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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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9-02-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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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진 정치사회부장]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내 아이들이 핵을 지닌 채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방북했던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 일행에게 비핵화 의지를 피력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김정은 위원장. 그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이다. 내 나라, 내 아이들이 세상 걱정 없이 등 따숩고 배 부르게 잘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 이후 핵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남북 정상회담만 세 차례가 열렸고, 70년 만에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대좌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정착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 번영을 약속했다.

얼마 전 노동신문 논평에서는 김 위원장의 결단을 알렉산더 대왕이 전차를 묶은 매듭을 칼로 내리쳐 끊었다는 '고르디우스 매듭 일화'에 비유, '상상을 초월하는 중대 결단'이라고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핵 담판’에서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체제 보장과 더불어 핵을 버렸을 때 취할 수 있는 최대의 경제적 실익이다.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로 60시간이 넘는 하노이행을 선택한 것은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수행원들에게도 경제 건설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더 크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동참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며, 북한의 개혁·개방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 도착 이후 하노이로 이동하면서 박닌성 등을 들러 인근 지역 산업시찰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산케이신문은 김 위원장이 박닌성의 삼성 휴대폰 공장을 시찰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해 주목된다. 남측의 최대 기업이자 첨단산업 현장 방문은 향후 남북경협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은 8개월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다시 갖는다. 김 위원장은 이번 핵 담판이 트럼프·문재인 정권에서 꼭 이뤄져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가 미국의 대선 시간표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는 진단도 내놨다.

실제 김 위원장은 트럼프·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대담하고도 바쁘게 움직였다. 수차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해상으로 쏘아 올리며 핵 보유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을 핵 담판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앞으로 트럼프·문재인 정권의 임기는 대략 2~3년이 남았다. 1993년 3월 '1차 북핵 위기'로 시작된 북한 핵협상은 북·미 양자회담에서 6자회담으로 형식을 바꾸며 20년 동안 계속됐지만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정상이 먼저 큰 틀에서 비핵화를 합의, 결단한 후 구체적 실행방안을 합의해 나가는 ‘톱 다운’ 방식이다. 정상 간 신뢰와 약속이 담보된다는 점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판이 열린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의 입구로 북한에 핵·미사일 시설 동결 및 폐기, 더 나아가 대량살상무기 동결 등을 단계적 목표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부분적 제재 완화 등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샷' 방식의 협상 국면에서 '단계적 동시 행동'의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 해법을 두고 협상이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만, 이번 하노이 담판에서 '핵개발의 심장'인 영변 핵시설 동결 및 폐기만 약속되어도 아주 큰 진전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로써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쪼록 두 정상이 70년 적대 관계를 청산해 핵과 전쟁의 공포를 없애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담대한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마주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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