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의 한숨, 인구절벽과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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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1-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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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률 최저치, '인구 보너스' 종료 임박

  • 노동력 총량 감소, 경제 활력 저하 우려

  • 경제구조 전환 시급한데 무역戰에 발목

[그래픽=이재호 기자]


"중국이 연간 1600만명 안팎의 출생아 수를 유지하려면 매년 5조 위안(약 828조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출생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량젠장(梁建章)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 23일 개최된 '중국 인구 통계 및 정책 건의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지난해 중국의 출생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중화권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携程)의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인 량 교수는 중국 내 대표적인 인구학자이기도 하다.

1999년 씨트립을 창업한 뒤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경영에 몰두하던 그는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나 201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경제와 인구 구조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량 교수는 2012년 저서 '중국인이 너무 많다고?(中國人太多了嗎?)'를 통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15년 '한 자녀 정책'을 공식 폐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끈 책이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량 교수는 "둘째 아이를 낳은 가정에 매월 1000위안(약 16만6000원)의 보조금과 10만 위안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를 출생률을 높이는 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저출산 문제를 방치할 경우 중국 사회의 혁신성이 저하될 것"이라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나 량 교수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의 대부분은 바이두 등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삭제됐다. 아직 삭제되지 않은 기사도 재정 투입과 관련한 급진적인 주장은 수정되거나 누락됐다.

중국 당국이 신속하게 검열 조치에 나선 것은 스스로도 출생률 저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출생률 역대 최저치 찍은 중국

지난 21일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1523만명으로 전년 대비 200만명 감소했다. 출생률은 10.94%(인구 1000명 당 10.94명 출생)로 1.49%포인트 하락했다. 역대 최저치다.

개혁·개방 첫해인 1978년 18.25% 수준이던 출생률은 1987년 23.33%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중이다.

2015년 12.07%였던 출생률이 한 자녀 정책 폐기 효과로 이듬해인 2016년(12.95%) 반짝 반등했다가 2017년 12.43%로 떨어진 뒤 2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기준 13억9538만명으로 세계 인구 1위인 중국이 오는 2024년에는 인도에 그 지위를 물려줄 것이라는 유엔 발표도 나온 바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 인구정책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던 자이전우(翟振武) 인민대 교수는 "신중국 성립 이후 한 해 출생아 수가 1600만명 이하였던 적이 6번 있었다"며 "가임 연령대 여성이 줄고 있어 출생률 저하는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이 교수는 출생아 수가 한 해 1300만명 안팎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15~49세의 가임 연령 여성은 전년 대비 700만명 감소했다. 특히 20~29세 구간에서 500만명이나 급감했다.

리시루(李希如) 국가통계국 인구사(司) 사장은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한 효과가 2016~2017년 이어지다가 지난해 약화됐다"며 "둘째 아이 출생률이 떨어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량 교수는 "출생률 저하는 취업 여성이 많아진 데 따른 기회비용이며 엄청난 교육비 부담과 부동산 가격 상승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이 가운데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매우 중요한 피임약이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량젠장(梁建章)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 [사진=환구시보 ]


◆사라지는 '인구 보너스', 혁신성 저하 우려

이 같은 인구 변화는 중국 경제에도 커다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 비결로 꼽히는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 개념이 있다. 경제활동인구(만 15세 이상) 비율이 높고 고령 인구 비율이 낮은 구조로 인해 노동력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저축률이 상승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식을 중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해 16~59세 인구는 8억9729만명으로 전년보다 470만명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 인구는 859만명 증가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827만명이었다.

젊은 노동력 유입이 줄고 고령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혁신 역량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젊은층 인구의 감소는 고급 인재 배출과 창업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량 교수는 "미국은 이민 정책으로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영어를 사용한다는 이점 때문에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교류할 수 있다"며 "절대 인구 수가 장점인 중국에서 젊은 세대가 줄어든다는 것은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1인당 평균 GDP가 1990년대 미국을 추월했다가 최근 미국의 70% 수준으로 하락한 이유는 인구 문제 때문"이라며 "중국의 미래는 일본이 맞닥뜨린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역전쟁 발발로 경제구조 전환 타격

중국에서는 '한 가정 두 자녀'에서 더 나아가 세 자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 노동시장에 편입되기까지 20년 가까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제 구조 전환을 추진키로 한 것도 단기간 내에 현재 인구 구조를 뒤바꿀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경제 발전이 어렵다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키워 공백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공의 감소도 현재 중국 경제구조를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이 노동집약적 산업 구조로 고도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떠난 농민공(農民工)들이 있다. 이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생산비용을 절감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구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달 발표된 중국 국가통계국의 자료를 살펴보자.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농민공 2억8836만명 중 산업단지와 공장이 밀집한 동부 지역의 농민공 수가 185만명 감소했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한 농민공은 전년 대비 0.9% 증가한 데 반해 외지로 나간 농민공은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도시로 이주해 공장 등에 취직하는 대신 고향에서 식당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농민공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저임금 노동자를 화수분처럼 공급해 온 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최근 창업을 위해 귀향한 농민공이 520만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창업'을 강조하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단순 노동자의 실직 규모가 확대된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게다가 경제 성장률 목표를 10%대에서 6~7%로 낮춰 잡고, '중국제조 2025' 등 산업 고도화 전략을 수립하면서 경제 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 터진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이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6.6%로 1990년 이후 28년 만에 가장 낮았다. 올해는 6%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지난달 49.4, 이달 49.5로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50선을 2개월 연속 밑도는 등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안전판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인구 절벽에 도달하는 최악의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때문에 오는 3월 초를 시한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 협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국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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