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지중해 오딧세이(1)]카뮈와 카잔차키스, 그리고 햇살 바다의 안내서

정숭호 논설고문입력 : 2019-11-19 15:32

[오렌지는 지중해를 대표하는 과일이다. 지중해 광합성의 결실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 사는 모습에 반한 한국인이 많습니다. 이미 가 본 이는 다시 가고 싶어 하고, 안 가 본 이는 ‘버킷리스트’로 꼽습니다. 이 분들과 함께 오늘부터 주 1회 <북클럽 - 지중해 오디세이>로 지중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책과 그림과 음악과 영화로 지중해를 연구하려 합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생략- 여행을 연구하게 되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던 것, 즉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단치는 않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1969~ )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말입니다. <북클럽 - 지중해 오디세이>가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보지 않은 지중해 여행기]
ⓛ지중해에서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고 싶다


태양은 뜨겁고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맑은 곳. 지중해는 “온 세상의 축복을 다 받은 곳”이라지요. 어제 오늘 사이, 날이 차가워진 탓에 지중해가 더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지중해에 가면 사람도 광합성을 할 것 같습니다. 오직 빛과 물과 공기만으로 결실을 만들어내는 광합성. 무기질이 유기질이 되는 과정. 이 과정을 통해 나뭇가지는 하늘을 향해 쑥쑥 뻗어나가고, 잎사귀들은 풍성해지며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이곳 아닌 다른 세상에서도 광합성은 이뤄지고 있지만 이곳의 광합성이 더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생명에도 더 좋고 힘찬 기운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여행가가 지중해의 장터에 나온 농산물을 보고 쓴 글을 읽은 후 지중해의 광합성이 우리의 광합성과 다를 것이라는 추측은 더 강렬해졌습니다.
“알 쉬르 라 소르그 골목상가 주말 벼룩시장에는 루베롱 산록에서 나오는 모든 농산물이 모여들었다. 세상의 모든 빛깔과 원초적 생명력의 경연장 같다. 화사함을 넘어 순수하다. 섣불리 요리하는 게 민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향 옥천역 앞의 오일장이 겹친다. 내 고향에서 본 온갖 나물보다 색이 훨씬 밝다. 햇볕이 다른 게다. 사계절 온화한 기후와 명징한 햇살은 빛깔을 달리 만들었다. (생략) 인근 고르트 고원의 내리쬐는 햇빛만 먹었는지, 언덕 너머 루시용의 붉은 흙에서 자랐는지 야생적 원색이다. 생김새도 늘씬하다. 지중해의 태양은 바다를 진남색으로 물들이더니 프로방스의 들판에 풍만함을 펼쳐놓았다.” (송영만, 『지중해 여행지도, 나를 기억하다』)
유익한 칼럼을 재미나게 잘 쓰는 한 과학자는 광합성에 대해 쓰면서 “식물을 먹는 것은 태양을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광합성에 대해 놀란 것은 바로 속도다. 4월 초에 감자를 심으면 하지 무렵이면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다. 새끼손가락만 한 가지가 팔뚝만 하게 자라는 데는 불과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아침에 상추를 뜯었어도 햇볕만 좋으면 저녁에 또 뜯을 수 있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고스란히 식물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밭은 눈으로 직접 광합성을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 우리가 감자와 가지를 먹는 까닭은 녹말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녹말 분자의 화학결합 속에 감추어진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다. 결국 우리는 햇빛을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가 없으면 식물도 없고 그러면 우리도 없다. 아, 고마운 햇빛이여, 그대 있으매 내가 있도다.” (이정모, 한국일보 2016년 7월 26일자 『이제는 쉴 때다』)
“식물을 먹는 것은 태양을 먹는 것”이라는 그의 결론에 감탄하면서 “지중해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식물, 더 뜨겁고 더 눈부신 태양빛을 먹고 사는구나”라는 촌스러운 시샘이 생겨납니다. 지중해가 더 가보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중해에서는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 쏟아진다고 합니다. “정오 가까이 되었을까. 햇빛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며 빛으로 바위를 씻어 내고 있었다.” 지중해가 배출한 위대한 작가, 그리스의 카잔차키스(1883~1957)가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에 써놓은 한 줄입니다. 지중해의 또 다른 위대한 작가인 카뮈(프랑스, 1913~1960)도 여러 작품에서 지중해의 눈부신 태양을 언급했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로 시작되는 그의 초기작 『이방인』의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후 “그것은 (눈부신)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카뮈는 다른 글에서도 매우 자주 지중해의 태양을 다룹니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을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 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산문집 『결혼·여름』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
