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실업률·세계 공통의 화제에 봉준호식 유머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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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기자
입력 202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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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아카데미를 사로잡았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최초다. 1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2020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됐다. '백인 오스카'라 불리며 비영어권 작품이 배척되어 왔던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외 각본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건 괄목할 만한 성과다.

[AP=연합뉴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후보에 지명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101년 한국영화 역사(아카데미 92년)를 새로 쓴 셈이다. 

아카데미는 왜 기생충에 열광했을까? 

세계 공통 '양극화·계급문제' 등 날카롭게 지적 
최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학력이 낮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저임금에 시달린다고 조사됐다. 소득 하위 근로자 44% 중간연봉이 겨우 1만8000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사회초년생이나 10대 청소년이 아닌, 25~45세의 직장인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대외무역 정책으로 미국의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지만 이런 현상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에 해당할 뿐, 전반적인 미국의 실업률은 아직 극복해야 할 위기 상황을 넘지 못했다. 

이런 소득의 양극화로 '잘사는 놈은 더 잘살고 못사는 놈은 더 못살 수밖에 없는' 빈부격차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공통 문제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점에서 영화 '기생충'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빈부격차라는 큰 틀의 공감 위에 '실업률'이라는 문제도 얹어진다. '기생충'에는 실업 문제가 등장한다.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 그리고 아버지 기택(송강호), 어머니 충숙(장혜진) 등 가족들은 모두 직업이 없다. 직업이 없으니 당연히 가난해지고 반지하 셋방에서 장마가 지면 빗물이 역류하는, 삶의 터전조차 지킬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전 세계 실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LO는 최근 연례 보고서를 내고 올해 실업자 수가 지난해보다 200만명 늘어난 1억90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에는 올해보다 상황이 더 악화돼 실업자와 실업률이 각각 1억9400만명, 5.5%가 될 것으로 ILO는 예측했다.

선인도 악인도 없다··· '우리 모두는 회색'
기생충이 세계를 사로잡은 또 다른 요소로는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적 도식을 거부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거부하고 등장인물들을 모두 '회색지대'에 올려놓음으로써 기존에 비슷한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악인도, 선인도 뚜렷하지 않다. 가난한 집 기택네 가족들은 부잣집 박 사장네로 '침투'하려 갖은 거짓말을 일삼는다. 박 사장네도 때로 모멸감을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악인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모든 주인공이 '그레이존(grey zone)'에 있다. 가난한 가족은 나쁜 짓을 저지르는데 약간 귀엽기도 하고, 부잣집 사람들은 얌체 같지만 나이스한 사람들"이라며 "빌런이나 히어로가 명확하면 이야기 방향이 점점 명확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레이존에 있기에 이야기 전개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탄탄하게 구축한 캐릭터, 주제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가파른 계단(가난한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려 했으나 오히려 계단을 내려오는 작품이라고 봉준호 감독은 설명했다)과 같은 뛰어난 미장센이 어우러진 덕에 영화 '기생충'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된 것이다. 

세계인들이 영화 '기생충'에서 받은 또 다른 인상으로는 한국사회의 계급문제와 더불어 남북문제를 들 수 있다. 극중 문광(이정은)이 남편 근세(박명훈)를 마사지하며 북한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또한 세계 유례없는 분단국가인 한국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으로 세계인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던 것. 

제대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언어도 인종도 국경도 뛰어넘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제2, 제3의 기생충이 다시 나올 발판이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으로 마련됐다. 이제 도약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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