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이란?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독재 무너뜨린 초유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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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입력 2019-04-1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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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시민이 중심세력으로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오늘(19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제59주년 4·19 혁명기념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에는 여야 5당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4·19 혁명이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反)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러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시행했다. 그런데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의 부정선거(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들은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었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다. 당국의 강제 진압으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60년 4월 11일 1차 마산시위(3월 15일)에 실종됐던 당시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2차 시위를 벌였다. 같은 해 4월 18일 고려대의 4000여명의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크게 다쳤다.

전국 시민과 학생들은 더욱 크게 분노했고, 1960년 4월 19일 총궐기해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이런 시민과 학생들을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시민들을 탄압하고,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 시내 각 대학교수단 300여명은 4월 25일 선언문을 채택하고 시민·학생들과 시위에 동참했다. 다음날인 4월 26일에는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 군중이 정권의 무력에 더욱 완강하게 투쟁했다.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 직에서 하야했다.
 

의문을 낭독하는 시위대 대표.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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