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상징’ 김복동 할머니 별세…마지막 말은 “일본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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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기자
입력 2019-01-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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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위안부 피해 공개하며 인권운동 전개

  •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23명으로 줄어

위안부 피해자 상징인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촉구하며 빗속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 상징인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29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따르면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오후 10시 41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돼 중국·홍콩·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며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데 나섰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으며,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영국·독일·노르웨이·일본 등을 수차례 방문하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한 활동’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인권 운동과 함께 기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 할머니는 2015년 6월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하고, 2017년 7월에는 재일 조선 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장학금’을 전달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사후 남은 모든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약정도 맺었다.

국내에선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늘 모습을 드러내며 위안부 피해자 투쟁에 앞장섰다.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에는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1인 시위를 했다.

김 할머니는 임종 전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임종을 지킨 윤미향 정의연 대표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말을 했다.

김 할머니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조문은 1월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2월 1일이다.

김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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