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갈등, 그 두 글자의 인문학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8-12-17 18:16
[빈섬 이상국의 '뜻밖의사전']칡덩굴과 등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 왼새끼를 꼬는 까닭

왼새끼 꼰다는 말이 있다. 북한에서는 아직 일상용어로 남아있는 이 말은, 다른 마음을 먹고 다른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짚으로 새끼를 꼴 때 대개는 오른쪽으로 꼰다. 왼새끼는 특별한 경우에만 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붉은 고추를 끼워 매다는 금줄을 만들 땐 왼새끼를 꼰다.

왼새끼 또한 인간사에 필요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른새끼를 꼴 때 용도도 없이 홀로 왼새끼를 꼬는 것은 집단 작업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새끼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새끼를 꼬는 사람의 마음이 이미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적 행동이 된다. 왼새끼와 오른새끼의 갈등은 어떻게 보면 마이너리티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비슷한 두 개의 식물이 생래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새끼'를 꼴 때 일어나는 상황은 전쟁을 방불한다. 칡나무와 등나무가 그렇다.



# 좌갈우등

칡은 갈(葛)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등나무는 등(藤)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 이걸 좌갈우등(左葛右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전이나 인용을 보면, 이것이 서로 헷갈리는 듯 하다. 칡이 오른쪽으로 감고 등나무가 왼쪽으로 감는다는 주장도 많다. 어찌된 일일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이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른쪽인 경우가 아닐까. 나무의 입장으로 보면 좌갈우등이라 할 수 있으니, 그걸 채택하기로 하자.



# 끝까지 갈등으로 치밀어오르다 공멸하는 풍경

대개 등나무는 인간 주변에 내려와 살고, 칡덩굴은 산속에서 산다. 그래서 자주 만날 일은 없어 보이는데, 어쩌다 한 나무 아래서 만나면 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칡나무가 왼쪽으로 감아올라갈 때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올라간다. 둘은 서로 얽히면서도 제 방향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밀고 올라간다.

이 덩굴식물들은 저마다 생기가 넘치는지라, 왠만한 환경에도 죽지 않는다. 우선 뿌리를 땅밑 깊숙이 박아 아래서 수분을 섭취하는지라 줄기에서 생겨나는 곤경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줄기 또한 감아올라간 나무가 죽을 때까지 옥죄어야 하기에 단단하기 그지없다. 나무가 수분을 공급하기 어려울 만큼 헤드록을 한다.

이런 두 덩굴이 다른 방향으로 꼬여 올라가면서 서로를 감았으니 그 굳세고 억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엔 경쟁적으로 감았다가 나중엔 스스로도 꼼짝을 못해 그냥 둘다 상부에서 널부러진다.

# 뿌리깊은 갈등이란, 생물학적인 표현

칡과 등나무의 이 놀라운 싸움을 빗대, 우린 두 나무의 이름만으로 추상명사를 만들었다. 그게 갈등(葛藤)이다.

뿌리깊은 갈등은, 두 나무의 뿌리가 땅밑으로 깊이 박혀있음을 의미한다. 뿌리가 깊을수록 양쪽의 생존력이 강할 수 밖에 없어서 서로 물러서지도 않고 전투도 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치열한 갈등이란 말은 서로 몸이 얽혀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양쪽의 줄기가 서로 기선을 제압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치 양보없이 벌이는 게임을 의미한다.

치명적인 갈등이란 말은, 이 칡과 등나무가 마침내 서로의 전신을 최악으로 꼬이고 조여 더 이상 생존을 할 수 없어서 양쪽 다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말한다.

# 인간 갈등이 칡-등나무 갈등과 다른 점

갈등이 인간사의 문제로 비유되면서, 인간은 갈등을 칡과 등나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칡과 등나무는 그것밖에 자신의 생리를 갖고 있지 않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칡이 될 건지 등나무가 될 건지 마음을 다시 먹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중대한 차이다.

갈등은 터무니 없는 세력불균형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비슷하고 경쟁적일 때 생겨난다. 또 서로의 이익이 첨예하게 갈릴 때 커진다. 요컨대 갈등은, 상대를 오직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마음이 빚어내는 것이다.
 
