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불통의 이유, 요구하는 '언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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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19-05-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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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재우의 프리즘]미국은 합의사항 실천의 '제도'를 요구하고, 북한은 구속력 약한 '메커니즘' 정도를 요구

 

[주재우 교수 ]

지난 5월 4일 워싱턴포스트는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미 국무성의 기조실팀장 키론 스키너가 중국과의 ‘문명 충돌론’에 대비하는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중국 봉쇄(contain)전략의 필요성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중국과의 대국 경쟁을 문명과 이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전쟁으로 비유했다. 이는 미국 외교에 전례에 없는 사례로 소련은 서구사회의 일원이었기에 중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은 태생 자체가 서구의 역사와 이념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에 문명충돌의 대비를 강력히 주장했다.

무역협상. 비핵화 협상 난항 ..커지는 상호 불신 

이도 그럴 것이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협상이 ‘양보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면서 타결에 대한 낙관론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북·미회담도 ‘결렬’이라는 난국에 빠지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의 실패 원인에는 공통적으로 이념과 문명의 차이로 빚어진 ‘불신’이라는 그림자가 깊게 드려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아니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그러나 신뢰 문제가 외교에서 사후 문제라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믿고 가는 일은 없다. 중재자가 있기 때문에 믿고 가려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제도가 존재한다면 제도를 담보로 협상을 진행한다. 이는 외교에서 매우 빈번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념과 문명이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협상 성공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상호불신이 강해 신뢰가 없다고 해서 협상을 못한 적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한 사례의 공통분모에는 공동의 전략 이익이 있었다. 1970년 미국과 중국이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공동 대응하는 전략적 이익에서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두 나라가 용단을 내리기 전에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중 수교를 위해 두 나라는 갈등 현안을 협상하면서 믿어줄 것을 호소했다. 미국은 중국에게 대만과의 단교, 대만 주재 미군철수와 대만과의 동맹 포기 의지를 믿어줄 것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중국은 미국의 베트남전쟁의 종결을 위한 영향력 발휘 요구에 ‘최선을 다 하겠으나’ 보장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노력의 용의와 의사만큼은 믿어줄 것을 암묵적으로 시사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북한 비핵화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북 간에 많은 중재자들이 오가며 두 나라의 협상을 위해 노력했다. 이들 중재자의 존재로 두 나라는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믿으려 했다. 그러면서 미·중관계와 마찬가지로 미·북 간에도 신뢰가 쌓여지길 우리는 모두 바랐다. 그러나 결실이 없자 우리는 그 원인으로 ‘불신’을 쉽게 탓했다. 원래 적대적 관계였고 애당초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협상의 동기 중 하나는 서로를 한번 믿어보고 가자는 식의 의식이 크게 작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상 자체가 시작될 수 없다. 미·중 무역협상도 마찬가지다. 미·중 양국은 수많은 무역협상을 개최한 전력이 있다. 모든 협상이 실패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쉽게 원만하게 단숨에 타결된 적도 있었고 때로는 예상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타결을 본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사례는 믿고 출발한 결과였다.


북.미 수많은 합의..하나도 제대로 이행안돼 

미·중 무역협상의 반복적인 개최 이유는 양국 무역관계 개선의 필요적 요구도 있지만 예전의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시시비비를 따지기 위함이다. 현재 미·중 무역협상의 동기는 후자에 속한다. 북·미회담 결렬 후 현재 답보 상태로 남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북한은 과거 수많은 합의를 일궈냈다. 문제는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서로 이행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중도 포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두 나라 사이의 불신의 벽은 점점 높아졌다. 이제 북·미 양국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제공되지 않으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불신의 벽을 허물기 어렵다.

현재 미·북·중 세 나라가 겪고 있는 공통된 고초는 한 가지다. 상호불신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대가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주장처럼 인식의 문제다. 그의 인식론에 따르면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기반으로 하는 인식의 차이가 외교에서 큰 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는 정보처리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차이의 효과 때문이다. 인식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취득한 정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식은 국가와 사회의 고유한 이념, 사상과 가치관의 지배를 받는다.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 사상, 이념과 가치관이 정보 수집 경로와 범주를 제약한다. 이렇게 제약된 정보 여과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식은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식의 것으로 형성된다. 이런 정제과정을 거친 정보로 형성된 인식은 단편적이며 일방적으로 편향되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달리 북한과 중국은 제도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다.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 가치관과 통념에서 제도는 주권과 자주권을 구속하는 원흉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제도로 합의사항의 실천 의무와 책임 보장을 요구하는 자체가 이들에게는 주권침해와 내정간섭의 말로 들린다. 그래서 이들은 ‘기제(mechanism)’로 제도를 대체하길 원한다. ‘기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즉, 위반에 아무런 징벌(페널티)이 없다. 무책임하게 약속을 임의적으로 깨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막연하게 믿고 가달라는 것이다.


서로 이익 보장할 실질적 제도 마련을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공정한 무역과 북한 핵과 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수용과 이의 준수(compliance)를 요구한다. 만약 지난 30여년간 세 나라가 합의한 사항의 실천을 위해 마련한 제도를 제대로 준수했으면 신뢰는 자연스럽게 싹트고 자라났을 것이다.

미·북·중 세 나라 간의 신뢰도는 최저점을 찍었다. 이를 극복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안은 공통된 이념, 사상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는 인식의 공유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불성설이다. 대신 이익 창출이 가능한 제도 마련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이익 앞에서는 모두 설득되었다. 서로의 이익을 서로가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구축이 현재 미국이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신뢰가 재구축될 수 있는 토대 마련이 모두에게 시급하다.

 

트럼프 "G20서 시진핑 만날 것…3000억불 관세 결정안돼" (워싱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에서 기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그동안 예고한 3000억 달러 규모 이상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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