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 카뮈와 고흐가 고통속에서 떠올린 이 꽃

정숭호 논설고문입력 : 2019-12-06 05:00
③알제리의 겨울에, 설중매 같은 아몬드꽃을 보다 카뮈, 억압 속에서 기억해낸 고향의 꽃 정신병원의 고흐가 조카 위해 그린 꽃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 



<지중해 북오디세이 3>
아몬드 꽃-불행과 절망을 이겨내는 희망의 꽃

나는 이제 그리스 남쪽 크레타 섬의 오렌지 꽃향기에서 깨어나 아프리카 북쪽 알제리 수도 알제로 떠나려 합니다.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니까 가능하지, 진짜 여행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정이지요. 크레타의 헤라클리온 공항에서 알제의 하시 메사우드 공항까지는 약 2300㎞. 1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싼 비행기는 14만원, 편하게 가려면 60만원 돈을 들여야 합니다. (이런 정보는 ‘크레타에서 알제까지, From Crete to Algiers’를 검색하면 순식간에 뜹니다. 외국 사이트인데도 항공 요금이 우리 돈으로 표시됩니다. 전에는 달러나 유로로 표시됐는데 원화로 표시되니 한국 여행객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이야기겠지요.)

알제리에서도 먼저 꽃부터 볼 겁니다. 아몬드 꽃을 보러 나설 겁니다. 크레타에서는 카잔차키스를 따라 오렌지 꽃을 봤지만 알제의 아몬드 꽃은 이곳에서 태어난 알베르 카뮈(1913~1960,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가 보여줍니다. 아몬드(Almond). 사람 눈처럼 생긴 견과류. 열한 가지 필수 영양소 덕에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국에서도 매일 섭취하는 사람이 많아진 아몬드는 ‘편도(扁桃)’로 번역됩니다. 우리 목 속 편도선도 아몬드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카뮈에게 아몬드 꽃은 모든 연약한 것들이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속 깊이 품고 있는 것, ‘희망’의 상징입니다. 아몬드 꽃이 겨울에, 한창 추운 겨울에 만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2월의 추운 밤에 하얗게 핀 아몬드 꽃을 보고 ‘편도나무들’이라는 글도 썼습니다. 이 글은 그의 산문집 <결혼·여름>(책세상, 김화영 역)에 실려 있습니다.

이 글에서 카뮈는 먼저 인간의 고난과 역경, 불행과 비극과 절망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우리가 비극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것과 절망을 혼동하고 있다. ‘비극적이란, 불행을 향해 한바탕 크게 내지르는 발길질 같은 것이리라’라고 로렌스는 말했다. 이야말로 건전하고 당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이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발길질을 받아 마땅한 것들이 많다.” “(불행과 비극과 절망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초인적인 책무다. 그러나 인간들이 오래 걸려서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책무를 흔히 초인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절망하지 말자.”

아몬드 꽃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 글 마지막에 나옵니다. “알제에 살고 있었을 때 나는 항상 겨울을 잘 참고 지냈다. 어느 날 밤에, 2월 달의 싸늘하고도 순결한 하룻밤에, 레 콩쉴 계곡의 편도나무들이 하얀 꽃들로 뒤덮이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연약한 눈(雪) 빛의 꽃이 모든 비와 바닷바람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황홀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꽃은 열매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었다.”

카뮈는 기성체제, 기득권, 다수의 지배든 뭐든, 그 어떤 것도 아닌 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면 이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행동한 ‘반항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세력이 준동할 때, 그런 세력이 자신을 억압할 때 고향인 알제의 겨울 아몬드 꽃을 생각하면서 견뎌낸 겁니다. 아몬드 꽃이 힘, 희망이 되어준 겁니다. 카뮈는 잘나갈 때 당시 프랑스 문화계의 권력이었던 사르트르와 그의 동조자, 소위 실존주의자들에게 달달 볶였습니다. 프랑스 본토가 아닌 식민지 알제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기들처럼 파리의 엘리트 교육기관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당시 겉멋 든 프랑스 문화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함께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척 시달렸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의 전문가가 아니니 여기서 그치겠습니다만, “지식인(실존주의자)들이 자기비판을 시작하면 남을 달달 볶기 위한 것”이라는 카뮈의 그 무렵 어록 하나는 옮겨놓고 가겠습니다. 카뮈는 사르트르 일파가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그래 우리도 잘한 건 없지. 그건 욕먹을 만해. 하지만 네(카뮈)가 저지른 것에 비하면 우리 잘못은 약과라구!”라는 식으로 악에 받친 듯 덤벼든 걸 이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자기비판은 ‘1’도 없이 반대자들을 무조건 공격부터 하는 것 같아서 옮겨본 겁니다. 그 정도는 소위 좌파 지식인들이 더 심한 것 같고요.