 


# 갈등이란 말이 일본식 한자어인 '생태학적인 이유'

사실 칡과 등나무가 늘 갈등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그렇게 두 나무를 앙숙으로 만들 이유도 없지 않은가. 등나무는 난온대 지역에서 자라는 덩굴성 목본식물이며, 칡은 냉온대지역에서 자라는 덩굴성 목본식물이다. 등나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기에 두 종을 함께 볼 수 있는 지역은 냉온대와 난온대가 겹치는 지역 뿐이다. 한국 남부, 일본 혼슈 이남, 중국 동남부가 그곳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4개 종류의 등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보라색꽃을 피우는 자등(紫藤)이다. 이 자등나무는 칡과 같은 방향인 왼쪽으로 감는다. 칡과 자등나무는 서로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셈이다. 어떤 학자는 이 점에 착안해, 갈등이라는 말은 중국 한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중국에선 갈등의 갈등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갈등이 갈등의 뜻으로 쓰인 시작은 일본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그래서 등장한다. 일본식 한자어를 한국이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 왜 노사나 계층이나 빈부는 '갈등'할까

여기까지가 대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살벌’한 갈등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식물학자에게서 이것과는 다른, 흥미로운 ‘갈등’이야기를 들었다. 권위주의나 전체주의 사회에서, 시위를 벌이고 투쟁을 하는 것을 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갈등’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노사갈등, 계층갈등, 빈부갈등 등등이 그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왼새끼 오른새끼를 꼬아서 갈등이 생긴 것일까.

숲이나 산에서 나무들이 벌이는 전투의 승자는 대개 소나무다. 소나무보다 더 센 슈퍼파이터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삼림전투에서 볼 수 있는 최종승자는 대개 이 나무이므로 이것으로 한정하자. 어린 소나무는 금세 줄기가 굵어지고 빠른 속도로 치솟아 올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장악한다. 이 나무는 제공권을 활용해 나무 아래로 빛이 내려오는 것을 촘촘히 차단한다. 거기에, 초강력 제초제라 할 수 있는 끈끈한 송진을 뿌려 키작은 식물들을 화학적으로 사망시킨다. 거기에 마른 솔잎을 아주 두텁게 깔아 다른 생물들이 땅밑에서 튀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숲 생태계의 진화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언제나 다른 잡목들은 실종되고 소나무숲만 남는다.

# 소나무 독재숲에 '갈등'이 생겨나는 비밀

이런 유일 히틀러 혈통같은 소나무만 득세하는 시절에, 칡덩굴과 등나무는 소나무숲 수십m 바깥에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덩굴을 이용해 소나무숲을 향해 낮은 포복으로 그 수십m를 기어간다. 적의 침입을 알게된 소나무 장군들은 제초제를 살포해 이들을 죽인다. 송진을 맞은 등나무와 칡나무는 일시 기절을 하거나 그 부위가 말라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 뒤에 살아있는 줄기가 다시 행진을 시작해 마침내 소나무 줄기를 감기 시작한다. 왼새끼를 감는 칡덩굴을 잡으려 그쪽으로 송진 최루탄을 쏴대면, 이번엔 오른새끼를 감는 등나무가 기어올라와 반대편으로 감아올라간다. 송진 맞고 죽으면 고개 푹 꺾었다가 잠시 뒤에 다시 깨어나 올라오니, 이 불굴의 행군에 소나무도 환장할 노릇이다.

마침내 소나무 하나를 정복해서 하늘까지 뚫었다. 감아올린 칡과 등은 협업 중에 서로를 감아버렸는지라 그것을 풀 새도 없이 말라죽은 소나무와 함께 죽어 쓰러져내린다. 하나의 소나무가 무너지면 거기에 햇살이 들어오고 송진 제초제도 사라져 키작은 덤불이 순식간에 쏟아오른다. 하나의 소나무가 죽은 곳에는 다시 칡과 등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옆에 살아있는 키다리 소나무들을 감아올라가기 시작한다.

# 갈등은 민주화에 대한 기득권의 시각?

이런 방식으로 소나무 독재시대를 마감하고 수많은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살아나면서 숲은 신생의 시대를 맞게 된다. 갈등은 민주화 투사였으며 그들이 얻어낸 것이 숲 전체의 민주주의와 평화였다. 부정적으로 보는 갈등은, 탐욕과 경쟁심이 빚은 ‘마음의 병’이었지만, 더 넓고 긴 시각에서 본 갈등은,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치열한 의지가 빚어낸 ‘위대한 투쟁’일 수 있다는 것.

갈등이 사회의 해악일 뿐이라는 시각은 어쩌면, 스스로의 지위나 권력을 놓기 싫어하는 기득권들의 마음이 자아낸 시각인지 모른다. 우린 갈등이란 두 글자만으로서 사회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의 진수를 읽어낼 수도 있으리라.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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