이었다. 맛이 소문나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록(Lộc)’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호아(Hòa)’만 남게 되어, ‘퍼호아(Phở Hòa)’가 되었다. 퍼는 1975년 4월 30일 통일이 되면서 두 번째로 북부의 퍼가 남부지역으로 전해져, 북부의 지역별로 특성화 된 명칭을 따라 다양한 종류의 퍼가 남부지역에 소개되었다.

◼ 1975년 베트남 통일 후 퍼의 세계화
1975년 이후 베트남 통일의 새로운 역사와 함께 퍼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가는 지역마다 퍼 음식점이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곳곳으로 소개되었다. 처음에는 베트남 이주민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고, 그 후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전파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베트남 교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미국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퍼는 미국의 다른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한국에서도 대도시에 퍼 음식점이 생겨 많은 한국인들이 퍼를 즐겨 먹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베트남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퍼의 맛을 제대로 재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말린 국수사리를 사용하고 있고, 가전 비법의 육수 맛을 재현하지 못하고나 베트남에서와 같은 식재료를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퍼의 지역적 특성: 남딘 퍼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고 있는 퍼는 하노이 퍼와 남딘 퍼이다. 하노이와 남딘은 지리적으로 같은 북부지역에 있고,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조리방법은 다르다. 남딘사람이 운영하는 퍼 음식점은 남딘 사람들이 만든 바인퍼(국수사리)만 사용한다. 금방 만든 국수사리이기 때문에 사리가 부드러워 맛이 좋다. 남딘지역의 퍼 국수사리는 가늘고 얇으며 쫄깃쫄깃한 점이 하노이나 사이곤의 국수사리와는 다르다. 육수를 만들 때도 소뼈를 끓일 때, 소금으로 간을 하지 않고 느억맘을 사용한다. 장시간 육수를 우려낸 후 생강, 말려서 구운 자색양파, 말린 싸쑹(성구동물-星口動物)을 추가하고, 소고기도 약한 불에 오랫동안 삶아 육질을 쫄깃하게 물에 고기를 담궈 피를 빼고 양념으로 숙성을 시킨다.


◼ 하노이 퍼
남딘과 하노이 지역의 퍼의 근원 및 발전 시기는 비슷하지만, 퍼의 재료나 향은 다르다. 남딘 퍼에는 육수를 더 담백하게 하기 위해 소뼈 외에 싸쑹(성구동물-星口動物)을 사용하지만, 하노이에서는 싸쑹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노이 퍼는 육수 맛이 깨끗하고 담백하며, 국수사리는 부드럽지만 으스러지지 않는다. 소고기는 질기지 않고 부드럽고, 레몬, 고추, 양파가 첨가되어 있다. 만약 하노이의 퍼를 먹어보지 못했다면, 하노이의 음식을 즐길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 사이곤 퍼
사이곤 퍼는 남부지방의 특색이 있다. 북부 퍼는 면발이 얇고 넓으며 부드럽지만, 사이곤의 퍼는 좀 더 가늘고 두꺼운 편이다. 커다란 사발에 국수사리를 담아 샬롯(서양파의 일종), 파슬리(ngò gai), 생 숙주나물, 육계피, 고추, 레몬, 파, 얇게 썬 양파 등을 따로 접시에 놓고 취향에 따라 넣어 먹는다. 소뼈나 닭 뼈를 고아 육수로 만들며, 참새우, 구운 생강, 느억맘을 넣는다. 육수는 하노이보다 약간 단맛과 기름기가 있다.

퍼에 얹는 고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소고기 퍼는 잘 익은 안심, 등심, 사태와 소고기를 약간만 익힌 퍼도 있다. 닭고기 퍼에는 닭고기의 여러 부위를 쓴다. 육수 이외에 퍼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수사리인데, 퍼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국수사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퍼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숙주나물은 그냥 먹거나 끓은 물에 약간 데쳐 먹기도 한다. 신선한 각종 채소와 향채는 향과 맛이 서로 다르다. 고수(ngò gai), 아시아 바질(húng quế), 파슬리, 레몬, 매운 고추 등이다. 이를 자기 취향에 맞게 조절하여 먹을 줄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는 숙주나물이 쉽게 변하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변질을 막으려고 화학약품을 많이 사용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국민건강상의 이유로 숙주나물을 식탁에 내놓지 않는 음식점이 많다.

오랫동안 중국과의 조공관계 및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베트남만의 독특한 전통 음식을 개발하여 보존하여 왔다. 베트남은 숱한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아오면서도, 퍼를 베트남만의 정체성을 지닌 음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퍼는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달성시킨 에너지원이자, 베트남 정신을 간직한 대표적인 음식, 단결과 통합의 대명사인 5합의 음식이다.

 

[pho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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