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의 천방지축] 4.15 총선 인재영입 '미스터트롯'에서 배우라

김세원 논설고문입력 : 2020-02-03 17:59

 



[김세원의 천방지축]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21대 총선을 2개월여 앞두고 여야의 인재영입 경쟁이 한창이다. 민주화 이후 주요 정당들은 당의 이미지 쇄신과 외연을 확장하는 데 효과적인 인재영입을 선거 전략으로 활용해 왔다.

◇명망가 모시기에서 스토리 경쟁으로

인재 영입이 총선의 메인 이벤트로 자리잡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1996년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공천 전권을 거머쥔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인재영입' 대결이었다. YS는 자신의 중간평가 격이었던 1995년 지방선거에서 신한국당이 참패하자 위기감에 빠졌다. YS의 영입 1호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와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였다.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개혁 공천’ 덕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로 민심이 흉흉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됐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자 정계 은퇴 선언을 뒤집고 정치권에 복귀한 DJ는 새정치국민회의(이후 새천년민주당)를 창당하고 인재영입에 나섰다. 정세균 쌍용그룹 상무, 대구 출신의 추미애 판사, 정동영 MBC 앵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민석, 소설가이자 방송인이었던 김한길이 합류했다. 총선에서는 패했지만 ‘좌파’이미지를 탈색하는 데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DJ는 ‘젊은 피 수혈론’을 주창하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우상호·임종석 등 386 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같은 시기 한나라당은 김윤환, 이기택 등 43명의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대규모 물갈이에 나서 남경필, 오세훈, 원희룡, 정병국 등 젊은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17,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인재영입은 '명망가 모시기'에서 '감동적인 스토리 대결'로 진화한다.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영화 ‘완득이’에 출연한 필리핀 이주여성 이자스민 전 의원과 이준석·손수조 등 20대 청년을 영입해 화제가 됐다. 민주통합당은 전태일 열사 누나인 전순옥 전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를 비례대표 1번으로 배정해 맞섰다. 19대 총선은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이 절반이 넘는 152석을 얻어 완승을 거뒀다.

'스토리형' 인재영입의 절정은 2016년 20대 총선이었다. 안철수계의 집단탈당으로 당이 흔들리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상고 출신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 게임업계 신화 김병관 CEO, 시사평론가 이철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멘토였던 김종인,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 등을 영입하여 당의 외연을 넓혔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20대 총선에서 1석 차이로 국회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고 문 대통령 대선 승리의 기반이 됐다.

◇21대 총선 인재영입 키워드 청년, 도전, 감동 스토리

21대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이 만18세로 내려가면서 각 정당의 인재영입 키워드는 청년, 도전, 감동스토리로 요약된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척수장애인 최혜영 재활학 박사를 1호 영입 인재로 내세운 이후, 모친에게 각막기증을 한 20대 청년 원종건, 김병주 예비역 대장, 소병철 전 고검장, 30대 소방관 오영환, 경력단절을 극복한 여성 변호사 홍정민 로스토리 대표, 이용우 카카오뱅크 대표, 이소영 기후환경전문 여성변호사 등 역경 극복 스토리가 있는 인물들을 영입했다. 자유한국당(한국당)도 지난해 10월, 1차로 양금희 여성유권자연맹회장,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 공학과 교수 등 8명을 영입했다. 이어 20대 김은희 테니스 코치, 30대 탈북인권운동가 지성호, 40대 극지탐험가 남영호, 정치평론가 김병민, 안보전문가 신범철, 40대 이미지 전략가 허은아, 이종성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하지만 ‘미투’, 논문표절, 공관병 갑질, 스펙용 창업 의혹 등 영입인재에 대한 자질 논란이 일면서 ‘인재영입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요즘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월 28일 '미투' 의혹이 불거지자 민주당 영입제안을 반납한 원종건씨 사례는 '정치의 이벤트화'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투'와 별도로 원종건 사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민주당으로 가기 전에 SNS를 통해 자기는 20대 정치초년생인데 한 당에서는 비례대표, 다른 당에서는 지역구 공천을 동시에 제의받았다고 밝히고 네티즌들에게 어느 쪽을 택할지 물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이 친구에겐 정치를 시작하는 데서 중요한 것이 이념, 정책, 철학 같은 것이 아니라 비례와 지역구 중 어느 쪽이 경력에 좋겠냐는 것"이라며 "정치 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인물을 오직 과거에 TV 방송에 나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검증 없이 영입하려 한 두 정당의 ‘판촉 이벤트’가 진짜 정치를 증발시켜 버렸다"고 개탄했다.

