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무연고 사망] ③ 박진옥 상임이사 "가난하다고 해서 애도를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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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홍승완 기자
입력 2019-12-1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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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 돈 없어 시신 포기…사회가 나서서 장례 챙겨야"

  • "죽은 이를 챙기는 예우는 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사무실 한쪽에 놓인 거울에 무연고 사망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진=홍승완 기자 ]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마포경찰서 옆 작은 건물.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좁은 계단을 돌고 돌아 올라가면 좁지만 아늑한 사무실을 하나 나온다. 바로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돕는 비영리 민간단체 '나눔과 나눔'이 위치한 곳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한쪽 커다란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거울 위에는 하얀색 펜으로 올해 장례가 치러진 무연고 사망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줄지어 적혀있는 이름들은 장례식장에 나란히 놓인 국화꽃과 비슷해 보인다.

'나눔과 나눔'이 위치한 곳은 좁았지만, 최근 몇 년간 펼쳐온 활동과 이야기는 깊고도 넓다. 서울시 비영리단체 지원 사업을 통해 장례지원을 시작했던 이 단체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 이야기를 양지로 가져왔다. 그리고 결국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서울시가 무연고 사망자 등의 장례를 상시로 지원토록 하는 공영장례조례 지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아주경제는 무연고사망자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를 만나 '죽음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눔과 나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면?

-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장례지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범위를 넓혀서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들을 돕는 등 외연을 넓혀나가면서 무연고 사망자를 돕게 됐다. 현장에서 보니 정말 장례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무연고 사망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15년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돼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7년 서울시의 지원이 끝날 때 조례의 필요성에 대해 서울시의회에 제안했고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장례지원이라는 것이 한시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2018년 서울시 공영장례조례가 만들어지게 됐다. 시작과 함께 약간 혼란은 있었지만, 지난해보다 올해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더욱 개선됐다. 내년에는 더 안착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나?

-현재는 (나눔과 나눔은) 시의 지원을 받고 있지는 않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공영장례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다. 나눔과 나눔의 지향점은 단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제도가 되고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더는 나눔과 나눔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실제 예산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고인을 모시고 장례 의식을 하는 의전 업체가 받고 있다. 시신을 수습하고, 제대로 된 격식을 갖춰서 화장해주는 것 등을 맡고 있다.

'나눔과 나눔'이 하는 일은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무연고자의 부고 싣기, 연고가 있는 이들에게 연락, 장례 의식을 위한 종교의식, 장례 절차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배치하는 것, 무연고장례 관련 상담, 공영장례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을 한다. 공영장례 시스템이라는 뼈대가 사람들과 관계 맺도록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무연고사 사망자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데, 어떤 이들이 무연고자가 되나?

- 연고자가 없는 사람이 무연고자다. 그러나 주민등록 시스템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연고자가 없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무연고 사망 정의 3가지인데 연고자가 없는 사람,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사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한 사람이다. 지난 2017년 한 언론의 보도에서는 무연고자 중 95% 이상이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 무연고자가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례비용 때문인가?

- 장례비용에 앞서서 병원비도 부담이 된다. 한번은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입원한 뒤 병원비가 700만 원이 나왔다. 결국 연고자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요새 대부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데 병원비만 200~300만 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가족을 찾기가 힘들 경우 병원에 안치되는데 하루 안치 비용이 10만 원이다. 그리고 최소한 평균 장례비 300만 원이다. 시작부터 700-800만 원이 들게 된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사망자와 가족 모두 조의금을 낼 지인, 즉 사회적 자본이 척박하다. 이렇게 되면 가족들이 온전히 장례비용을 내야 하는데 시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신을 포기하면 병원은 병원비와 안치비 못 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어차피 못 받을 거면 사회가 적절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나?

 

2017년에 처음 시작돼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무연고사망자 합동위령제에는 나눔과 나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빈곤사회연대 등이 참여했다. [사진=나눔과 나눔 제공 ]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왜 공공기관이 나서서 책임져야 하나

- 현재 시스템상 돈이 없어도 살아있으면 치료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죽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장례 비용이 없으면 시신을 포기해야 한다. 국가가 무연고 사망자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러나 자기 가족의 시신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제대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인 가구 증가와 가족해체 등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공공의 장례 역할 확대는 더 필요하다. 예전에 치매와 보육 모두 가족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사회복지로 들어왔다. 장례도 이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본다.

