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인천 모 중학교 성폭행 사건과 텔레그램 ‘N번방’사건에 부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인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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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서 기자
입력 2020-04-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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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사당국은 성범죄 행위에 대한 엄정 수사 및 책임에 걸맞는 처벌해야

※본 성명서는 해당단체의 일방적인 의견으로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으로 명명되는 충격적인 성범죄 실체를 보고 경악했다. 수업 중 만났을 법한 ‘제자’가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핵심 인물이란 사실에 인천의 교사들은 가슴이 찢기는 심정이다.

또한 청와대 민원이 제기된 인천 중학생들의 집단성폭행 사건에도 분노와 참담함을 느낀다. 청원 내용에 따르면 해당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도 가능한 ‘중범죄’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채 동료 학생의 삶과 인격을 짓밟아 버린 끔찍한 범죄 앞에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가해 학생들은 강제전학 조치를 받았고 휴대폰 압수수색 등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초기 수사와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회복을 돕는 교육적 지원이 불충분해 피해를 키운 듯하다.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간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누구보다 깊이 상처 입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먼저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덧붙여 각 범죄행위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책임에 합당한 처벌, 재발방지 대책과 피해 당사자의 회복을 위한 심리적·재정적·기술적 지원을 촉구한다.

인천 모 중학교 성폭행 사건은 필요한 경우 등교중지, 격리 등 추가적인 조치를 하고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책임,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청이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학생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성평등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한 포괄적 성평등 교육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다.

‘N번방’ 가입자 수 26만 명은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뛰어넘는다. 왜곡된 성인식이 사회 곳곳으로 침투해 개인들을 ‘감염’ 시켰다. 우리는 묻는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상화하고 돈거래용으로 상품화하는 이 사회의 그릇된 성인식은 대체 어디서 비롯했는가. 소라넷 폐지·웹하드카르텔 양진호 구속 등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음에도 ‘텔레그램’이라는 수단만 바뀌었을 뿐 왜 성범죄는 없어지지 않는가. 성평등 교육을 하는 중에도 왜 동료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지속되는가.

국가는 누구보다도 이번 사태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성범죄의 심각성과 악영향에 비해 그간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버닝썬·김학의 사건 등에서 보듯 여성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거래한 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불편한 용기’를 낸 여성들이 거대한 운동을 일으켜 ‘불법촬영물 삭제 예산’ 26억원이 배정됐었지만, 국회는 해당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정부는 ‘말로만 페미니즘’이었다.

사건 발생 후 ‘강력 처벌 및 규제 대책 내놓기’만으로는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성 착취 가담자들은 ‘고액 알바’를 미끼로 아동·청소년 여성을 유인해 ‘성노예’로 삼고 가학행위와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벌이 행각을 벌였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듯 사람보다 돈을 더 앞세운 사회가 온갖 문제를 양산한 것이다.

경쟁 교육으로 학생들을 개개인으로 파편화시켜버린 학교 역시 타인의 고통에 지극히 둔감한 개인들을 만들어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입시경쟁 가도 위에서 성평등 교육처럼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은 등안시되어 왔다. 성차별과 보수적 관념을 조장하는 ‘국가수준학교교육표준안(2015)’은 폐기는커녕 개정조차 안되고 있으며, 용기를 내 성평등 교육을 한 교사들은 제대로 된 보호를 못 받고 있다.

뒤틀린 욕망 속에 타인의 삶과 인격을 짓밟는 개인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바뀐 희생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반복적인 비극 앞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소환될 것이다.

자신의 성에 대한 권리를 아는 것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출발이다. 학생들은 성적 주체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해하고 성적 책임과 존중을 배워 민주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성교육은 생식·보건학적 관점에 치중하거나, 성역할 이분법과 성폭력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잘못된 대응을 가르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성의 상품화와 성 불평등의 문제는 생물학적 남녀의 욕구 차이를 강조하거나 금욕주의적인 현행 ‘국가수준학교성교육표준안’으로 가르칠 수 없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을 중심으로 발달 단계에 적합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SNS와 온라인 미디어 사용 증가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가 되곤 하는 학생들을 위해 성평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인천교육공동체가 받은 충격과 불안감이 크다.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노동조합으로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가 갖는 책임감의 무게 또한 적지 않다. 전교조 인천지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인천시 각급 학교의 성평등 교육을 보다 활성화하고 실질적인 성인식 개선을 이뤄낼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4월 1일, 인천지부는 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2019년 성평등 교육 현황과 2020년 성평등 교육 계획을 포함하여 중장기 방안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였다. 인천지부 정책실 산하 성평등 교육팀은 2019~2020 성평등 교육 현황 및 계획 자료를 분석하고 향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분석과 연구를 토대로 시교육청과 정책협의회를 진행하고 인천시 관내 유·초·중·고교의 성평등 교육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참담함에 비관하고 주저앉기보다 우리 학생들이 가정·또래·사회로부터 학습한 왜곡된 성인식에 맞서 성 평등 교육을 전진시키는데 묵묵히 앞장설 것이다. 이를 디딤돌 삼아 임금 차별, 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과 같은 구조적 차별은 물론 일상적 성희롱·성폭력을 가하는 사회구조를 바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길을 닦아 나갈 것이다.

2020. 04. 0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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