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용의 CEO열전] ⑫ '아마존되다'의 대명사 토이저러스는 나사로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강일용 기자입력 : 2019-08-10 13:19
찰스 라자러스 토이저러스 창업자 겸 전 CEO 베이비붐에 올라탄 천재 사업가... 그의 은퇴 후 토이저러스 사업도 내리막길
과거 세계 최대의 장난감 매장이었지만,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거센 도전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토이저러스(Toy'R'us)'가 돌아온다.

지난 7월 토이저러스의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 트루키즈는 휴스턴 갤러리아, 뉴저지 웨스트필드가든스테이지 등에 하이테크 체험존을 갖춘 토이저러스 매장을 올해 하반기에 개점하겠다고 밝혔다.

트루키즈는 새 토이저러스는 과거와 달리 기술을 적용한 완구 소매유통점이 될 계획이라며,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1948년 찰스 라자러스(Charles P. Lazarus)가 설립한 토이저러스는 한때 전세계 20여개국 1800여개 매장에서 100억달러가 넘는 연매출을 올리며 세계 최대의 완구 유통업체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와 월마트 등 후발주자의 도전과 오프라인 상점의 영업 부진이 겹치면서 지난 2014년 이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끝에 2017년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토이저러스의 파산으로 미국 내 700여개의 토이저러스 매장은 모두 문을 닫았고, 약 3만여명의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찰스 라자러스 토이저러스 창업자.[사진=토이저러스 제공]


◆토이저러스의 몰락사

토이저러스는 흔히 '아마존되다(To be Amazoned)'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아마존되다란 미국의 대규모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이 진출한 사업 영역에 있던 기존 사업자들이 망하거나 사업 규모가 축소되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토이저러스는 아마존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다. 창업자였던 라자러스가 CEO에서 물러난 후 '월마트' 등 강력한 오프라인 경쟁자가 등장했고, 이 때부터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무너지던 회사에 쐐기를 박은 것 뿐이다.

1994년 라자러스가 토이저러스 CEO에서 물러난 후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오랜 친구였던 전문 경영인 마이클 골드스타인이었다.

토이저러스가 미국 전역에서 장난감 전문점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비결은 라자러스가 꾸준히 추구한 할인 전략이다. 라자러스는 토이저러스에선 장난감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때론 손해를 감수하고 제품을 판매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이먼(Simon)'이라는 게임이다. 1977년 사이먼은 토이저러스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사이먼은 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때문에 다른 양판점은 사이먼을 30달러의 가격에 판매했다. 반면 라자러스는 토이저러스에서 사이먼을 20달러에 판매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공급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밑지는 장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자러스는 토이저러스에선 장난감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토이저러스 CI.[사진=토이저러스 제공]


역설적으로, 토이저러스의 위기는 이렇게 토이저러스에서 장난감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붕괴되면서 찾아왔다. 1990년대 초 토이저러스보다 더 거대하고, 더 많은 자금을 갖춘 월마트가 매장 내에 장난감 전문 코너를 오픈했다. 토이저러스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월마트의 공세 앞에 토이저러스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8년 월마트는 마침내 장난감 매출면에서도 토이저러스를 앞서기 시작했. 결국 2000년에 들어 토이저러스는 1억3200만달러라는 막대한 적자를 내고만다. 라자러스가 CEO에서 물러날 당시 40달러에 달했던 주가도 20달러로 반토막났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골드스타인은 CEO에서 물러났다. 후임인 로버트 나가소네도 크리스마스 시즌 매출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18개월만에 CEO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매출이 급증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송 지연과 재고 부족이란 문제로 허비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토이저러스는 금융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존 에일러를 CEO로 영입했다.

에일러는 토이저러스가 월마트 같은 대형 창고형 슈퍼마켓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차별화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창고형 매장을 포기하고, 아이들이 놀러오고 싶은 테마파크 같은 체험형 매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여겼다. 전략을 수립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토이저러스 매장을 체험형 매장으로 바꿔나갔다. 장난감을 분야별로 나눠서 진열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다양한 대형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매장내에 설치하는 등 고객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장난감 체험 매장 토이저러스의 이미지는 이때 구축 완성됐다.