◇ 유효기간 4년짜리 ‘인재영입 이벤트’

정치의 본질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한정된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높은 수준의 열정과 식견, 비전, 애국심, 친화력, 조직력, 자금동원력 등 종합적인 능력과 고차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런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정치인은 오랜 시간 경험과 훈련을 통해 길러진다.

그러나 인재영입 발표 기자회견장에는 각자 삶의 영역에서 이룩해낸 빛나는 성취에 대한 상찬만 가득할 뿐, 그들이 어떤 정치 철학과 비전을 가졌고 왜 그 정당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자신의 성취를 어떻게 정치에 녹여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 충원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정치에서는 인재영입이 정계에 입문하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영입된 인사들을 진정한 정치인으로 육성하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미비하기에 중진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히는 인사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한두 번 ‘사용’되고 폐기된다. 일 좀 할 만하면 4년 후 또다시 떠들썩하게 영입된 정치 신인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현실에서 소신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이 길러질 리 없다. 20대 총선 때 민주당의 대표적인 영입인 표창원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효기간이 4년에 불과한 ‘인재영입쇼’보다는 인재육성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영입된 새 인물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각종 혜택이 주어지다 보니 당내에서 꾸준히 총선 출마를 준비했던 내부 인사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 또한 적지 않다.

◇‘미스터트롯’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지난달 30일밤 열아홉살난 딸과 함께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을 시청했다. 재미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노래경연 리얼리티쇼가 처음도 아니고 평소 트로트에 관심이 없던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1대 1 데스매치'에 나선 참가자들이 탄탄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태권도, 에어로빅, 비트박스와 색소폰연주까지 총동원해 자기만의 무대를 펼쳐내는 모습이 눈물겨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장르도 정통트로트부터 트로트적 요소를 가미한 록이나 발라드, 랩송까지 다양한데다 평범한 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저마다의 사연에 집중하다보니 두 시간이 넘도록 TV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과연 1부 20.8%(이하 닐슨코리아 유료방송 가구 전국기준), 2부 25.7%로 종합편성채널 탄생 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참가자격은 10세에서 45세, 1만50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109명이 유소년부, 대학부, 직장인부, 현역부 등 9개분야로 나뉘어 경연을 벌이는 방식으로 마스터판정단의 투표에 의해 탈락여부가 결정된다. 최연소 참가자인 아홉살 난 홍잠언을 비롯해 열세살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정동원 등 유소년부 신동들이 트로트를 구성지고 맛깔나게 소화하는 모습은 구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트로트를 다시 보게 만든다. 여기에 현역부의 트롯맨들이 재기의 마지막 무대라 여기며 땀 한 방울까지 짜내 열창하는 모습은 절절한 울림을 준다. ‘진심’이 담긴 스토리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출연자들의 다시보기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중이고 관련 기사에는 출연자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봇물을 이룬다.

‘미스터트롯’을 보고있노라니 정당의 인재영입이 오버랩된다. 둘 다 인재발굴 이벤트이고 젊음, 도전, 감동 스토리란 공통분모가 있으면서 지지율과 시청률 상승이란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스터트롯은 마스터판정단의 투표에 의해 진퇴가 결정된다. 누가 누구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바일 대국민 응원투표를 통해 누구나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회는 공정하고 경쟁은 투명하다. 설사 강한 상대를 만나 탈락하더라도 실력과 끼를 인정받으면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무대가 열려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트롯신동들을 미래의 스타로 키워낼 기획사와의 연결도 가능하다.

반면 정당의 인재영입은 투명하지 않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당대표의 의중이 명단을 좌우한다. 영입 인사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는지를 판단할 근거도 희박하다. 그들의 인생사가 감동적이라고 해서 그들이 펼쳐 갈 정치도 감동적일 것인지는 역시 미지수다. 인재영입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미비하기에 진 전 교수의 말대로 ‘일회용 추잉껌’처럼 단물이 빨리면 유통기한이 끝나버린다. 세대와 성별, 진영을 넘어 온 국민을 트로트 열풍으로 몰아넣은 ‘미스터 트롯’의 인재영입과 인재육성 방식을 정치권에 도입한다면 한국정치의 판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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