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레이와'로 두 마리 토끼 잡은 일본

한준호 IT과학부 부장 겸 아주닷컴 편집장 입력 : 2019-04-30 00:00
내달 1일이면 일본의 연호(年號)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뀐다. 연호가 바뀌면 일왕의 왕위도 계승된다. 일본은 30년 만의 왕위 계승으로 10일간의 ‘골든위크(연휴)’에 돌입했다. 사상 첫 10일 연휴에 들뜬 사람들로 전국 관광지는 인산인해라고 한다. 새 시대의 도래를 앞둔 일본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30년 만에 찾아온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활용해 경제와 외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기업들에게 레이와 특수로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장기간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레이와시대 첫 국빈으로 초청하려던 계획도 성공시켰다.

이번 연호 변경이 축제 분위기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일왕의 서거 없이 맞게 된 연호 변경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일왕이 서거해야 연호를 바꾸고 왕위를 계승시켜 왔는데, 일왕의 서거가 사회 전반에 자숙 분위기를 만들었다. 1989년 일왕의 서거로 쇼와(昭和)에서 헤이세이(平成)로 연호가 변경됐을 때는 모든 방송사가 1주일 동안 일왕 서거 특집으로 프로그램을 도배했다. 국내 축제와 이벤트도 줄줄이 취소됐다.

그러나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넘어오면서 왕위에 즉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3년 전에 돌연 고령에 따른 공무수행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생전퇴위를 희망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817년 이후 200년 만에 생전퇴위를 위한 논의에 착수했는데, 2019년 4월 30일에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하는 방안이 담긴 특별법이 제정됐다.

30년 전 연호 변경의 엄숙함과는 완전히 다른 축제 분위기 속에서 레이와시대를 맞게 된 일본기업들은 레이와 특수를 놓칠세라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숙박업체들은 4월 30일에서 5월 1일로 연호가 변경되는 시점에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준비해 숙박상품과 연계시켰다. 백화점은 세일에 돌입하고, 귀금속업체는 반지와 시계에 ‘레이와’라는 문자를 새겨 한정품 판매에 나섰다. 식품업체는 제품 포장에 레이와를 기념하는 문구를 새긴 특별포장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 업체는 레이와 특수로 매출이 20% 이상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온라인에선 도메인(인터넷상의 주소)에 ‘레이와(reiwa)’를 넣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메인 등록서비스 업체에 따르면, 레이와에 관한 도메인 신청이 2752건에 달했다. 5월 1일 연호 변경일에 맞춰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정부는 지난 4월 1일 연호를 새롭게 제정하기 위한 정령을 각의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제정한 새 연호는 '레이와'로 1200년 전에 집필된 일본 최고(最古)의 가요집 '만요슈(萬葉集)'에서 한자를 따왔다. [사진= 일본 총리관저 제공]

아베 총리는 연호 변경과 왕위 계승 후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국빈으로 일찍이 트럼프 대통령을 낙점해 외교전을 펼쳤다. 6월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일본을 찾는 트럼프 대통령을 5월에도 초청한다는 것은 외교 관례상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방일을 흔쾌히 수용했다. 레이와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일본의 왕위계승이 미식축구(NFL) 결승전인 슈퍼볼보다 100배 중요한 행사라고 말했기 때문에 승낙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국빈 방문을 요청해 온 아베 총리에게 "일본 사람들에게 왕위 계승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슈퍼볼과 비교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는데, 아베 총리는 "100배 중요하다"고 대답한 일화를 공개했다. 

연휴 돌입 직전인 지난 26일, 헤이세이시대 마지막 증시도 마감됐다. 이날 닛케이지수는 2만2258엔을 기록했는데 1989년 1월 6일 쇼와시대 마지막 주가지수 3만209엔보다 7951엔(26%) 하락한 수치였다.

헤이세이시대는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개막했고 디플레이션, 미국 금융위기 리먼 사태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30년을 보냈다. 비록 주가지수는 30년 전에 비해 하락했지만, 시가총액은 606조엔에서 617조엔으로 늘었다.

헤이세이시대 30년 동안 가장 약진한 기업은 도요타 자동차로 기록됐다. 도요타는 이 기간 동안 시가총액 증가액이 15조엔, 순익 증가액은 2조엔에 달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도 알리바바, 우버 등 유력사업에 대한 투자확대로 시가총액을 12조엔까지 늘렸다. 일본 증권가에선 레이와시대를 이끌어갈 기업이 도요타와 소프트뱅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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