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선긋는 김정은 “금강산 남측시설 기분나빠 철거해”…남북관계 분수령

김정은, 금강산 관광지구 찾아 "남측과 협의해 남쪽시설 철거하라" 지시

"남북 관계의 근본적 전환 염두에 두고 금강산 관광지구 찾은 듯"

"평양공동선언의 남북협력사업 진행 속도에 불만, 행동으로 표출"

"선대 '대남의존정책' 공개 비난, 남한 배제 '자력갱생' '자력자강' 강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 싹 들어내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협력의 상징물인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는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고 고성항,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등 남측에서 건설한 시설들을 돌아봤다고 2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남측 시설을 둘러보며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된 시설”이라며 “자연경관에 손해되고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또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대남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거친 발언은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남북 협력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앞으로 남북관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이라는 선전포고로도 해석된다.

동시에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염두에 두고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했다는 분석도 나와 남북관계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나용우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대남의존정책’ 비판은 선대정책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의도보다는 남북 경제협력 등 그동안 의존했던 부분에 대한 불만을 남한에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에 대해 조건없이 교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돌연 금강산관광 철거 발언이 나왔다”며 “이는 결국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을 남측이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미국에도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봤다.

신 센터장은 “공개된 사진을 보니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대동했다. 이는 미국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제재 완화, 금강산 관광 같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아버지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시절의 대남의존정책을 공개적·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과거처럼 남측의 협력에만 기대는 국정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최근 백두산·삼지연군 등의 현지지도에서 ‘자력갱생’, ‘자력자강’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남측에 독점권을 부여해 진행하던 기존 사업 방식의 변화를 예고하면서 정부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압박했다”며 “자력자강의 맥락에서 선대의 정책이라도 시대흐름에 맞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남측과 합의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금강산 문제로 남북대화가 재개돼 관계 해빙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통일부는 “북측의 의도와 구체적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면서도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에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남북합의 정신, 금강산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선대의 금강산관광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에 금강산관광이 더는 ‘남북협력의 상징물’이 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북·미 대화 재개,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악재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나 연구위원은 “이번 발언은 남한에 초점을 둔 것으로 미국에 대한 메시지는 크지 않은 듯하다”며 “한·미군사훈련 비판 등 최근 나온 북한의 대남 발언을 보면 비핵화 협상에서 남한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금강산관광지구 사진.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