여기까지 읽으시고는 “여보게, 아몬드는 겨울 꽃이라며? 우리 매화처럼 2월이 되어야 핀다니 지금 알제에 가본들 꽃을 볼 수 있겠어?”라고 혀를 차실 분이 있을 것 같군요. 그래서 나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으로 아몬드 꽃을 감상할 생각입니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올리브, 그리고 별과 밀밭, 노란색 방, …. 고흐 하면 이런 그림들만 떠올리던 나는 시인이자 뛰어난 기자인 빈섬 이상국 덕에 고흐가 프랑스 남쪽 지중해 지방인 프로방스에 머물 때 아몬드 꽃과 지중해 바다 풍경도 그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중해 오디세이> 시리즈에 카뮈와 아몬드 꽃에 대해 한 편을 쓰겠다고 했더니 추사(秋史)와 한시와 매란국죽(梅蘭菊竹)에 밝은 빈섬은 전화기로 고흐의 그림을 검색해 보여주면서 고흐에 대해서도 꼭 쓰라고 한 거지요. 고흐도 아몬드 꽃을 “희망을 주는 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요.

빈섬이 보여준 그림은 ‘꽃 피는 아몬드 나무’였습니다. 고흐는 세상을 떠나기 여섯 달 전인 1890년 2월에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직전에 동생 테오가 조카를 낳았지요. 형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돌봤던 테오는 아기 이름도 형 이름을 따 빈센트라고 지었습니다. 그 무렵 고흐는 프로방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조카의 출생을 직접 축하할 수 없던 그는 대신 아몬드 꽃 그림으로 축하하려 했습니다.

다음은 고흐가 조카 출생 며칠 뒤인 2월 15일에 어머니에게 쓴 편지 앞부분입니다. “(전략) 제수씨가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요. 윌(여동생)이 도와주러 가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전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기를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후략).”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신성림 역)

고흐는 얼마 후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며, 얼마나 자랑스럽게 이 그림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내 작업은 정말 잘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를 그리고 있었지. 아마 너도 그 그림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최고임을 알게 될 게다. 이제껏 그린 것 중에 가장 끈기 있게 작업한 것으로 아주 차분하고 붓질도 더 안정되게 그렸거든. (후략)”

고흐의 이 그림을 다시 봅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잎새 없는 가지에 꽃만 화사하니 피어있습니다. 꽃들은 눈보라가 아무리 거세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가지에 꼭꼭 붙어 있습니다. 강인해 보입니다. “이제 나는 곧 열매를 맺을 터다! 나에게서 희망을 보지 못하느냐?”라는 듯합니다. 고흐는 또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가고, 결국 그해 8월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오렌지 꽃물로 나를 취하게 했던 카잔차키스도 한겨울에 핀 아몬드 꽃을 보고 “기적의 꽃”이라며 놀라워했습니다. 그의 <영혼의 자서전>(열린 책들, 안정효 역)에 나옵니다. 카잔차키스는 아주 젊었을 때 친구와 그리스의 아토스 산 수도원을 순례했습니다. 아토스 산에는 스무 개의 수도원이 있으며, 900여 전부터 지금까지 수도자들과 허락받은 남자만 들어설 수 있는 ‘그리스정교회의 성지’입니다. 카잔차키스는 삶과 믿음에 대한 깨우침을 얻을까 싶어 친구와 함께 40여일간 수도원을 순례했는데 별 소득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마침내 우리들이 순례를 끝내고 떠나려고 성탄절 전야에 다프니(아토스 산 바깥의 세속 마을)로 돌아갔을 때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기적이 우리들을 기다렸다. 한겨울이었는데도 초라하고 작은 어느 과수원에서는 아몬드나무에 꽃이 피었던 것이다!” 기적 혹은 영성은 아몬드나무에도 있더라 라는 카잔차키스의 깨달음은 순례에 함께 나섰던 친구의 짧은 시에도 담겨 있습니다. “나는 아몬드나무에게 말했노라./‘누이여, 신의 얘기를 해다오.’/아몬드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카잔차키스와 카뮈가 아몬드 꽃을 찬양한 건,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아몬드 꽃을 캔버스에 힘들여 옮겼던 것은 이 연약한 꽃의 끈질긴 힘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몬드 나무에서 힘과 용기를 본 것입니다. 아몬드 꽃을 찬양했던 이들을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 비유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들의 장난 때문에 20년 동안 바다에서 고난을 겪었지만 한순간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지중해의 남자’ 오디세우스와 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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