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합의 美’ 보여주는 추상화 거장 하종현 “우연은 예술 속에서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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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전성민 기자
입력 2019-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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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갤러리 부산서 7월28일까지 개인전

  • 1974년부터 작업해온 자연 닮은 '접합' 연작 선보여

[ ‘Conjunction 18-12’ 앞에선 하종현 화백. 사진: 안천호.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우연은 예술 속에서도 존재해요. 우연이 너무 없으면 재미가 없어.”

거장은 우연도 작품에 녹여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의 거장 하종현 화백은 작품을 만들 때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때마다 만나는 우연은 작품과의 인연이 됐다. 1974년부터 그려온 하종현을 대표하는 ‘접합(Conjunction)’ 연작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하종현은 오는 7월 28일까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에 자리 잡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개인전 ‘Ha ChongHyun’을 갖는다. 최근 LA,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에서 전시를 열었던 하종현은 4년 만의 국내 개인전에서 대표 연작 ‘접합’의 근작 및 신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지난달 30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하종현은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하겠다. ‘제 작품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질문하는 84세 화백의 얼굴은 진지했다.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는 이어진 말에 질문이 더욱 와닿았다.

직접 본 하종현의 최근 작품들은 그야말로 강렬했다. 하종현은 최근 적색과 청색 그리고 2018년 말부터 다홍색을 ‘접합’에 도입했다. 대표적인 작품 ‘Conjunction 18-12’에서 보이는 선명한 다홍색은 단청과 한국전통악기의 화려한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종현이 ‘그을림(smoke)’ 기법으로 만든 색은 특별했다. 천을 두른 나무 막대기에 휘발유를 부은 뒤 불을 붙이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하종현은 마르지 않는 물감에 그 연기를 씌웠다. 연기를 품은 색은 그야말로 묘했다. 자연의 색을 얻기 위해 고민한 하종현은 자연이 주는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Conjunction 15-169’에서는 오일이 옆으로 번지는 것을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했다.

작품 속에 우연을 담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에 뿌리를 두고 있다. 6·25전쟁 때 피란민으로 부산에 왔던 하종현은 자갈치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림을 그리려고 무작정 서울로 온 하종현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다녔지만 캔버스와 물감을 살 돈이 부족했다. 하종현은 “주어진 상황에서 데생과 크로키가 아닌 ‘남들이 안 하는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기 시작한 때다.

하종현은 1962년부터 1968년까지 즉흥적인 추상 유화 작업에 몰두했다. 이후 전위적 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한 하종현은 196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물성 탐구의 기간’을 거쳤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군량미를 담아 보내던 마대자루를 비롯해 밀가루, 신문, 용수철, 철조망 등을 이용해 작업했다.

1974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접합’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이다. 하종현은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을 통해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구축했다. 앞면으로 배어 나온 걸쭉한 물감 알갱이들은 칼이나 붓, 나무 주걱과 같은 도구를 사용한 작가의 작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종현은 “마치 아기들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배압법을 이용하면 물감이 굵기도 하고 얇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다양한 형태가 나온다. 여기에 열을 가하면 나중에 색깔도 다양하게 변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접합’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색깔이다. 하종현은 불쑥 염라대왕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염라대왕이 ‘직업이 뭐냐?’고 질문하면 ‘색 안 쓰는 화가요’라고 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있는 색은 모두 다 쓰겠다’, ‘이 색들을 내 색깔로 승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오래 되지 않은 이야기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항상 작업실에 있는다.

나이를 잊은 거장은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는 7월에는 중국 베이징 소재의 송 현대미술관 그룹전 '추상'에 한국작가 김창열과 함께 참가해 적색과 청색, 흰색의 대형 접합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밀라노 카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2020년 2월에는 런던 알민레쉬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 계획돼 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하종현 선생님 작품에 대한 유럽 쪽 반응이 특히 뜨겁다”며 “1년에 100분 정도의 손님들이 하종현 선생님 작업실을 직접 찾는다”고 귀띔했다.

[ 전시 전경.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Conjunction 18-12’ 사진=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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