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안되면 (기준을 바꿔서라도) 되게 하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임재천 금융부 부장
입력 2018-12-26 17: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얼마 전 통계청장이 교체됐다.

청장의 경질을 주장하는 이들은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발표에서 정부와 반대되는 통계를 내놓은 것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논란을 키웠다. 

발단은 '표본'이었다. 통계청은 올해 소득조사 표본을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확대했다. 현실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표본을 확대한 이후 소득분배 지표가 급격히 나빠졌고, 표본 설계의 적절성에 관한 논란이 커졌다.

표본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소득주도성장 부작용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통계청장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호되게 질책 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 야당 의원이 "지난해 통계청장을 임명할 때 소득주도성장을 지원할 적임자라고 청와대가 밝혔는데 13개월 만에 경질한 이유를 국민은 다 안다"며 "국가통계는 신뢰와 정직이 생명이다. 통계를 소위 마사지하기 시작하면 국가 경제는 망하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통계청장의 발언은 문제를 재점화시키고 말았다.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부 정책에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듣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부 정책에 맞춘 통계를 내놓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 만한 수준의 발언이다. '기준'을 바꿔서라도 정부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해도 무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준과 원칙을 바꿔 착시효과를 노리는 사례가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 최고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최고금리를 24%로 내린 후 중금리 대출자들이 증가해 한계차주가 줄었다고 밝혔다. 내년에 최고금리를 20%로 추가 인하하면 가계 건전성이 더 좋아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과거에도 최고금리를 낮출 때마다 저신용자들의 신규 대출이 줄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통계 오류다.

최고금리를 낮추면 2금융권을 비롯한 대부업체들은 이자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익을 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외형 확대보다는 연체·부실률을 관리하는 등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영업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신용자들의 대출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빚을 갚지 못하면 곧바로 부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은 2금융권에서조차도 돈을 빌리지 못해 결국 불법 사채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통계 밖으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불법 사채시장은 통계에 잡히지 않으니 금융당국이 발표하는 수치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통계에서 밀려난 저신용자들의 얘기는 빼고, 수치가 좋아진 게 마치 자신들의 치적인 양 자랑한다.

물론 통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외면한 것 또한 사실이다. 

금융당국이 지난주 중소기업 기준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기존 중소기업의 기준은 연매출 600억원 이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700억원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로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범위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중소기업 대출은 위험가중치를 낮게 반영하기 때문에 일반기업보다 대출을 많이 해줘도 은행들의 BIS(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선으로 약 9000개 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추가 분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해당 여신을 취급한 은행들의 자본부담이 경감돼 중소기업 대출 여력이 개선되고 중소기업들은 금리부담이 일부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기준 변경 역시 중소기업에 자금을 많이 지원했다는 칭송을 들으려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내년 초에 중소기업 지원액이 급증했고, 포용금융 정책에 크게 기여했다는 발표가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관료들의 행정처리는 일관되고 예측 가능성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적용기준을 바꾼다면 어느 기업이나 조직도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다면 스스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