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무연고 사망] ①가난과 고독의 '섬'에 갇혔던 28세 그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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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홍승완 기자
입력 2019-11-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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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암 투병 후 사망 1년 뒤 빈곤과 고독에 짓눌리다 짧은 생 마감

  • 연락 끊겼던 가족들 시신인수 거부…무연고 처리 후 10년간 유골 봉안

  • 경제적 고립에 따른 우울과 자살 무연고사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소설가 김훈은 얼마 전 벗의 화장장에 다녀온 소회를 남기며, 삶과 죽음의 무게를 이렇게 달았다. 일흔 줄에 들어선 작가는 결국 한되 반의 뼛가루로 남는 인생을 이야기하며, 죽음의 가벼움으로 삶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다고 적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죽음을 맞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무연고(無緣故) 사망자들이다. 무연고의 사전적 정의는 혈연이나 법률적 관계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죽음과 무연고가 연결될 때 의미는 다소 달라진다.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이들 중에는 가족이 있는 이들도 있다. 다만 가족이 시신인수를 포기할 경우에도 죽은 이는 '무연고 사망자'로 생을 마친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무연고 사망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4년 1379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2447명으로 늘어났다. 불과 5년 사이에 두 배가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빈곤의 심화와 공동체 붕괴에 따른 1인 가구 증가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우리사회는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자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은 3회에 걸쳐 게재하는 무연고 사망자 시리즈를 통해 '홀로 맞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애도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짚어보았다.

◇엄마 영정사진 옆에 놓고 1년을 버텼던 28살 은영 씨

"아가씨 가는 길에 노잣돈 줬다고 생각해야지 뭐"

경기도 외곽의 한 임대아파트의 복도에서 만난 50대 여성 김아무개 씨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유명을 달리한 최은영(가명·28) 씨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은영 씨와 종종 교류하면서 지냈고, 지난해에는 최 씨에게 300만원 정도를 빌려주기도 했다. 김 씨는 "지난해 아가씨 엄마가 위암에 걸렸다가 돌아가셨어. 장례 치를 돈도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없는 살림이지만 융통해줬지"라고 말했다. 이어 "아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제 1년 정도 됐는데, 그리워하다 엄마를 따라간 것 같아. 엄마를 잃은 뒤 많이 외로워했어"라고 덧붙였다.

이제 은영 씨에게 빌려준 돈 300만원을 받을 길이 없게 됐지만, 김 씨는 야속함보다는 안쓰러움이 가득 찬 얼굴로 고인을 기억했다. 김 씨의 기억 속 은영 씨는 "참 열심히 살던 아가씨"였다. 속옷 가게와 소아과 등에서 시간을 잘게 쪼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왔다. 게다가 싹싹하고 심성도 착해 이웃인 김 씨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신 사다 주기도 했다. 9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임대아파트로 들어온 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은영 씨였다는 걸 알기에, 김 씨는 28살 젊은이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했다.
 

크린키퍼스 직원이 은영 씨의 유품을 담고 있다. [사진=크린키퍼스 제공]


◇홀로 죽음 맞이한 작은 방···가족도 외면한 시신

지난달 30일 기자는 유품처리업체인 '크린키퍼스'와 은영 씨가 살던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좁은 복도를 지나 찾은 아파트 어느 한 집은 회색 방범창이 뜯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지난 9월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던 흔적이다. 신고를 한 사람은 은영 씨가 일하던 속옷 가게의 사장 A 씨였다. 이틀 연속 은영 씨가 결근을 하자 걱정돼 아파트를 찾은 A 씨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한 것이다.

