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격화되는 한.중.일 경쟁.. 아세안 시장 공략 장기적 포석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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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9-11-2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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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중·일 3파전에다 미국·EU 등의 공세도 만만치 않아 경쟁 점입가경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2009년, 2014년에 이어 3회 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서 개최되고 있다.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우리의 설 자리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으니 이 시장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국내 제조업 환경도 열악해지고 있어 대안(代案) 생산기지로 다시 부각된다. 정부에서도 신(新)남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고 우리에게 평탄하지만도 않다.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 센터로 부상하고 있는 아세안 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일본과 우리가 주도권을 다투는 2파전의 양상이 짙었으나, 최근에는 중국까지 가세하는 3파전이 되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지경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과 EU도 경쟁 대열에 본격 합류하기 시작함으로써 다자간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기도 하다.

올 들어 우리 수출을 보더라도 10월 말 누계 기준 베트남(0.6%) 혹은 싱가포르(18.3%)에서만 호조 내지 턱걸이를 하고 있는 반면 다른 시장에서는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레이시아(-1.2%), 필리핀(-30.4%), 태국(-3.0%), 인도네시아(-13.2%) 등에서는 감소세가 역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의 아세안 시장에 대한 수출은 증가세가 현저하다. 8월 말 누계 기준 베트남(18.3%), 말레이시아(11.6%), 필리핀(12.3%) 등으로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에 대한 수출도 한 자리 수 증가율로 나쁘지 않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 가지로 이 지역 수출에 고전을 하고 있어 한 배를 타고 있다. 같은 기간 태국(-4.3%), 싱가포르(-16.1%), 베트남(-1.2%), 인도네시아(-9.9%), 말레이시아(-6.6%), 필리핀(-7.8%) 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이다. 중국의 공습에 나가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 지역에 대한 투자를 보더라도 베트남에 대한 지나친 편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에서만 우리가 최대 투자국이지만 다른 국가로 가면 우리가 열세임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의 외국인 투자 중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그친다. 중국·일본·미국·EU 등 경쟁국들이 10% 대의 두 자리 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에 비해 초라하다. 말레이시아·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에도 조금 높은 한 자리 수 점유율에 불과해 저돌적인 중국이나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전체 시장을 균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또한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시장에 대한 지나친 편중은 제한적 파이 창출을 야기하고, 장기적인 시장 확대 차원에서도 경쟁국에게 밀릴 수 있다는 적신호이기도 하다.

중국 상품 현지 시장 진출 본격화, 일본과의 상생 협력과 한류(韓流) 플랫폼 개발 절실

한국 경제의 활기 회복을 위해서 아세안 시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시장 진출 형태로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원시안적으로 시장을 조율해 나가야 한다. ‘묻지 마 투자’ 식으로 덩달아 베트남으로만 와르르 몰려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인도네시아(2.7억 명), 필리핀(1.1억 명) 등은 베트남보다 인구가 더 많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제조 환경이 더 낫거나 시장 허브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곳도 있다. 생산·유통·창업 등 시장 별로 특화된 기능을 부여하면서 아세안 시장 전역으로 커버할 수 있는 진출 전략이 요구된다. 산업별로 진출 전략의 차별화와 융합화를 서둘러야 한다.

어차피 한·중·일 3파전이다. 일본은 터줏대감으로 굳히기를 시도할 것이다. 중국은 화교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파상공세를 펼칠 것이 확실하다. 자금력을 과시하면서 시장 선점을 위해 갖은 전술을 펼칠 것이다. 미국과 EU는 중국에서 빠져 나오는 공장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전략을 다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 10개 국가는 이들의 공세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포지션을 만들기에 급급할 것이다. 태생적으로 이들은 패권이나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편 가르기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일본의 협공에도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의 이런 기질을 충분히 인지하면서 공존공생의 프레임을 갖고 가면 의외의 승산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시장이 급속도로 커플링화(동질화)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의 축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점이다. 1990년대 아세안 시장 진출 초기의 방식이 아닌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해야 한다.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닌 시장의 기능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반 공산품뿐만 아니고 문화콘텐츠, 스타트업 등 현지 시장의 분위기에 편승할 줄 알아야 한다. 선단(船團)을 다시 꾸려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현지 시장에서 상생하는 생태계 구축이 요구된다. 인프라 수요도 챙겨야 한다. 내줄 것은 과감히 주면서 장기적인 포석을 두어야 한다. 일본의 다이소·유니클로·無印良品(MUJI), 중국의 미니소 등이 동남아 시장에서 급팽창을 하고 있다. ‘한류(韓流)’가 뜬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것이 없다. 단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이기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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