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1단계 합의 타결 이후 미중 무역전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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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9-12-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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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교수]





미국과 중국이 1단계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2018년 3월 무역전쟁 발발 이후 1년 반 이상 진행된 무역 전쟁이 잠시 중단되었다. 미국은 지난 15일로 부과할 예정이었던 1,56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연기하는 동시에 9월에 부과한 1,2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도 7.5%로 인하하였다. 중국도  15일로 예정된 미국산 제품에 대한 5∼10% 추가 관세 부과를 보류하면서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 확대, 환율조작 중단 등을 약속하였다. 양국은 이 합의안의 번역 및 법률 심의를 거친 후 내년 1월 초 공식 서명할 예정이다.

이번 합의는 지난 10월 10∼11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3차 고위급 무역 협상 이후 실무급 협상을 통해 성사되었다. 실무급 협상은 기존의 고위급 협상과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첫째, 협상 목표가 일괄 타결이 아니라 부분 타결로 격하되었다. 즉 양보를 할 수 있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렇지 않은 문제를 나중에 논의하는 것이다. 둘째, 고위급 협상을 주도했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및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류허 부총리 이외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보좌관인 재러드 쿠슈너와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대사가 막후 협상에 참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쿠슈너를 투입한 이유는 부분 타결에 반대하는 강경파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동안 강경론을 주장했던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보다는 온건론을 주장하는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언론매체에 나와 협상 결과를 홍보하고 있다.

1단계 협상 타결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실망과 안도로 구분될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압박을 지지해 왔던 강경론자들은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퇴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약속이 없다는 점에서 부분 타결을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중국 정부로부터 실질적이고 실행 가능하며 영구적인 구조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한 약속을 받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하였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 교수도 중국이 약속한 내용이 모호하다고 지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관세가 별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하였다.
반면 무역전쟁에 반대해왔던 온건론자들은 무역전쟁이 더 이상 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1단계 합의를 환영하였다. 시장의 반응도 그동안 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합의의 타결 소식이 보도된 후 주요 주가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사실에 반영되어 있다.

중국 내 반응은 미국과 조금 달랐다. 관세 부담 경감으로 2020년 6% 성장에 대한 낙관론이 대두하며 상하이와 선전의 주식시장이  폭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태도는 시장과 달리 아주 조심스럽다.  중국 정부는 국무원 신문판공실을 통해 협상 타결을 알렸지만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기자회견에서 왕서우원(王受文) 상무부 부부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에 공개한 2020∼21년 총 320억 달러 농산물 구매를 포함한 공산품, 에너지, 서비스 등 4,000억 달러 규모의 수입 증대 방안에 대한 질문에 대해 최종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고 답변하면서 확답을 피하였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소극적 자세는 2단계 합의는 물론이고 1단계 합의를 이행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요구처럼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향후 2년 동안 2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추진해왔던 수입 다변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또한 농산물의 국제시세가 무역전쟁 이후 대폭 하락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요구하는 금액에 맞추기 위해서는 중국이 현재 필요한 수요 이상으로 수입을 해야 한다. 중국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류한 보복관세를 다시 부과할 것이다.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곤란한 상황을 배려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견이 적은 내용을 중심으로 1단계 합의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2단계 합의를 위한 협상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미국이 처음 제시했던 150쪽 합의문 초안은 1단계 합의 과정에서 86쪽으로 축소되었다. 따라서 2단계 합의의 관건은 나머지 64쪽에 담겨진 쟁점들을 중국이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가에 좌우될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앞으로 진행될 2단계 협상의 성공 여부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아니라 중국 내 보수파와 개혁파의 승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중국이 미국이 요구하는 불공정관행 개선을 위한 이행기제의 도입을 주권 침해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2단계 합의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진커위 (金刻羽)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요구사항 중 일부는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피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공급측 개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서구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WTO 가입한 지 20년도 되기 전에 세계 1위의 상품 무역국으로 부상하였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외압에 굴복한다는 정치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지적 재산권 강화 및 자본시장 추가 개방 등과 같은 조치는 중국의 경제구조를 고도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구조개혁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한다면, 미국과 무역전쟁은 중국에게 불행으로 위장된 축복(a blessing in disguise)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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