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쌀, 인도적 지원의 이면(裏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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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2019-05-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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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4월11일, 대북 비료지원문제를 놓고 베이징에서 남북 당국자회담이 열렸다. 남측 수석대표는 당시 정세현 통일부 차관, 북측 대표단장은 전금철 정무원 책임참사(2007년 사망)였다. 우리 측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요구했지만, 전금철은 “그 문제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라며 피해갔다. 회담은 일주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결렬됐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적 문제로 봤지만 북의 생각은 달랐다.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에 4자회담(남 북 미 중)을 공동 제의했다. 북의 반응이 주목됐다. 북은 한국이 정전협정(1953년)의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식적으론 한국과 정전협정 문제는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만약 4자회담을 받는다면 이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우리로선 6·25 전쟁 이후 목에 걸린 가시 같았던 이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북은 4자회담에 동의했다. 왜? 식량 때문이었다. 1995년, 96년의 대홍수로 식량난이 악화돼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김정일의 연설에서 드러난다.

“천리마제강 연합기업소 쪽으로 가보니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길가에 쭉 늘어섰고 다른 지방도 어디나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식량문제로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인민군대에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며…아마 우리에게 군량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 미 제국주의자들이 당장 쳐들어올 것이다.…”(로동신문 1996년 12월8일자)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김정일의 입에서 ‘무정부 상태’라는 말이 나왔을까. 4자회담 개최로 북은 상당량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미 양국도 나름대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할 새로운 포맷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4자회담 합의를 남북협상사(史)에서 식량이 거둔 흔치 않은 성공사례로 보는 시각도 있다.(남찬순 『북미 핵 협상과 동북아질서-1990년대의 교훈』 2007년) 4자회담은 6차례의 본회담 끝에 종료됐지만 여기서 조성된 다자(多者) 분위기가 2003년 8월 출범한 6자회담 체제의 발판이 됐다.

이때의 경험과 교훈은 대북 식량지원을 인도적 문제로만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어떤 지원이든, 그 선의와는 별개로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복잡한 계산을 할 거라고 믿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보나, 절대적 이익보다는 상대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관계로 보나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나라가 국민의 세금으로 상대를 지원하면서 그 행위의 도덕성 정도에 만족하고 말까. 순수 자선단체라면 또 몰라도.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대북 쌀 지원 방침에 대해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한 것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존과 연민의 취지는 공감하나, ‘지원’이라는 행위는 다르다. 시기나 방법 등에 따라, 그 의의와 효과까지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장 “북이 미사일을 쏘는데 꼭 지금 쌀을 줘야 하나?”라는 볼 맨 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인도적이니까 괜찮다고? 그러려면 그냥 쌀을 줘버리지, 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며 미적대는가. 머뭇거리며 이 계산 저 계산 하는 것 자체가 쌀 지원이 고도의 정치적 문제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정부도 그래서 북의 영유아와 임신부 등을 위한 800만 달러와 쌀 지원을 나눠서 추진하겠다는 것 아닌가.

북은 인도주의라는 말도 싫어한다. 인도주의라는 말에는 시혜자와 수혜자 간 힘의 우열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혜자 측의 불행, 고통, 무능, 수치심이 내재 돼 있다. 북이 “인도주의라는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그래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21일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적절한 언급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인도주의는 또한 인권이다. 인도적 지원이 되려면 수혜자 측의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어야 한다.(굶지 않을 권리도 그중 하나다.) 우리 정부가 북의 인권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자꾸 강조하는 것도 모순이다.

필자도 인도적 식량지원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다만, ‘인도적’ 이라는 수사(修辭) 뒤에 숨은 정치적 함의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인도적 취지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면 현실적으로 실익도 없을뿐더러, 예의 “평화에 반대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 같은 이분법적 논리가 쌀 지원에서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인데 토를 달아?, 당신, 보수야?”와 같은 윽박지르기 식 우문(愚問)이 또 나올까 봐 두렵다. 어떻게 보면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언어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자꾸 인도적이라고 하니까 북이 고마운 줄도 모른다. 일부의 관측대로 1억 달러 상당의 쌀(10만∼20만t)을 주면 북은 최소한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라도 취해야 형평에 맞다. 이산가족 상봉부터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북은 쌀을 주겠다는데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귀중한 쌀을 퍼주면서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까. ‘인도적 지원’이란 게 원래 그런 수모까지도 다 감내하는 거라고? 글쎄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필자의 이런 지적들은 모두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북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이 정권이 허투루 쌀 지원 방침을 결정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쌀 지원이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북중, 북일 관계, 그리고 북핵협상에 미칠 영향까지도 심층적으로 분석했을 것이다. 관계 부처 간 시뮬레이션은 말할 것도 없고.

4자회담 성사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00만 대군을 유지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구호(식량)를 바라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죄악”이라고 몰아붙였다.(1996년 새해 국정연설) 그러다가도 북이 회담에 나올 듯싶으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서곤 했다. 이로 인해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퍼주고 욕먹지는 안했다. 북과 상대하려면 언제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기꺼이 욕먹을 용기 있는 지도자가 때론 필요하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을 제 돈처럼 아끼는 건 기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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