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불신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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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3-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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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쟁을 거듭하던 3월 26일. 그날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였다.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숨졌다. 이토 히로부미 심장에 총탄을 박은 지 5개월 만이다. 안 의사 가묘(假墓)가 있는 효창공원엘 다녀왔다. 옆으론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가 잠들어 있다. 김구 주석 묘역도 가깝다. 치열했던 생전을 위무하듯 봄볕은 포근했다. 김구는 광복되자 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유해 발굴을 지시했다. 다행히 3의사 유해는 찾았다. 하지만 안 의사 유해는 아직까지 행방불명이다. 가묘를 쓴 이유다.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삶은 온전히 그분들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고 모진 고문을 감내했다. 때로는 목숨과 맞바꿨다.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서다. 그런 희생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지난 100년 동안 빛나는 성장을 이뤘다. 인구 5000만명, 1인당 GNP 3만 달러 국가만 가입하는 ‘50-30클럽’에 일곱 번째로 들어섰다. 지나온 100년은 선조들이 피 흘려 놓은 디딤돌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 전반에는 지독한 불신이 깔려 있다. 탐욕과 불신이 맞물려 암담한 상황이다.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10년 전 개봉한 영화 ‘마더’ 카피다. 영화 속에서 김혜자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씌운 살인혐의를 벗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자기 아들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맹목적인 애착에 근거한다. 지금 우리사회도 그렇다. 자기만 옳다는 확증편향에 갇혀 누구도,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원, 언론, 정부, 정치, 기업인까지 모두 불신 받고 있다. 스스로에게 근본 원인이 있지만 지지층을 불쏘시개 삼아 불신을 조장한 정치권 책임이 더 크다. 상대에 대해 독설과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누적된 불신은 부메랑이 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 조정을 놓고 맞붙었다. 검찰은 버닝썬 사건으로, 경찰은 김학의 카드로 상대를 겨누고 있다. 조직 이기주의를 담보로 한 싸움이기에 국민들은 둘 다 믿기 어렵다. 또 검찰과 법원은 사법개혁을 둘러싸고 맞서고 있다. 사법부 수사는 재판 결과마저 믿기 어려운 불신으로 이어졌다. 언론 또한 ‘기레기(기자 쓰레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행정부 관료도 마찬가지다.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도덕성은 부끄러운 한계다. 결국 조동호(과기부)는 지명철회, 최정호(국토해양부)는 자진 사퇴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퇴진은 기업인에 대한 불신을 거듭 확인시켰다. 무엇보다 불신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믿지 못하겠거든 지금이라도 기피 신청을 하라.” 차문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공판에 앞서 이례적인 입장을 밝혔다. 1심 판결 이후 재판부에 쏟아진 원색적인 비난과 불신을 의식해서다. 차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전속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김경수 경남지사 측 지지자들로부터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다. 어떤 판결을 하든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면키 어려운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재판 결과를 믿지 못하는 풍조는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정치권에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김 지사 1심 판결 이후 재판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사려 깊지 못한 대응이라는 게 국민들 시각이다. 한국당도 다르지 않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놓고 비난했다. 법원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는 것이다. 자신들 입맛에 맞으면 내 편, 다르면 네 편으로 가르는 정치풍토에서 불신은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국민들은 어디에서 믿음을 찾아야 할지 답답하다.

김구 주석과 윤봉길 의사는 거사 직전에 시계를 바꿔 찼다. 윤 의사는 자신에게는 “이제 1시간밖에 소용이 없다”며 김구가 찬 낡은 시계와 바꿨다. 김구는 윤 의사를 배웅하며 “후일 지하에서 만나자”며 속울음을 울었다. 백범일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감옥에 있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도 어느 때에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로 하여금 그 집 뜰도 쓸고 창도 닦는 일을 해 보고 죽게 해달라고.” 오늘 대한민국은 이렇게 지켜온 나라다. 알량한 정치 셈법으로 대한민국을 분열과 불신으로 몰고 가기엔 선조들이 흘린 피가 고귀하다.

영정 앞에 섰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생을 문지기로 자처한 김구, 스물셋에 처자식을 두고 망명길에 올랐던 청년 윤봉길,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당당했던 이봉창, 차가운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백정기. 그리고 순국 109년이 지나도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그분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독립된 조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부끄러운 3월 국회도 끝났다. 여야를 떠나 효창공원에 다녀오시길 권한다. 김구 선생 말처럼 뜰도 쓸고 창도 닦는 일이라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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