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150만원에 잘 곳을 다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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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07-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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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가 1200달러(약 150만원)이다. 방이 몇 개냐고? 어림없다. 벙커 침대 하나다. 보증금은 없다.

침대에는 선반 하나와 개인 TV가 설치돼 있다. 시리얼이나 라면을 받을 수 있는 식품 쿠폰, 치약이나 휴지가 제공된다. 사물함도 하나 있다.

막상 들어보니 나쁘지 않다고? 한 방에 이런 침대가 10개라면? 침대엔 커튼도 없다. 완전 개방형 공간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이곳에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거 공유업체 팟셰어(PodShare) 멤버십에 가입한 이른바 파데스트리언(Podestrian)들이다.

파데스트리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LA) 6곳의 팟셰어 있는 220개 침대 중 하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 방에서 여러 벙커 침대를 두고 같이 생활하는 모습은 언뜻 보기에 호스텔과 유사하다. 그러나 팟셰어는 '주거공유'로 불리길 바란다.

음악과 영화, 자동차까지 공유하지 못할 게 없는 세상에서 집을 왜 굳이 가져야 하냐고 팟셰어 설립자 엘비나 벡(45)은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팟셰어는 일종의 클라우드 서비스다. 구독료를 내고 필요할 때 잘 곳을 다운받는다는 것. 벡 자신 역시 팟셰어에서 잘 곳을 옮겨다니는 파데스트리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주민들이 노숙자 텐트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위한 마케팅 회사 플립매스(FlipMass)를 창업한 스티븐 존슨(27)도 기꺼이 사생활을 포기하고 팟셰어에 입주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지만 비좁고 값비싼 원룸에 갇혀 있기 싫다고 한다.

존슨은 "내 생각에 이곳 세입자들은 새로운 주거 형태를 일찍 받아들인 사람들이라고 본다"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미래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사항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샌프란시스코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파키스탄 출신 라이얀 자히드(23)도 팟셰어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팟셰어에서 살고 싶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집을 구했지만 그러려면 신용점수가 필요했고 납세 기록도 필요했다. 유학생은 그런 게 있을지 몰라도 이민자는 사정이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이 직장과 가까워서 좋다며, 만약 있는 돈으로 집을 구했다면 통근에만 하루 2시간을 쓸 뻔 했다고 했다.

팟셰어에는 엄격한 규칙이 몇 가지 있다. 밤 10시에 일괄 불은 끈다는 것과 친구나 손님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친구는 팟셰어 안에서 만들라는 게 벡의 주문이다. 

물론 어느 누구라도 교류를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긴 쉽지 않을 터다. 그만큼 실리콘밸리 주변의 주거비가 높다는 얘기일 수 있다.

팟셰어를 이용하는 연령층이 동전 24~30세에서 최근엔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수입보다 주거비가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나 LA 곳곳에서 노숙자 텐트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치솟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지난달에는 LA카운티에서 노숙자수가 전년비 12% 늘어 6만 명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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