말이 나온 김에 카잔차키스와 카뮈에 대해 조금 더 말씀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이 지중해 여행기는 앞으로도 이 두 작가의 느낌과 생각, 글에 의지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카잔차키스는 지중해의 북쪽인 그리스 사람입니다. 카뮈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지중해 남쪽으로,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같이 지중해를 다루었다고 해도 글의 분위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은 1957년 노벨문학상 최종 경합자였습니다. 카뮈가 한 표 차이로 수상자가 됐습니다. (위대한) 카잔차키스였기에 프랑스와 그리스의 국력 차이가 단 한 표 차이로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뮈보다 훨씬 고령으로 병중이었던 카잔차키스는 카뮈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그 달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뮈는 카잔차키스가 병상에서 메시지를 직접 쓴 것을 알고 감동을 카잔차키스의 부인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이 상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였다”라는 말과 함께요. 둘은 작품으로는 교감을 했지만 생전에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지중해에 대한 원망(願望)이 있다면, 이 두 사람 때문일 거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카뮈가 1960년대 초반에 『이방인』으로 알제리의 지중해를 소개했으며, 나중에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로 그리스 쪽 지중해를 한국으로 끌고 온 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군요,
나는 지중해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사람도 지중해에서는 광합성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중해의 햇빛을 내리받으면 내 몸에서도 가지가 돋고 잎사귀가 달리며 열매가 풍성해질 거라는 상상이 듭니다. 눈부신 태양, 푸른 바다 옆에서는 햇빛만으로도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지나간 역사에서 지중해의 햇빛과 푸른 하늘과 바다는 지중해 사람들로 하여금 광합성을 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선 앞서 말씀드린 카뮈의 산문집에 나오는 다른 글 한 토막을 읽어보시지요.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은 짐작도 못했던 혼합물로서 완전한 잡종들이다. 그 고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아름답다. 물론 아랍사람들이 많고 그밖에 다른 종족들도 있다.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은 뜻밖의 혼혈에 의해 형성된 잡종들이다. 스페인인, 알자스인, 이탈리아인, 몰타인, 유대인, 그리스인이 마침내 이곳에서 만났다. 이 무지막지한 잡종교배가 미국에서 그랬듯 행복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서’)
카뮈는 인종의 혼합으로 청년들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무리를 지은 젊은 여자들이 샌들을 신고 색깔이 눈부신 얇은 천의 옷을 입고 거리를 오르내리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뒤이어 나오니, 카뮈는 혼혈 알제리 사람들의 얼굴과 몸매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혼혈은 지중해 인간들의 겉모습만 아름답게 한 것 같지가 않군요. 지중해를 다녀온 사람들은 지중해에는 관용과 포용이 넘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것 역시 오랜 역사를 거쳐 각종 다양한 사상과 종교와 문화가 서로 이종교배를 한 결과, 아름다운 혼혈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을 광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정신의 광합성! 물론 이곳 한국에서 광합성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식물도 광합성을 하고, 사람들도 내가 생각하는 의미에서 광합성을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이 부족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해, 오직 세상에는 내 편과 네 편으로만 이뤄졌다는 생각이 넘치기만 해, 한국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광합성 결과는 지중해의 그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잎사귀는 작아지고 열매는 쪼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중해에서 광합성을 해보려고 합니다. 당장은 직접 가지 못할 형편이라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빛과 하늘과 바다를 상상하며, 책과 지도를 펴놓고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여보려 합니다. 그림과 음악과 영화의 도움도 받겠지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있으니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유럽 남부와 아시아 서부, 아프리카 북부로 둘러싸인 지중해의 동서쪽 길이는 약 4,000㎞, 남북의 최대 폭은 1,600㎞, 평균 수심은 1,458m, 가장 깊은 곳은 5,092m입니다. 약 44만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해온 이 지중해를 나는 때로는 오디세이의 배를 타고 건널 것이며 때로는 얕은 바닷가에서 지중해의 섬들과 도시들의 흥망성쇠, 태어났다가 스러진 숱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볼 겁니다. 괜찮으시면 함께 가시죠.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희랍인 조르바'(1964년)의 한 장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희랍인 조르바'(1964년)의 한 장면.]



 

[지중해]

 

                                                정숭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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