그래도 이제는 지자체 단위로 공영장례가 생겼는데 이전에는 어땠나?

예전에는 장례식 자체가 없어서 애도할 수가 아예 없었고 시신을 제대로 염하지도 않고 화장하는 등 의식이라고 할 만 한 게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격식이 갖춰진 명확한 입관 절차가 생겼다.

장례식의 실무적인 역할을 의전 업체가 맡아서 한다면, 나눔과 나눔은 상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비마이너라는 언론사와 함께 부고를 계속 올리고 있고,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망자를 추모하도록 돕는다. 매년 홈리스 추모제를 동지에 열고, 한 해 동안 장례 했던 분들의 이름을 전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가족을 잃어버린 분들이 와서 잃은 가족을 찾을 수 없는지 확인하고 가기도 한다.

현재 무연고 사망자와 관련된 법률은 어떤 것이 있나?

-무연고자와 관련된 법률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유일하다. 지난해 개정 때 처음으로 무연고 사망자가 언급됐다. 그러나 이 법률의 제정 취지가 공중보건위생이며, 사망자들의 시신을 빨리 처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 때문에 이 법을 기반해 존엄한 삶의 마무리나 애도를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사회가 새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공영장례가 그래도 서울에서는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 25개 지자체에 모두 공영장례조례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는 의문이다. 나눔과 나눔은 최근 19일 연속 장례를 치렀다. 자원봉사자 모집, 종교예식, 장례 안내 등을 모두를 맡고 있는데, 현재 공무원 조직 속에서 이런 일이 다 원활히 진행될지 모르겠다.

조례가 만들어지고 예산이 편성됐다고 하더라도 나눔과 나눔과 같은 운영 주체가 연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장례 시스템이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만든 조례와 나눔과 나눔의 활동이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무연고사망자 추모의 집은 3,000여 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들이 잠든 곳이다.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은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이곳에 10년 동안 안치되고, 10년이 지나면 합동으로 안장된다.[사진=나눔과 나눔]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연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방송에 나간 단체 관련 영상을 보고 자원봉사를 온 청년이 있었다. 본인이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왔다고 했다. 본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로 왔고, 가족들과 연대도 끈끈하지 않았다. 졸업 및 취업에 대해 불투명하고 결혼 계획도 없어서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년 무연고 사망자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꽤 많은 이들이 왔었다. 오히려 40~50대는 타인의 고통으로 보지만, 되레 젊은층은 고독사와 무연고사 남의 일 같지 않게 보고 있었다.

걱정이다. 혼밥과 혼술은 자본주의에서는 찬양하고 있지만, 이것을 괜찮지 않다고 본다. 계속 누군가와 연결되고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이것도 연습해야 하는데. 건강과 젊음이 있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이 괜찮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필요한데 그때 가서 관계 맺기를 하기에는 오히려 힘들다. 그러면 고립되기 매우 쉽다.

무연고자분들의 장례를 지원해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감정이 힘들다.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 끊임없이 이야기 해야 한다. 혼자 장례를 다녀온 날이 온라인에 장례를 다녀온 뒤의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재정이 가장 어렵다.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어 직원 임금을 최저임금을 맞출 정도지만, 모금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고민하는 문제다. 지원을 받았을 경우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을 때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받는다면 제대로 운영해서 내부의 복지를 좀 높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웃음)

무연고 증가의 원인과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무연고 사망자의 핵심원인은 빈곤이다. 빈곤해지면서 고립되는 것이다. 이후 가족들의 단절도 되고 혼자 죽고 가족들도 시신을 인수하지 않게 되는 것이냐. 결국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가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본다.

최근 무연고자 증가 뒤에는 IMF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IMF 이후에 가족이 해체가 많이 일어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빈곤에 빠진 뒤 헤어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 보면 60대 초반 분들이 가장 많다. IMF 사태가 발생한 20년 전 그분들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2,000명이 넘는 사람이 평균수인 80살보다 20년이나 일찍 죽는 현상을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라고 볼 수는 있을까?

특히 남성들의 경우에는 돈이 관계의 기반이다. 예전에는 남성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면서 책임도 지웠다. 그 때문에 성공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가족들 앞에도 당당히 못 서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무연고 사망자들이 생기기 때문에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공동체 회복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겠지만, 우선 단기적으로는 관계가 단절된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본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만난 박진옥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회적 장례지원와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나눔과 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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