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미국을 달군 모디의 국가 세일즈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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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9-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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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닮은꼴 정치인 모디와 트럼프의 '브로맨스'

  • 국난 위기에 '조국 블랙홀' 빠져 민생 뒷전인 대한민국

 

[이수완 논설위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라는 다르지만 상당히 닮은꼴 정치인이다. 올해 초 재집권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강렬한 '힌두 민족주의' 색채를 숨기지 않고 13억 인구의 지구상 최대 민주주의 국가를 이끌고 있다.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웃 파키스탄과의 국경분쟁에서 단호하고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국내의 보수층 결집을 노린다. '모디노믹스'로 불리는 그의 경제정책은 기업 최우선이다. 과감한 세제개혁과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 등 미국 등 선진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대책은 수시로 발표된다. 중국처럼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다. 그가 부르짖는 '강한 인도'라는 표현은 트럼프의 시그니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와도 비교된다. 트럼프처럼 대규모 집회에 나서 군중들이 자신의 연설에 환호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트윗을 수시로 날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점도 트럼프와 닮았다. 한 미국의 정치평론가는 "트럼프와 모디는 다른 대륙에 떨어져 살고 있는 쌍둥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5만여명의 인도계 미국인들이 텍사스주 휴스턴 초대형 미식축구장에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연설을 함께 듣는 극히 이례적인 정치 집회이다. 두 사람은 각자 연설에서 상대방을 서로 잔뜩 치켜세웠다. 그리고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며 열렬한 환호에 답했다. 마치 록스타 공연을 연상시키는 현장의 열기처럼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지금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진한 '브로맨스'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번 "하우디 모디(안녕 모디)! 함께하는 꿈, 밝은 미래' 행사에 두 사람이 함께한 것은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 G7) 정상회담 때 모디 총리의 초청을 트럼프가 수락하면서였다. 세계 주요 언론은 이 행사를 교황을 제외하고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지도자가 주최한 미국내 최대 집회로 묘사했다. 또 트럼프가 모디를 위해 기꺼이 '조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음을 부각 시켰다.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이 '모디 모디'를 외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어색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외에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20여명의 의원들도 '게스트'로 행사에 참석했다. 모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나의 친구, 인도의 친구'로 호명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와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수억명의 인도인들은 TV를 통해 이날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정치가로서 모디 총리는 트럼프로부터 이날 큰 선물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자신이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 대통령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국제 지도자로 성장했음을 자국의 국민들에게 입증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인도는 ‘남아시아의 화약고’ 카슈미르 지역에서 파키스탄과 치열한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 8월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를 이유로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잠무카슈미르주)에 추가 병력을 투입하고 자치권을 박탈하며 언론 통제와 반정부 인사 구속에 나섰다. 그동안 인도령 카슈미르는 인구의 70%가량이 무슬림이어서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편입해 달라는 움직임이 꾸준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외교 관계를 격하하고 교역을 잠정 중단한다고 맞섰다.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인도 경찰관 40명이 테러 공격으로 숨지자, 모디는 파키스탄을 지목하고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3차례나 전쟁을 치렀고,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파키스탄에 대한 응징은 모디를 결단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그가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2일 행사에서 트럼프가 "인도는 접경지대에서 안전을 확보할 권리가 있다"며 모디를 두둔하자 현장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중국은 그간 카슈미르 분쟁에서 파키스탄을 지지해왔다. 인도와는 국경 분쟁 중이고 파키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주요 협력국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카슈미르 분쟁의 중재자로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인도가 반대하며 트럼프는 갈팡질팡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80% 정도의 인도계 유권자는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은 트럼프의 인종 차별주의와 반이민 정책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인도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 인구의 1% 정도인 320만명 정도이지만 각 분야에서 부와 명성을 쌓으며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에게 이번 집회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전역의 인도계 미국인에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호기였다. 특히 집회가 열린 텍사스는 2020년 트럼프의 재선에서 주요 경합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관세폭탄과 무역보복을 주고받으면서 세계 경제는 침체 속으로 빠지고 있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6년 만에 최저수준인 5.0%로 떨어지는 등 경제가 흔들리자 잇따라 경제 활성화 대책이 발표되고 있다. 모디 총리가 이번 미국 방문을 시작하기 직전, 인도 정부는 현재 30%인 국내 기업의 법인세를 22% 수준으로 낮추었다. 아울러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기업 활동 규제 완화 방안도 내놓았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완화하고 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기도 했다. 22일 휴스턴 집회가 열리고 이틀 후, 모디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정상회담에서 다시 만났다. 25일에는 유엔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카리브공동체(CARICOM) 회원국들과의 모임을 주재하며 지역 내 경제발전 지원책을 논의했다. 이어서 블룸버그가 주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IBM,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마스터카드, 록히드 마틴, 블랙스톤 등 무려 36명의 미국 유수기업 CEO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2시간 동안이나 인도 투자와 경제 발전을 위한 솔직한 의견과 제안의 목소리를 경청한 것으로 CNBC는 보도했다. 미국이 인도를 개발도상국 일반특혜관세제도(GSP)에서 제외시키면서 불거진 최근의 양국간 무역 갈등도 조만간 '제한적인 무역협정 협상(a limited trade deal)'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어릴 때 차(tea)를 팔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모디는 구자라트주(州)의 최장기 주총리(Chief Minister)로 재임하면서, 과감한 규제 철폐와 대규모 외자 유치,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강력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인도 역사상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화폐개혁과 세제개혁을 단행했다. 이번 미국 방문으로 인도의 부흥을 이끌기 위한 모디 총리의  강한 의지를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힘차게 외치며 국가 세일즈에 총력을 다하는 모디 총리의 열정적인 모습은 국난의 위기 앞에서 '조국 블랙홀'에 빠져 민생과 경제 문제가 뒷전에 몰린 대한민국의 답답한 현실과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우리의 위상을 실감한다”며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오직 우리 국민들이 이뤄낸 성취”라고 했지만, 우리 대통령의 주장이 쉽게 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모디 인도 총리와 손잡은 트럼프 (휴스턴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방미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미 텍사스 주 휴스턴 NRG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도계 이민자 집회인 '하우디, 모디' 행사장에 함께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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