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10년, 20년 후 대학의 미래…예산 확보ㆍ구조조정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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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3-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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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제24대 회장 내달 취임

  • 정부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시급한 건 예산

  • 안정적 재정 확보ㆍ대학평가방식 단일화로 부담 경감

  • AI 등 신진학문 연구 위해 경직된 교육정책도 풀어야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임회장[사진=강원대 제공]

“국립대 육성 예산이 작년 800억원에서 올해 1504억원으로 증액되면서 국립대가 소재한 각 지역은 국가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역 강소대학들도 자신 있는 분야를 육성하고 취약한 분야를 정리해야 할 겁니다.”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신임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정책에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국립대 육성 예산 확보에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대학들이 향후 10년을 버티면서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라며 정부의 안정적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는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다. △거점 국립대 육성 △지역 강소대학 지원 △공영형 사립대 도입 등을 세부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립대 중심의 한국 대학 편제를 공영성이 강화된 형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대학 서열구조를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다.

김 신임회장은 당초 812억원을 투입해 국공립과 사립대 비율을 50대50으로 하겠다던 정부 ‘공영형 사립대’정책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공영형 사립대 사업이 첫 계획과는 다르게 전국 3~4개 대학 92억원 규모 시범사업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보다 시급한 건 예산이다. 10년 넘게 동결된 등록금이 대학의 다급한 발길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대학들이 직면한 재정위기의 가장 큰 이유는 10년 넘게 계속된 반값 등록금 정책”이라며 “올해부터는 입학금이 폐지되고 입학전형료가 인하되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올해 국내 고등교육 예산은 10조806억원이다. 전체 고등교육예산 대비 국립대 운영 지원비 비중은 최근 5년간 42%에서 24.5%까지 추락했다. 사립대 국고보조금 비중은 교비회계 총액의 4.1%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운영의 필수 경상비인 강사료, 공공요금, 시설용역비 등의 평균 35~40%를 등록금에서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는 “초중등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에 의해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데 대학은 그런 제도가 없어 예산이 그때그때 늘었다 줄었다 하는 구조”라며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대학에도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김 신임회장은 오로지 ‘고등교육’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고등교육 수월성 확보를 위해 첫째로는 고등교육예산 확보로 대학 운영에 안정성을 주고, 둘째로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평가’ 방식으로 대학을 옥죄어온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신임회장은 “대교협 기관평가 인증과 교육부 평가를 단일화하기만 해도 대학들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지난달 출범한 교육부-대교협 제2차 고등교육 정책 공동TF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임회장[사진=강원대 제공]

◆사업제안서 쓰던 총장에서 근본적 교육정책 바꿀 대교협 회장으로

대교협은 지난 1982년 설립된 대학협의체 기구다. 200개가 넘는 국내 4년제 대학들이 회원이다. 학사, 재정, 시설 등 대학 운영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에 필요한 사항을 정부에 건의해 정책에 반영해왔다.

대교협은 대학 평가, 학생선발제도 연구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산하에 고등교육연수원, 한국교양기초교육원 등을 두고 있다. 회장은 사립대 총장이 1년, 국립대 총장이 2년씩 번갈아가며 한다. 김 신임회장은 다음달 3일 제24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강원대 총장직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던 그가 대교협 회장에 출사표를 던진 계기는 아이러니하다. 강원대 총장 경험 때문이다. 그는 교수 시절 1년에 국제 과학 논문 색인(SCI)급 논문을 10여 편씩 쓰며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러다 문득 “학교는 기울어 가는데 본인만 만족스럽게 연구하다가 정년퇴임하고 쏙 여기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자신이 아닌 대학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총장이 됐다. 대교협 회장에 나설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대학을 운영해보니 교수와 직원을 쥐어짜지 않고는 혁신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김 신임회장은 “모든 대학 총장들이 재정지원 사업제안서 쓰고 교육부 평가받는 일에만 내몰렸죠”라며 “근본적인 규제 문제를 풀어야 미래사회 대학 모습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교협 회장에 출마했다”고 말했다.

대교협 회장은 연내 출범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의 위원을 추천할 권한도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직무 독립성을 갖는다. 10년 단위 국가교육 기본계획과 교육정책 장기 방향을 수립한다. 문 정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인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에 대학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임회장[강원대 제공]

◆‘포지티브’ 교육정책·동결된 등록금으로 대학 경쟁력 떨어져

“대학은 우리 사회의 10년, 20년 후를 보여주는 미래입니다. 글로벌 대학들은 기업가적 혁신을 하는데 우리 교육정책은 ‘포지티브’ 방식이라 법령 근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구조예요.”

김 신임회장은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로 경직된 고등교육정책을 꼽았다. 포지티브 고등교육정책은 법령에 허용한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모두 금지하는 방식이다.

즉, 대학이 수익사업으로 할 수 있는 항목은 A, B, C라는 법령이 있으면 대학은 그 항목에만 국한시켜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사회 변화에 따라 대학이 새롭게 추진하려는 D, E, F 항목이 있다 해도 이를 지지하는 법령 근거가 없을 경우, 교육정책에 새 항목을 ‘포지티브’하게 추가할 수 없다.

김 신임회장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분야를 예로 언급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80개 학위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MIT는 10억 달러를 들여 AI단과대학을 만들어요. 우리나라는 새로운 단과대를 개설하려면 부지 요건, 학생 수 등을 충족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이버대와의 갈등 문제는 별개로 해도 말이죠. 대학들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길을 열어보려 해도 교육정책이 옛 잣대로 규제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는 “보편적인 법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쪽으로 교육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교육정책으로 대학이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받게 되면, 새로운 지식 분야로의 진출도 영향을 받는다. 10년, 20년 후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진 연구의 진출도 지체되기 때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1인당 대학진학률이 70%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대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퍼져 있는 ‘대학무용론’은 대학졸업장이 미래 사회에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방증한다.

대학 구성원에 대한 안전망에 대해서도 김 신임회장의 고민은 깊었다. 2011년 제정 후 4차례나 유예된 강사법이 올해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규모 실직사태와 편법 채용사태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관건은 예산이다. 그는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비용은 3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며 “시간강사들이 연구와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대학 모두가 고민하고 행동할 때”라고 답했다. 현재 교육부가 확보한 시간강사 인건비 지원 예산은 577억원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대학들의 위기를 보며 김 신임회장은 대학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국립대, 사립대, 교원양성대, 특수목적대 등 설립목적과 유형이 다른 200여개 대학들의 이해가 걸린 의제들을 원만하게 풀어간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거점대학인 강원대를 이끌어봤던 그의 경험이 대교협 운영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공립대학은 공공성을 강화하고 기초학문을 보호·육성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하고, 사립대학은 자율성 보장과 특성화 교육으로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서울·수도권은 교육연구중심대학으로, 지역대학은 특성화를 기반으로 해 지역사회와 연계협력하는 대학으로 성장시키자는 구상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신임회장은 “대학 정책도 국가균형발전 전략에 입각해 바라봐야 한다”며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지자체와 협력하도록 국가와 지역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과거 교육·연구기능에 국한됐던 역할을 넘어 혁신적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헌영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임회장은
△1962년 △경북 영주 △안동고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동 대학원 기계설계학과 △강원대 기계융합공합부 교수 △강원의료융합인재양성센터 센터장 △강원대 기획처장 △강원대 아이디어팩토리 사업단장 △통일교육위원강원협의회 회장 △교육부 국립대학 육성방안 TF 위원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제24대 회장(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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