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국 경제 국가 비상사태… 심각성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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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진 기자
입력 2018-12-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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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사진=연합뉴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라고 해야 한다"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받아들이는 게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9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장하준 교수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케임브리지대에서 한 인터뷰에서 "현 경제 상황은 분배가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생긴 것도 아니고, 정부 규제가 많아 생긴 것도 아니다"며 "그동안 투자와 신산업 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력 산업들이 붕괴하면서 어려워진 것이다"고 한국 경제 상황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해야 해결책이 찾아진다. 중국이 빨리 따라오니 기업이 신기술 개발하고 투자해야 하는데, 왜 안 되는가를 분석하다 보면 기업 정책 얘기가 나올 것이다"며 "또 이를 위해선 유능한 젊은이들이 일자리 불안 때문에 의대나 법대, 공무원 시험으로만 몰리지 않고 공대로 가게 하려면 복지국가를 건설해 사회안전망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경제위기가 단기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했다. 장 교수는 "(경제 위기)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최저임금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다. 20년간 투자 안 하고 중국에 다 먹혀서다"며 "외환 위기 이후 투자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설비투자가 반 토막 났다. 70~80년대 자동차, 조선, 반도체 그리고 90년대 휴대전화 이후 한국이 새로 만든 게 없다. 중국에 확실히 앞선 것은 반도체뿐인데 중국 정부의 집중 정책으로 그것도 얼마 안 남았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부 발표를 보면 10여 개 신산업을 하겠다는데,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짜 할 생각이면 과거 중화학공업 대여섯 개를 하듯 집중해야 한다"며 "한국은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세계 1, 2위를 다투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니 재검토해야 한다. 돈은 많이 쓰는 데 나오는 게 없다. 전체 연구개발 투자 중 정부 비중이 4분의 1인데, 정부와 기업이 대화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이젠 노동자도 고도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혁신은 온 국민이 같이하는 것"이라며 "삼성 갤럭시폰이 5파운드 싸다고 팔리는 게 아니니 기업도 임금 1000원 줄 것을 980원 주며 쥐어짠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며 경제 체질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그는 방법론으로 "정부가 초기에 대폭 투자하고 기업이 상용화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이 혁신을 잘하는 게 천재 몇 명이 있어서가 아니다. 미국처럼 조직화가 잘 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영앙제 주사 하나 놔준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분배를 평등하게 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 이들도 소비하게 되니 단기적으로 생산에 도움이 돼 나쁜 건 아니지만 영양제 주사 하나 놔준 것"이라며 "그런데 체질 개선 얘기는 없다. 기업도 규제 완화만 말하는데,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중국에 따라잡히는 게 규제 때문이 아니다. 좌파는 최저임금에 집착하고 우파는 규제 완화에 집착하는데 모두 변죽 울리는 소리"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스웨덴 모델과 복지국가도 거론했다.

그는 "스웨덴은 소득 분배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지만, 기업 집중도도 최고 수준"이라며 "발렌베리 그룹은 한 가문이 6대째 하고 있고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삼성과 현대차는 그에 비할 수도 없다. 스웨덴 정치권에선 기업이 투자 많이 하고 일자리 많이 늘리고 세금 많이 내면 되지 많이 가진 건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좌우 진영 논리부터 깨야 한다. 산업 정책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선 과거 군부 정부가 해서 우파 정책이라고 보지만 영국에선 노동당 정부가 해서 좌파 정책이다. 복지국가를 만든 이도 보수정치의 대가인 독일의 비스마르크였다. 복지를 말하면 유럽에선 보수 정치로 보지만, 한국에선 빨갱이라고 여긴다"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복지국가에 대해 "한국은 복지지출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2위다. 21.5%가 평균인데 한국은 10% 겨우 넘는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노동자가 구조조정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는다"라면서 "실업 시 이전 월급의 65~75%를 받고 2년 교육을 거쳐 정부가 새 직장을 알선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없어 직장에서 잘리면 100에서 10으로 떨어지니 저항하는 거다. 스웨덴도 1920년대 파업률이 세계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1932년 사회당 집권 후 기업은 복지국가 조성을 받아들이고 노동자는 파업을 자제하는 타협을 한 뒤 20년 이상 걸려 완성했다"며 "30년을 내다보고 과거 경제개발을 했듯 한국도 30년 후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면 못할 게 없다"고 조언했다.

한편 장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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