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수출 뒷걸음, 새 효자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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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9-11-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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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막연한 수출 회복 기대는 금물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수출이 11개월째 뒷걸음이다. 우리 경제의 젖줄인 수출이 무너지니 경제 전체에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 엔진이 급속하게 후퇴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수출이 살아나야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적신호를 중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이상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에서 벗어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문제는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극복 가능한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수출이 처하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엄중하고 중차대하다. 너무 가볍게 보다가는 회복은커녕 더 큰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수출이 부진한 것은 크게 두 개의 원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주력 상품의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등 주력 상품이 두 자릿수의 큰 폭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으며, 좀처럼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눈여겨봐야 될 것은 부동의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의 동향이다. 최대의 호황이던 작년에 비해서도 생산량과 수출물량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으나 수출 금액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가격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수요는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으나 글로벌 공급 구조의 변화로 공급 물량이 늘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을 보면 명암이 대조적이다. 9월 말 기준 미국 수출만 소폭 증가하였을 뿐 대부분의 시장에 대한 수출이 극히 부진하다. 주요 국가 별로 보면 중국(-18.1%), 베트남(0.7%), 홍콩(-32.6%), 일본(-5.6%), 인도(0.5%), 대만(-21.0%), 멕시코(-1.5%), 말레이시아(0.1%), 필리핀(-28.5%), 호주(-19.9%), 태국(-2.7%), 인도네시아(-12.4%) 등이다. 인근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수출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여실히 입증된다.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신(新)남방 정책’이 무색할 정도로 성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이 증가세로 전환되지 않고 전체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이 없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고 하지만 경쟁국들의 수출 현황을 보면 우리보다 선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수출은 8월 말 기준 0.3%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은 -4.7%로 감소 폭이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일본의 중국 시장 수출은 -8.8%이고, 기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수출 감소 폭도 한 자릿수로 우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부진하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수출이 -8.8%로 감소하였지만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만은 6월 말 기준 -3.4%, 미국도 같은 기간 -0.8%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쟁국들의 수출 통계와 비교해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리 수출이 가장 난조에 빠져들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년과는 전혀 다른 현상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쟁국들보다 우리 수출이 부진한 이유를 알아야 진단과 해법이 나올 수 있다

통계만 잘 읽어도 왜 우리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글로벌 시장의 가치사슬 변화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미·중 무역 전쟁의 장기화가 우리 수출이 부진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석연찮은 구석들이 많다. 실제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의 수출이 그리 많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나마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 일본의 수출이 중국에 비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약간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것으로 평가되기는 한다. 세계 최대 공급기지인 중국의 수출이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중국에 이어 새롭게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나 인도 시장에 대한 수출을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가치사슬의 변화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뼈아프다. 여기에는 우리 주력 수출상품의 편중 현상도 한몫을 한다.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에 이어 새로운 수출 상품이 개발되지 않으면 시장의 변화에서 주도권을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출에 대한 인식에 있어 과거와 다른 보다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동남아나 인도 시장에서 수출이 획기적으로 살아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주원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의 대응은 너무 무사안일하다. 올 연말만 지나거나 반도체 시장 가격이 회복되면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섣부른 낙관론으로 일관한다. 이는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해외 시장 여건만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장 흐름만 잘 타면 면피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요행수만을 기다리기에는 시장의 변수들이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미·중 무역 전쟁도 있지만 ‘뉴 차이나(New China)'와 ’Post China',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의 변화가 대응 능력에 따라 국가 간의 수출 순위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더 이상 ‘빠른 추격자’가 아닌 ‘우월적 선도자’의 대열에 빠르게 합류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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