흥미롭게도 2000년 8월 토이저러스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장난감을 대규모로 유통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위해 아마존과 손 잡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아마존닷컴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된 토이저러스의 장난감은 아마존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토이저러스에겐 악재로 작용했다.

토이저러스가 추구한 체험형 매장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체험형 매장으로 전환한 후 고객인 아이들의 방문은 늘어났다. 하지만 장난감을 구매하는 비용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로부터 나왔다.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존재였다. 장난감 체험은 오프라인 토이저러스 매장에서 했지만, 정작 장난감 구매는 더 저렴하게 물건을 파는 아마존닷컴 내의 온라인 토이저러스 페이지나 월마트에서 했다.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판매해야 하는 특성상 토이저러스의 온라인 영업 이익은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다.

토이저러스는 입장료로 수익을 거두는 장난감 테마파크가 아니라 장난감 판매로 수익을 거두는 장난감 전문점이다. 아이들이 체험만하고 구매를 하지 않으니 적자가 지속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던 토이저러스는 2005년 사모펀드에게 매각되고 만다. 이후 토이저러스는 도미노피자를 살려낸 경험이 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등 재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룬 오프라인 경쟁자(월마트, 타깃)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대규모 온라인 쇼핑몰(아마존닷컴)과의 출혈 경쟁을 감당하지 못하고 막대한 적자를 낸 채 침몰하고 말았다. 5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채 파산을 선언했다.

토이저러스의 파산은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 한정된다. 합자회사나 라이선스 제공 등의 형태로 진출한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는 900여개의 매장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예를 들어 국내 토이저러스 매장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을 보유한 롯데쇼핑에서 운영 중이다. 소프트뱅크가 운영 중인 야후 재팬처럼 미국 본사가 사라진 것과 관계 없이 브랜드를 유지한채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운영 중인 국내 토이저러스 매장.[사진=롯데쇼핑 제공]


◆미국 베이비붐에 올라탄 천재 사업가... 장난감왕의 일대기

토이저러스는 장난감왕이라고 불리우는 라자러스가 1948년 창업한 회사다. 라자러스는 성경에 등장한 인물인 '나사로'를 뜻한다. 예수의 부름으로 다시 부활했다는 그 나사로가 맞다.

라자러스는 192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났다. 2차대전에 징집되어 통신병으로 근무한 후 고향에 돌아온 라자러스는 자신이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판단하고 장사에 뛰어들었다. 1948년 자본금 5000달러를 바탕으로 자전거 가게를 창업했다. 자신의 집 1층에 세운 이 자전거 가게가 바로 토이저러스의 시작이다.
 

1950년대 토이저러스 매장 모습.[사진=토이저러스 제공]


1950년대 초 전세계는 '베이비붐(baby boom, 전후 사람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출생률이 증가하는 현상. 미국, 일본 등은 1950년대 초에 베이비붐이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 6.25 전쟁 때문에 1950년대 말에 베이비붐이 일어났다)'에 휩싸여 있었다.

이러한 시장 흐름 속에서 라자러스는 한 가지 가능성을 읽어냈다. '아이들이 늘어나는만큼 유아용 침대, 유모차, 장난감 등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유아용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해야겠다.' 1952년 라자러스는 자전거 가게를 그만두고 자신의 점포를 '칠드런스 바겐 타운(Children 's Bargain Town)'이라는 이름의 유아용품 전문점으로 전환했다.

유아용품 전문점을 운영하면서 라자러스는 진정한 고객이 누군인지 파악하는게 장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반 유아용품의 고객은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의 부모님이었다. 그들은 유아용 침대나 유모차 등을 구매했지만, 한 번 물건을 구매하고 다시는 라자러스의 매장을 찾지 않았다. 반면 장난감의 고객인 아이들은 재방문율이 높았다. 부서지거나 싫증난 장난감을 대신할 새 장난감을 사기 위해 그들의 부모를 졸라 라자러스의 매장을 찾았다.

