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 ⑥ 바람 나지 않으면 지중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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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고문
입력 2020-01-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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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세트  해변의 묘지'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 

 

지중해에 다녀온 사람들은 지중해의 바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유럽의 발코니에서 만끽한 지중해 바람.” 스페인 네르하라는 곳을 다녀온 분이 블로그에 남긴 여행 후기입니다.

“잊을 수 없는 레몬향과 바람의 절벽 그리고 지중해!” 이탈리아 소렌토에 다녀온 분 글에서는 바람에 실려 온 레몬향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에어컨이 있는 듯 시원한 바람! 마침내 지중해에 도착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 더위를 견뎌가며 스페인에서 제일 큰 섬 마요르카에 상륙한 분의 도착일성입니다.

바람이 소중한 일정을 망가뜨렸다는 소감도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훼방꾼이었다. 카프리 섬으로 가는 페리도 운항정지였다. 멀어져 가는 배에서 아름다운 소렌토의 절벽을 감상도 못하게 한 거센 바람이었다.” 레몬 향을 실어다 준 소렌토의 바람이 금방 심술꾼으로 변했다는 거지요.

지중해의 바람이 우리 여행자들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겼던지, 진도에 들어선 한 콘도는 “지중해의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광고를 걸었고, 충남 아산 탕정면의 관광단지 ‘아산 지중해 마을’을 소개하는 블로그에는 “아름다운 지중해 마을을 걷다 보면 지친 당신의 마음에 따뜻한 바람이 일 것입니다” 같은 글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지중해의 바람을 따라 여행을 해볼까합니다. 지중해의 날씨는 남쪽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서쪽 대서양을 출발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는 바람에 지배됩니다. 사하라의 바람은 봄부터 가을까지 지중해에 영향을 미쳐 덥고 건조한 공기, 반짝이는 햇빛, 엄청나게 푸른 하늘을 제공합니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아조레스 제도 상공의 대서양 공기가 저기압 날씨를 가져옵니다. 이 바람들이 수천 년간 지중해의 농사를 풍성하게 했고, 상인들과 군인들의 뱃길을 열어주거나 방해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땅에 부는 바람을 계절과 방향에 따라 ‘높새바람’, ‘하늬바람’ 같은 이름을 붙였듯 지중해의 바람에도 다양한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이 바람들은 여러 작가와 시인,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로코’는 봄에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1788년 이탈리아 여행길에 올라 3월 초 나폴리에 도착했던 괴테는 “지금은 남동풍인 시로코가 분다. 바람이 더 강해지면 항구 주변의 파도가 흥미로워질 것이다”라고 남 이야기하듯 썼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나폴리를 떠나 시칠리아에 도착한 그는 이곳에서 제일 높은 에트나 산의 화산 구경에 나섰다가 바람에 분화구로 밀려가지 않으려고 주저앉은 채 움직여야 했습니다. 또 그 부근 고대 그리스 신전 유적을 돌아보던 괴테가 바람이 워낙 거세 신전의 작은 돌기둥을 붙잡고 버텨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코뿔소의 껍질도 벗겨낼 것처럼 사납다”라는 사하라의 바람을 괴테가 제대로 경험한 겁니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엄청난 갈증으로 으르렁대는 검푸른 바다는 아프리카 해안까지 펼쳐져 있었다. 뜨거운 남풍 리바스가 수시로 불었다. 멀리 작열하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라고 썼고, 프랑스 소설가 구스타프 플로베르(1821~1880)의 글에는 봄에 사하라에서 이집트 쪽으로 불어오는 ‘캠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략) 캠신 바람을 맞으며 낙타를 타고, 카페에 들어가 똥을 누는 당나귀 옆에 앉아 에드워드 레인이 ‘음란한 대화’"라고 부른 것에 참여하며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카뮈도 사하라의 바람을 강하게 맞았습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초반 고향 알제(알제리 수도) 옆, 로마 시대의 폐허가 남아 있는 제밀라라는 곳에서 강한 바람을 맞다가 “물살에 씻겨 반드러워진 조약돌처럼 내 영혼은 바람에 씻겨 윤이 나도록 닳아버렸고, 나는 나를 허공에 떠 있게 만드는 그 힘을 처음에는 약간, 나중에는 더 많이 닮아가다가 끝내는 바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대서양에서 알프스를 넘어 지중해 연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미스트랄’입니다. 차갑고 강한 북서풍이지요. 프랑스 남쪽을 여행한 우리나라 작가들과 여행자들도 “80㎏이 넘는 거구가 속절없이 바람에 밀려났다”는 등 미스트랄에 대해 언급을 많이 했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미스트랄 때문에 애를 먹은 반 고흐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파리를 떠나 지중해 변 프로방스에 내려와 있던 반 고흐는 1888년 6월 18일 친구 화가 에밀 베르나르(1868~1941)에게 보낸 편지에 “마을은 보랏빛이고, 태양은 노란색, 하늘은 청록색이네. 밀밭은 오래된 황금빛, 구릿빛, 녹색을 띠는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노란 황금빛, 노란 청동빛, 적록색 등 모든 색을 담고 있는 마을 풍경을 그렸다”고 알리면서 “미스트랄이 한창일 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젤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이 방법을 자네에게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속에 박고 50㎝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러고는 이 모두를 로프에 묶여야 했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로방스를 여행했던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색다른 여행기 <여행의 기술>에서 “미스트랄이 불어오자 옆 들판의 밀 이삭들이 흔들리며 물결이 번지고 있었다. 고흐는 사이프러스가 미스트랄에 움직이는 방식을 보았다. 다른 화가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쓴 것도 생각납니다. 고흐 그림 속 넘실대는 밀밭과 기이하게 뒤틀린 나무들은 미스트랄 때문이라는 거지요. ‘보라(bora)’라는 겨울바람도 있습니다. 아드리아 해에 불어 닥치는 강력한 북동풍으로 이탈리아 동북부와 크로아티아 해안이 영향을 받습니다.