당시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A 씨로부터 은영 씨가 최근 많이 우울해했다는 말을 듣고 출동한 경찰과 함께 논의한 뒤 방범창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아파트 안에는 세상을 떠난 지 하루 남짓 지난 은영 씨의 시신과 주인을 잃은 강아지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당시 출동한 소방대원은 "아직 부패는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근 혼자 사시는 분 중 고독사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번 경우는 다르지만,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면서 냄새가 나 이웃 주민 신고로 발견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품처리업체인 크린키퍼스는 은영 씨가 살았던 임대아파트와 고독사 유품처리 계약을 맺은 업체다. 경제적으로 힘든 1인 가구가 많은 아파트에서는 은영 씨처럼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은영 씨가 세상을 떠난 지 2개월이 가까워진 시점이었지만, 15평 작은 아파트는 그가 숨졌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유품을 찾으러 오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은영 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담당 구청에서는 2주 동안 은영 씨의 가족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외할머니와 이복형제는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생전에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시신이 발견된 지 14일째 되던 날 은영 씨는 그렇게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분류번호는 3번. 유족(형제)이 있으나 시신 인수 기피 시 부여받는 번호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아파트. 작은 방은 침대가 방안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쾌유를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봉투 안 수많은 약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매일 밤 잠드는 침대 바로 옆에 놓인 탁자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영정 사진이 있었다. 은영 씨가 그리워했다던 어머니의 사진이었다. 얼마나 수많은 밤들이 눈물로 젖어 내렸을까 짐작되는 모습이었다.

세상을 떠난 은영 씨 책장에는 일기장과 자격증 획득을 위한 전공 서적들이 꽂혀있었다. 1년 전에 쓴 일기에는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는 사주 점괘에 행복해하던 날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30살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고 90살까지 장수할 것이라던 사주풀이가 담겨있던 은영 씨의 삶은 언제부터 기운을 잃어갔던 것일까? 지난 6월 은영 씨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4만원 남짓한 임대아파트의 계약을 갱신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보증금은 은영 씨의 유품 처리에 마지막으로 사용됐다.
 

무연고자 최 씨가 살던 15평 아파트에 놓여 있던 옷가지와 책상. 책장엔 자격증 시험을 위해 최 씨가 보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사진=크린키퍼스 제공 ]


◇"우울은 삶의 의지를 잠식"

이창호 크린키퍼스 대표이사는 (최 씨가 살던) 이런 임대아파트에서 고독사, 무연고사 사망자들 유품 처리 의뢰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품처리와 관련해 의뢰가 오는 곳들의 80~90%가 홀로 살았던 1인 가구"라고 말했다. 그는 "쓸쓸히 숨진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마음의 병인 우울증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냉장고를 보면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이나 오랫동안 먹지 않은 음식이 쌓여있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우울증은 사람이 살아갈 의욕을 깎아버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은영 씨 역시 죽기 전부터 일하던 가게의 사장님에게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가 가장 최근에 근무하던 곳은 경기도 한 쇼핑몰에 위치한 작은 속옷 가게였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혼자서 일하던 은영 씨였다. 매장 벽부터 입구까지 걸어도 채 열 걸음도 되지 않는 작은 매장은 환한 형광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은영 씨는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이야기 나눌 사람도 귀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마음을 터놓고 말할 대상은 없었던 셈이다.

크린키퍼스의 이 대표는 경제적 어려움은 고독한 이들의 우울을 더욱더 깊게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임대아파트에서 고독사나 무연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말, 받는 이가 사라진 지 오래 된 은영 씨 세대의 우편함에는 우편물들이 열 통 넘게 쌓여 덮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우편함 덮개를 열자 흰색 봉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채권추심 수임 사실 통지서였다.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던 은영 씨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각이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는 "경제적 고통은 많은 이들을 고독한 죽음으로 밀어 넣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라고 지적한다. 스물여덟 살 최은영 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최종적으로 분류된 후 구청이 지정한 장례업체에 시신이 인수됐으며,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한 줌 재로 생을 마감했다. 남은 유골은 파주 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회색 차가운 철제 선반 위에 봉안됐다. 그리고 그 상태로 10년 동안 찾아오는 가족을 기다려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약수골길 86 파주추모공원에는 최 씨와 비슷한 처지의 무연고 사망자 3000명의 유골함이 보관돼 있다.

 

무연고 사망자인 최은영 씨의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최 씨 어머니의 영정사진. 1년 전 암투병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최 씨는 주변에 외로움을 자주 호소했다고 이웃들은 말했다.  [사진=크린키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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