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북한 개별 관광은 자유 관광 선언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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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입력 2020-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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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대표]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 동독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서베를린을 가기 위해 통과하는 동독이 아닌, 동베를린을 포함한 동독 지역이었다. 서독에 유학을 간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던 1980년 초반, 혼자 갔었다. 사전에 방문 비자를 신청할 필요도 없었다. 동독으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보여주니 스탬프를 찍지 않고 별지 용지를 넣어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한민국(ROK)에서 왔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을 방문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고 했다. 환전을 했다. 하루 체류당 25서독마르크. 강제 환전이었다. 동·서독 환율은 크게 달랐지만, 1대1이 적용되었다. 25동독마르크를 받았다. 동독의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셈이다. 동독에 들어온 나는 걸어서,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독 지역을 둘러보았다. 식당에 가서 밥도 사먹고, 서점에 들러 책도 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당이나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들이었다. 줄 서기가 생활화된 것이었기도 하지만, 부족 경제(Economy of Shortage)의 배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내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요금을 징수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내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서독에 비해 훨씬 못산다는 생각을 했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길을 묻는 낯선 아시아인에게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원인 모를 반감을 가졌던 나에게 동독 여행은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정부가 대북 개별관광의 추진을 공식화(2020년 1월 20일)했다고 전해진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구상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아 어떻게 추진될지는 모르겠다. 필자는 북한 개별관광은 우선 한국 정부의 북한 관광 자유화 선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별관광의 바탕이 자유관광이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한 주민이든, 남한에 있는 외국인이든 그 누구든 원하면 어떤 형태, 어떤 경로로 가든 언제든지 북녘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별관광의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고 들이지 않고는 다른 문제다. 그들이 관광증을 발급하든, 비자를 내주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형식과 방법을 통해 북녘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가도 그들의 선택이다.

한국 정부가 개별관광을 위해 신변보장각서를 받아내려는 것은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이 세계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신변보장각서를 제출하고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그렇게 해야 하는가 말이다. 신변보장각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변안전이 보장될 것인지도 살펴볼 일이다. 정부가 방문객의 신변안전이 걱정 되면 북한 체제나 최고 지도자 비방 등 북한에 가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안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면서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3국을 거쳐서 해야 한다든지, 이산가족이나 사회단체의 비영리목적 여행만 가능하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불필요한 간섭이다. “현대아산의 개성·금강산관광 사업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과연 통용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모름지기 북한 지역 관광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DMZ를 넘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유엔사가 제한한다면 그것이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당당히 통과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 스스로도 “개별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세컨더리 보이콧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북한을 여행하고 있다. 그들이 내는 관광 경비가 제재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를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는 정작 용기를 내어 추진하는 데에는 주저하고 있다. 이리저리 따져보고 조건을 붙이면 붙일수록 상황은 더 꼬이게 마련이다. 다른 외국인들의 북한 방문은 제재대상이 아닌데 왜 우리만 유엔이나 미국 제재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해외동포는 되어도 국적이 단지 한국이라는 것 때문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에게 자기 핏줄을 언제까지 보지 못하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해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며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 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의 발언에 대해서는 강하게 거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북한여행이 일반 해외여행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원하면 북한에 가서 헤어진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야 한다. 주말에 잠시 다녀오는 곳에 북한 지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지금 바로 선언을 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북한을 방문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견지해 온 정부의 방북 승인과 허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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