지중해의 이 모든 바람은 원래 최초의 지중해 여행자 오디세우스의 ‘바람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들입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다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를 만납니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가 고향 근처에는 가보지 못한 채 바다에서 숱한 고생만 겪은 걸 알고 이제는 편하게 돌아가라고 “모든 방향의 바람을 가둬 놓은” 황소가죽으로 만든, 바람주머니를 하나 줍니다. 오디세우스는 아이올로스 덕분에 고향땅의 화톳불이 깜빡깜빡 보이는 곳까지 왔으나 그 땅에 오르지는 못하고 바람에 밀려 다시 긴 세월을 바다를 떠돌게 됩니다. 아이올로스와 바람주머니에 대한 오디세우스의 회상입니다.

“그는 조금도 새지 않게 은으로 만든 번쩍이는 끈으로/그 자루를 속이 빈 배 안에 단단히 묶었소. 그러고 나서 그는/함선들과 우리를 (고향으로 편안히, 쉽게)날라주라고 나를 위해 서풍의 입김을 내보내어/불게 했소.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니/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파멸을 자초하고 만 것이오.><오뒷세이아>(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무슨 이야기냐 하면요, 아흐레 동안 잠 안 자고 배를 부린 오디세우스가 캄캄한 바다 멀리 저편에 고향의 화톳불이 보이자 “고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잠깐 잠이 든 사이 부하들이 바람주머니를 열어버린 겁니다. 그들은 그 주머니에 아이올로스가 선물로 준 황금과 은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요. “같이 고생했는데, 왜 그만 선물로 보물을 가득 받아가고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가느냐”는 질투에 사로잡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겁니다. 오디세우스의 회상은 계속됩니다.

“전우들은 자루를 풀었고, 그러자 온갖 바람이 다 쏟아져 나왔소. 폭풍은 울고 있는 그들을 즉시 낚아채 고향땅에서 먼 바다로 날려 보냈소. 잠에서 깨어난 나는 마음속으로 망설였소. 배에서 몸을 던져 바닷물에 빠져 죽을까 아니면 말없이 참고 아직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머물까 하고. ….”

또 다시 표류하는 뱃전에서 멀어져 가는 고향땅을 쳐다보는 오디세우스의 절망에 빠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뱃전에 부딪혔다 사라지는 물거품을 보며 그동안의 천신만고가 부하들의 의심 때문에 헛되이 된 것에 망연해 하는 그의 모습! 그는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을까라고 까지 생각했지만 “말없이 참고 아직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남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먼 훗날 귀향에 성공한 건 오디세우스뿐이었지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의 귀향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오디세우스의 바람주머니는 나를 프랑스 남서쪽 인구 4만3000여 명의 작은 항구, 세트로 보냅니다. 이곳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1871~1945)에 의해 유명해진 ‘해변의 묘지(Cimetière Marin de Sète)’가 있는 곳입니다. ‘해변의 묘지’는 세트 시민들이 죽으면 묻히는 공동묘지 이름이자 그의 대표작 제목입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기 묻혀 있습니다. 입체 지도로 보니 묘지에서 지중해가 바로 눈 아래에서 펼쳐지는군요. “지중해를 보며 살았기에 그의 작품에는 지중해가 늘 어른거린다”라는 한 평론가의 촌평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죽어서도 지중해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를 빼고는 지중해를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숱하게 많은 지중해의 명승과 절경, 즉 ‘시닉(Scenic)’하고 ‘패뷸러스(Fabulous)’한 곳들을 미루고 어떻게 보면 한가한 듯한 세트를 살피기로 한 것은 그가 쉰 살이던 1921년에 발표한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바람이 인다. … 살아야겠다”는 ‘절창’ 때문입니다. 여러 시인과 학자들이 나름대로 이 구절이 절창인 이유를 설명하지만 미세한 차이를 걷어내면,  말 그대로 “바람이 부니까, 살아야겠다, 떠나야겠다”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풍(逆風)은 도전, 순풍(順風)은 희망이니까, 앞바람이 불면 살아야겠다는 의지, 뒷바람이 불면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죽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공동묘지에서 지중해의 바람을 맞다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 그게 ‘해변의 묘지’를 유명하게 해 준 거라고 나름 결론내봅니다. 바람주머니가 열리는 바람에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귀향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생각을 접고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남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오디세우스의 전설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 겹쳐집니다. 바람에 실려 가거나 바람에 맞서거나, 모든 여행자의 운명은 바람과 함께하지 싶습니다. 여행자는 모두 바람의 아들이거나, 바람의 딸인 겁니다.



 

[시칠리아 에트나화산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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