이를 통해 라자러스는 일반 유아용품과 장난감이 아이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전혀 다른 성질의 상품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늘어나는 장난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매장 옆에 비어있던 건물을 빌려 장난감 판매대를 신설했다. 장난감만 한 군데 모아놓고 이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장난감만 따로 진열해둔 곳에 아이와 부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는 곧 두 번째 매장을 낼 수 있을만큼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라자러스는 모든 유아용품을 판매하는 종합 가게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장난감만 판매하는 전문점의 길을 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는 장난감을 선택했다. 1957년 두 번째 매장을 내면서 가게의 이름을 토이저러스(Toys'R'Us)로 정했다. '장난감은 우리의 것(Toy's are us)'이라는 뜻과 '나사로의 장난감 가게(Laza'rus' Toystore)'라는 뜻을 담은 중의적 표현이다. 토이저러스 로고에서 'R'은 반대로 적혀 있다. 아이들이 단어를 나열하다가 실수한 것을 표현한 이미지로, 아이들만을 위한 매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장난감 할인판매 내용이 적혀있는 초기 토이저러스 전단지.[사진=토이저러스 제공]


토이저러스는 세계 최초의 장난감 전문점이었다. 사실 제아무리 장난감이 잘 팔린다고 해도 장난감만 다루는 전문점은 상당히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거의 대부분의 매출이 크리스마스 전후에 몰려 있다(당시 기준으로 약 70%). 매장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1년 내내 꾸준히 매출이 발생해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자러스는 당시 새로운 매체로 떠오르고 있던 텔레비전에 주목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장난감 광고를 내보내 이를 본 아이들이 언제나 새로운 장난감을 원하도록 유도했다.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장난감을 판매해 주요 고객인 아이뿐만 아니라 또다른 고객인 부모들까지 만족시켰다.

여기에 1959년 '바비인형'이라는 희대의 사업 아이템이 등장했다. 남자 아이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들까지 장난감의 세계로 끌어들인 이 아이템과 토이저러스는 찰떡궁합이었다. 토이저러스의 매출은 쭉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6년 당시 라자러스는 4개의 토이저러스 매장을 운영하며 약 1200만 달러 상당의 매출을 거두는 중견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그에겐 한 가지 꿈이 있었다. 토이저러스를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장난감 체인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이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설립한 토이저러스를 '인터스테이트 세일즈(Interstate Sales)'라는 양판점에 매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약 750만 달러에 토이저러스를 매각한 후 인터스테이트 세일즈의 장난감 판매 부분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쭉쭉 성장했던 토이저러스 사업과 달리 인터스테이트 세일즈 전체 사업은 부진의 늪에 빠져있었다. 결국 1974년 인터스테이트 세일즈는 파산을 신청하고 만다. 라자러스는 이렇게 파산한 인터스테이트 세일즈를 본인이 다시 인수한 후 수익성 없는 사업을 정리하고 장난감 판매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라자러스의 지휘 아래 불과 4년만에 인터스테이트 세일즈는 파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라자러스는 미국 전역의 인터스테이트 세일즈 매장을 토이저러스로 전환했다. 그의 꿈인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장난감 전문점이 탄생한 것이다.

1980년 토이저러스의 매출은 4억8000만 달러에 도달했다. 더욱 성장하기 위해 라자러스는 사업 다각화와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1983년 '키드저러스(Kids'R'Us)'라는 이름의 어린이용 옷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매장을 개시했다. 1984년에는 캐나다를 시작으로 영국, 독일, 호주 등에 해외 매장을 설립했다. 1991년에는 일본 맥도날드와 협력해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에는 지난 2006년 롯데쇼핑과 협력하는 형태로 들어왔다.

토이저러스는 라자러스의 지휘 아래 1990년대까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1990년 토이저러스의 매출은 48억 달러에 도달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토이저러스의 꾸준한 장난감 할인 판매 덕분에 이당시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라자러스의 이미지는 산타클로스에 버금갈 정도였다.

1994년 라자러스의 나이가 71세에 도달한 그해, 그는 고령을 이유로 토이저러스 CEO에서 물러났다. 그의 뒤는 전문경영인이 이었다. 하지만 라자러스의 은퇴 이후 급격한 시장변화 때문에 반 세기 넘게 이어진 장난감 제국은 결국 몰락하고 만다. 토이저러스가 파산해서 청산 절차를 밟은 2018년 3월 라자러스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 사업가와 그가 세운 기업이 운명을 같이한 셈이다.

토이저러스는 이제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창업가의 성인 '나사로'처럼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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