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불로촌의 염원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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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19-11-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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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11)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기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인류는 불로촌의 염원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불가능하지만 신에게는 가능한 불로장생이 거론되면서 공간에 대한 신화가 시작되었다. 속세와는 다른 신들이 사는 장소인 불로촌에 살게 되면 인간도 불로장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상상하였다. 이러한 불로촌의 대명사는 에덴동산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은 아카드어 에디누에서 유래되어 들판이나 평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노화, 질병, 죽음이 없는 풍요와 기쁨의 낙원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파라다이스는 페르시아어로 정원을 의미하는 파이리-다에자로부터 유래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나왔다. 파라다이스는 초월적 의미의 낙원으로 통용되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에 건설되며 생명나무가 있는 낙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 다른 낙원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딜문으로 순수하고 깨끗하며 빛나는 땅으로 맹수나 혐오스러운 동물들이 설치지 않고 질병이나 노화, 죽음이 없는 기쁨의 땅이다. 페르시아인들은 북쪽 지하에 이마의 땅이 있으며, 게르만족들도 북쪽에 살아있는 자들의 땅이라는 불로장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믿었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엘리시온은 서방 대지의 끝 오케아노스강 근처에 있는 기후가 온난하고 향기가 충만하며, 헤시오도스가 언급한 지복자의 섬이며, 영웅들이 사는 곳이었다. 한편 헤스페리데스 정원은 헤라가 제우스와의 결혼선물로 가이아로부터 받은 황금 사과나무를 심어 라돈이라는 뱀과 세 명의 요정들이 지키는 아름답고 포근하며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 섬은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를 가르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 대서양에 위치한 풍요로운 이상향인데 지진으로 영원히 바다 속에 수장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중국에도 서왕모가 산다는 요지(瑤池)나 인도에서는 티베트의 수미산 정상에 있는 강린포체를 시바의 궁전으로 여겼고 극락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모독 족의 신 쿠무시가 딸들을 위해 지었다는 구름 위의 신전이나, 신들이 산 정상에 신전을 지어 놓고 모여 살았다는 올림포스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이런 곳들은 신을 위한 장소이며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하늘, 혹은 하늘과 가까운 곳인 높은 산꼭대기에 존재한다고 상상하였다.
불로촌의 존재는 종교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신들이 사는 곳으로 더 이상 삶의 고통, 아픔, 가난, 고독, 죽음이 없고 영원한 삶이 보장되는 곳이며 인간이 사후에 가야 할 곳으로 상정하였다. 그러나 살아서 찾아가야 할 불로촌을 찾는 노력도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기독교계 중심의 유럽사회가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추진하여 왔던 불로촌 개척을 위한 구체적 목표는 크게 두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는 성배를 찾는 작업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젊음의 샘을 찾는 탐험이었다. 성배에 관한 대표적 전설로는 아서왕 이야기가 있다.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위풍당당하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았던 왕은 성배를 찾으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다는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를 듣고 원탁의 기사들과 열심히 성배를 찾으려고 하였다는 전설이다. 성배를 소유하면 치료와 재생의 능력이 생기고, 신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영원한 젊음, 행복, 자신이 필요한 무엇이든지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기독교신앙과 맞물려 영생과 건강, 행복, 그리고 소원성취를 가능케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성배를 찾는다는 것은 중세 기독교계 유럽인들에게는 강렬한 열망이었다. 불로장생 추구를 위해 불로촌을 찾는 또다른 목표는 젊음의 샘에 대한 탐험이었다. 젊음의 샘은 그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면 젊음을 되찾는다는 샘으로 BC 5세기 헤로도토스의 저술에 등장한 이래 알렉산더 대왕의 정벌, 십자군전쟁 때까지 전설적으로 지속되다가 15세기 대양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그 실체에 대한 탐험이 시작되었다.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어식민(魚食民)이 장수나라의 왕에게 주민들의 수명과 식이습관을 묻자 그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120년을 살며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고, 고기는 삶아 먹으며 주로 우유를 마신다고 하였다. 주민의 장수에 대하여 의혹을 표시하자 왕은 그를 어느 샘으로 데려가서 세수를 시켰다. ----주민들이 장수를 한 요인은 바로 매일 이 물을 사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그가 장수촌의 주민들이 장수하는 요인이 바로 젊음의 샘 때문이라고 언급한 이래, 젊음의 샘에 관한 전설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퍼져나갔다. 예수께서 아픈 자를 낫게 해 준 요한 복음의 베테스다 우물과 연계되어 젊음의 샘은 분명한 실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베테스다 샘에서 나온 물로 씻거나 마시게 되면 모든 질병이 낫게 되고 젊음이 회복된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곳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세계 최대규모의 건강보건연구소인 미국국립보건원 (NIH)이 위치한 곳이 워싱턴 근교의 베테스다라는 사실도 이와 연관 있다. 스페인은 중남미 정복 후, 원주민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불로촌 비미니의 전설을 따라 본격적 탐험대를 조직하여 카리브해 연안의 중남미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젊음의 샘에 대한 유혹이 이들을 유카탄 반도의 마야 지역, 바하마 지역 등을 집중 조사하게 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초대 총독이었던 후안 퐁세 드 레온은 탐험대를 이끌고 전설 속의 비미니를 직접 찾아 나섰다. 국가 권력이 나서서 비미니를 찾아나선 것은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 탐구와 유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인간에게 불로촌은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염원이었으며 이천년이 지났어도 그 미련은 시들어질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성배와 젊음의 샘의 전설은 서양인들에게 대양시대를 여는 탐험과 개척의 큰 빌미를 주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으로 비록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과거와 전연 다른 새로운 세계가 개척되고 열리게 되었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시도하였던 불로촌 탐구는 결국 공간 개척과 확보의 명분이 되어 후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간의 지극한 욕망과 이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인류 발전의 동력을 이룬 전형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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