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AI가 부활시킨 마르크스

김창익 IT과학부 부장입력 : 2019-02-12 15:41
- 실리콘밸리에 사회주의 유령이 떠돈다


사회주의 유령이 떠돈다. 자본주의 중심 미국에서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잇따라 사회주의 공약을 내건다. 실리콘밸리와 뉴욕 월가 등 부자 동네가 주요 출몰지역이다. 칼 마르크스가 1840년대 유럽 전역에서 보았다던 그 유령이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척 슈머 상원의원(뉴욕), 코리 부커 상원의원(뉴저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메사추세츠) 등이 주인공이다. 2~3%대의 부유세에서부터 신생아에게 1000달러씩 지급하는 현금성 복지 등 공약도 다양하다.

이들 지역구는 상대적으로 부자 동네다. 실리콘밸리 노동자 평균 임금은 연 8만달러 수준이다. 미국 평균 노동자 그 것의 두 배 수준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하면 오산이다. 혁명의 횟불은 항상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곳에서 타올랐다.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한 곳도 영국 런던이었다. 자본주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나라다.

불만의 목소리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아파서 나온다. 파리 시민이 노란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온 건 이들이 부탄이나 네팔 국민에 비해 헐벗어서가 아니다. 연봉 8만달러를 받는 실리콘밸리 프로그래머가 사회주의 유령을 재소환한 건 그들이 텍사스 유전에서 삽질을 하는 노동자들보다 빌 게이츠와 제프 베이조스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스스로 붕괴하는 구조라고 했다. 이윤추구는 기업가 본성이고 그 열망은 폭주 기관차와 같다. 질주하면 막을 수 없다. 기업가의 이윤을 늘리려면 근로자를 더 착취할 수 밖에 없다.

구 소련과 베를린 장벽 붕괴로 사회주의는 KO패를 당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래의 역사에서 본다면 자본주의는 조금 늦게 붕괴한 체제일 수도 있다.

AI의 도시에서 사회주의 유령이 출몰하는 건 이윤추구 열망과 첨단기술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착취를 극대화하는 건, 바꿔말해 기업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건 근로자를 내보내고 AI로 대체하는 것이다. AI는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파업을 하지도 않는다.

먼지 쌓인 자본론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이다. 생산성은 극대화 돼 창고에 빵은 산처럼 쌓이는 데 정작 근로자는 빵 살 돈이 없다. 팔리지 않는 빵은 곰팡이가 피고 내다버리기도 힘든 밀가루 덩어리일 뿐이다. 빵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처음엔 근로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지만 결국 공장 사장도 파산하게 된다. 지금 경로대로면 종착지는 대공황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붕괴된다고 했던 그 지점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아이러니하게 사회주의 때문에 가능했다. 산업이 고도화 하면서 미국 남부 방직공장들이 문을 닫고 북부 자동차 공장들의 활황였다. 대형 마켓 타깃에 가면 메이드인차이나, 메이드인베트남 티셔츠와 청바지를 쌓아놓고 팔았다. 여행자들은 팬티를 빨지 않고 버리고 또 사입어도 될 정도였다. 마르크스 시각에서 보면 미국 소비자들의 풍요는 중국과 베트남 근로자에 대한 착취로 가능했다.

시행착오는 대안을 만든다. 폭력으로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자던 마르크스의 생각은 틀렸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란 그의 생각은 아직 틀린 게 아니다.

유럽 복지국가는 기업가의 이윤추구 열망은 보장하면서도 대공황을 향해 폭주 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 “보편적 복지국가가 해법”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근로자가 실직하면 기존임금의 60~70%를 2년간 주고 재교육을 지원한다. 자동차의 발달로 일자리를 잃은 마부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카풀 서비스가 생계를 위협한다고 택시기사가 분신을 하는 불행한 모습도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다. 기업가는 GDP(국내총생산)를 늘리는 대신 높은 세금을 낸다. 국가가 이를 마부와 택시기사에게 재배분해 빵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유럽식 복지국가 시스템이다.

실리콘밸리에 사회주의 유령이 출몰하면서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쉽게 말해 복지 예산을 현금으로 나누어주자는 것이다. 건강보험이나 육아수당이 아니라 예컨대 월 100만원씩을 무조건 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하지만 빵공장 기계화로 내몰린 근로자가 계속 빵을 살 수 있게 하자는 복지의 근본 취지엔 가장 잘 부합한다. 서상목 전 복지부 장관은 이와 관련 “현실적으로 요원하지만 매력적인 제도”라고 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기업가의 의욕을 꺾으면 안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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