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뉴스]신년하례회에서 서로 악수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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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1-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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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는 원래 신과의 연결을 상징하던 의식이었다. 고대 바빌론에선 신의 손을 잡았다. 물론 조형으로 만들어진 손이다. 황제가 신의 손을 잡음으로써 신성한 권력이 인간의 육체로 전해진다고 믿었다. 손을 잡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연결을 상징했다.

인간끼리 악수를 하게 된 것은 전쟁을 치르면서부터라고 한다. 인간이 인간을 서슴없이 죽이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살벌해졌다. 네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라. 그러면 나도 너를 죽이지 않겠다. 그것이 악수였다. 악수는 남자와 남자간에만 이뤄졌다. 잉글랜드에서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수를 했다. 왼손 소매에 종종 무기를 숨겼기 때문에 왼손으로 악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점차 오른손 악수가 일반화됐다. 오른손이 주로 칼과 같은 무기를 잡는 손이었기에 그 손을 잡는 동안은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 혹은 여성과 여성끼리의 악수가 일상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쿠웨이트에서는 아직도 남녀간에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

최근 악수가 확산되고 보편화한 것은 민주주의의 인간평등이 대중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손을 맞잡는 악수에는 평등의 느낌이 서로에게 흐른다. 두 개의 손 뒤에 있는 두 사람은, 전쟁의 양쪽처럼 평등하고 독립적이다. 그리고 손을 맞잡는 순간 평화의 신호가 흐르는 점도 있다. 전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조금 거시기하지만, 악수는 주체와 주체간의 민주주의와 상호존재감 인정을 담고 있다.

이 당당한 평등감이 조금 아쉬웠던 일본 사람들은 이 평등에 기울기를 주기 위해 손을 두 손으로 잡거나 혹은 무릎을 굽힌 채 손을 잡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이런 악수법은 현저한 기울기가 있는 사람들끼리의 악수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걸 의식하고 과장스런 공경을 표하는 윗사람들도 있다. 악수가 흔해지게된 데에는 비즈니스에서 이것이 약속이나 친밀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손을 잡으면서였고, 그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남발된 것은 정치적 의례나 선거에서의 민심 붙들기에서였다. 그것도 악수는 악수지만, 악수 속에 들어있는 마음의 질량은 얼마나 되는지 계측하기는 쉽지 않다.

서먹했던 남녀가 공식석상에서 공공연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악수가 지니고 있는 '차가운 프로토콜'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완전히 공식적으로 되기는 어려운 경우가 없지 않다. 평소에 손을 잡고 싶었던 상대와 무표정하게 손을 잡으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이 왜 없겠는가. 가끔 공적인 악수에서 손을 살짝만 쥐는 경우는, 공적인 악수를 마지 못해 하긴 하지만, 상대방의 손을 쥘 의사는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한다. 악수를 피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만, 그렇다고 흔쾌한 악수와 동질의 질감을 지니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신문사에서는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이면, 신년하례 행사의 하나로 전직원이 손을 잡으면서 덕담을 건넨다. 엘리베이터 복도를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사무실이 있는 구조인지라, 사람들은 한줄로 늘어서서 끝줄에서 나와 돌아가며 악수를 건네는 모든 직원과 손을 잡는다. 낯선 사람도 있고 익숙한 사람도 있으며 몇년째 손을 잡는 이도 당연히 있다. 수백개의 손이 다가와 아주 잠깐 온기를 주었다가 사라지는 이 손의 경험은, 이 직장이 만들어낸 인간네트워크와 각각의 손들과의 친밀의 정도를 돌이켜보게 한다.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내 손이 전해주었을 체온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내 손은 그들에게 무엇이었나.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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