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1930년대 일본과 닮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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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아주닷컴 편집장
입력 2019-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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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도 '투키디데스 함정' 빠질 가능성

 

고대 그리스시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30년에 걸쳐 싸웠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 전쟁을 기록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요인을 신흥국 아테네가 패권국 스파르타의 지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패권국에 대한 신흥국의 도전이 전쟁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상을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s trap)'이라 불렀다. 패권국 영국에 신흥국 독일이 도전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패권국 미국을 신흥국 독일과 일본이 위협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도 모두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지난달 19일 FT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의 긴장이 고조된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30년대에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던 일본

1900년대 초반에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을 방파제로 삼았다. 영국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미국은 러일전쟁 전후처리를 위해 열린 포츠머스 평화회의에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 사할린 양도 등을 인정했다. 당시 일본이 발행한 전시 국채도 런던과 뉴욕시장에서 대량으로 매입됐다.
 

러일전쟁 당시 국제관계를 그린 풍자화.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러시아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조르주 비고)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승국이 된 일본은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에서 상임이사국이 됐다. 신흥국 일본이 동아시아지역의 패권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부여된 패권은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됐다. 1922년에 미국‧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 5개국의 주력함(전함)의 총 톤수를 5:5:3:1.67:1.67로 제한하는 워싱턴 해군군축조약이 체결됐다. 미국과 영국의 비율 5에 대해 일본은 3이다. 이 조약은 일본이 아무리 잘나가도 미국과 영국에 도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패권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국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요자원과 군수물자의 공급처가 필요했다. 그곳이 바로 만주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만주사변에 대해 국제연맹은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했지만, 이를 거부한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이 시기 일본 국내에선 2·26 사건이라 불리는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때 실권을 장악한 육군 출신 정치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일본을 본격적인 파시즘 체제로 전환시키며 전선을 중국까지 확대했다. 1941년에는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미·일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시키며 4년 만에 일본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일본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것이다.
 

러일전쟁 승리 후 파시즘의 길로 돌진하는 일본 (조르주 비고) 


◆해양패권 노리는 중국, 태평양 지배하는 미국에 도전 

지난해 10월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서 연설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9세기 미·중 우호관계의 역사를 돌이키며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개혁·개방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된 중국의 시장개방이 정치적 자유와 개인에 대한 인권 존중, 종교의 자유로 이어질 것이라는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했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처럼 19세기 말 청나라가 서양 열강에 의해 분할됐을 때 미국은 중국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식민지화에 반대했다. 일본이 중국을 위협할 때도 중국 편에 서서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과 손을 잡았다.
 

미국은 청일전쟁 이후 서양열강에 의해 분할된 중국을 두고 영토보전과 문호개방을 주장했다.  


중국은 2020년까지 괌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시켜 중국 해군이 태평양 안마당을 차지하겠다는 태평양 진출계획을 1970년대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야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연출하는 도광양회(韬光养晦) 전술을 구사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방파제로서의 중국의 역할은 끝이 났지만, 투자처로는 여전히 미국의 금융자본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막대한 대중투자는 군비 확산에 유용돼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핵미사일을 중국군이 보유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정권 시절인 2007년 방중한 키팅 미 태평양사령관은 "중국 인민해방군 간부로부터 태평양을 중국과 미국이 반으로 나누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의회에서 증언한 바 있다. 세계 경제대국 2위 자리에 오른 중국이 이제는 미국과 해볼 만하다며 도광양회 전술을 바꿔 공공연히 발톱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이젠 노골적으로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보내 미국을 위협하고 무역전쟁도 치르고 있다. 일본이 1930년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들어간 상황과 흡사하다.

신흥국 일본이 패권국 미국에 도전해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미국과 중국이 전쟁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은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전면전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사이버 전쟁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본다.

중국군과 관련이 깊은 통신업체 화웨이가 만든 통신기기에 원격조작이 가능한 마이크로 칩이 내장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트럼프 정권은 이를 구실 삼아 화웨이 제품을 배제시키고 있다. 영국과 호주, 프랑스도 이에 동조하고 일본도 사실상 정부조달에서 화웨이를 배제했다. 미국이 사이버 전쟁을 경계하고 있다는 관측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고, 패권국과 신흥국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전쟁을 회피한 사례도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교대는 평화롭게 이뤄졌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영국이 워싱턴회의에서 군축에 응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유럽으로 영향력을 확장시킨 소련을 압도적 핵전력으로 견제해 전쟁 없이 붕괴시키기도 했다.

패권국 미국과 신흥국 중국이 7~8일 베이징에서 무역협상을 벌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1일 정상회담에서 90일간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차관급 실무협상에서 대타협을 향한 첫 단추가 채워지고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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