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진보 ‘10년 집권’ 하려면 경제 실용주의로 가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입력 2019-01-08 07:1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했다. 경제계와 정·관계의 저항을 무릅쓰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해 지하에 숨어 있던 돈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를 실시하면서 축재 과정이 불투명한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사법처리됐다. 1979년 12·12 이후 군의 요직을 장악한 전두환의 하나회를 군사작전하듯 해체시켰다.

YS 정부는 장기 독재 치하에서 누적된 적폐를 시원시원하게 청산하면서 취임 1년 차 1분기(1993년 3월) 지지율 71%를 시작으로 2분기(6월)와 3분기(9월)에는 83%의 고공행진을 했다. 그러나 한보철강 부도, 차남 김현철씨 구속 등을 겪고 나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임기 막판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국가부도’를 맞고 지지율(6%)이 바닥에 떨어졌다. ‘역대 대통령 호감도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YS는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도 낮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꼴찌를 다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론조사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그것만으로 대통령의 치적을 평가할 수는 없다. YS 집권 초기의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하나회 척결 등은 공무원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군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면서 그 정신이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 속에 스며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그 규모와 충격에서 YS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비롯한 불법 비리에 대해서는 엄정한 사법적 처단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2년 가까이 그 기조가 이어지면서 박수 소리는 잦아들고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촛불시위의 후광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보수 10년 동안 긴장 경색으로 흘렀던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민생이 어려워지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 보도가 많은 방송매체의 뉴스 시청률까지 떨어지는 판이다. 신문과 방송도 민심을 먹고산다. 아마 올해는 언론의 비판이 더 거세질 것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청년 실업난과 자영업자의 줄도산이다. 그 핵심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있음에도 대통령 말 다르고 고용노동부장관 말 다르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월급을 올려주자는 선의(善意)를 누가 부정하겠는가. 문제는 속도다. 일본은 3년 연속 시간당 평균 최저임금을 3%(약 20엔, 200원가량) 정도 인상했다. 한국은 2년 동안 29.1% 올렸고,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실질 최저임금은 1만20원으로 일본보다 1500원 이상 높다. 일본은 지역별로 차등을 두어 물가가 비싼 도쿄가 가장 높다. 짜장면 값이 강남 호텔과 읍내의 중국집이 같을 수 없는데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전국이 똑같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차등 적용했더라도 최저임금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진보세력 20년 집권론’을 꺼내지만 경제가 망가지면 10년은커녕 5년 집권으로 끝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지역적으로 소수인 호남에, 이념적으로 소수인 진보라는 이중 핸디캡을 안고서도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데는 외환위기가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치러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표 이상으로 패배했다. 박근혜 탄핵 후 대선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557만표 이상 밀렸다. 민심은 조석변(朝夕變)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죽을 쑤는 바람에 진보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경제가 고꾸라지면 1년 4개월 뒤 총선, 3년 3개월 뒤 대선에서 국민은 대안세력을 찾게 될 것이다.

DJ는 집권 후 보수적인 정치인과 관료들을 등용하고,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국정수행의 금과옥조(金科玉條)를 남겼다. 문 정부는 청와대에 586 운동권들이 많아서인지 문제의식은 넘치지만 현실감각이 부족해 보인다.

탈(脫)원전도 급격하게 갈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해 블로그에 “원전은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고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최적의 기후변화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전의 안전 문제는 혁신을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이 정부의 임기 말에는 전기요금이 두 배로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탈원전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산을 깎아 풍력발전기를 세우고, 호수를 태양광으로 덮는 것이 친(親)환경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신년 인사회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경제를 25차례나 언급했지만 솔직히 미덥지가 않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경제를 강조해도 청와대의 수석과 경제부처 장관들의 머릿속에 실용주의가 들어가지 않는 한 경제에서는 실패한 정부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