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보헤미안 랩소디와 프레디 머큐리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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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정치사회부 부국장
입력 2018-12-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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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 소식을 들은 지난여름 이후 개봉일(10월 31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대망의 첫날, 보는 내내 가슴은 뜨거웠고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중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 장면에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리고 젊었던 시절을 함께해준 퀸의 음악을 다시 꺼내준 영화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두 번째 봤을 때는 밴드의 역사, 그들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넋 놓고 봤다. 영화관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이때까지는 칼럼을 쓸 생각이 없었다. 굳이 뭐라 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달랐다. 인종, 종교, 성(性)에서 소수자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극소수자'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던 지난 11월, 그룹 퀸의 고향인 영국 런던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인종차별과 함께 집단폭행을 당했다. 대한민국 인천에서는  다문화가정 출신 한 중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아프리카 ‘중복이민자’ 집안에서 성장했다. 머큐리의 가족은 종교적인 이유로 인도에서 탈출했다. 힌두교(다신교)의 나라 인도에서 고대 페르시아 시대 유일신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믿었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머큐리의 보수적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은 조로아스터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힌두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머큐리의 부모는 탄자니아 영토인 인도양의 섬 잔지바르(당시 영국령)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머큐리가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은 다시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중복이민자다.

영화 초반, 런던 히스로공항의 백인 노동자들은 함께 하역작업을 하는 머큐리를 ‘파키’(파키스탄 사람들을 비하하는 호칭)라고 부른다. 이렇듯 그는 국가와 종교, 인종의 소수자였다.

여주인공 매리 오스틴은 프레디 머큐리에게 “당신은 게이야”라고 말하지만, 그는 동성애자가 아닌 남성·여성 모두에게 끌리는 양성애자였다. 성 소수자 중에서 또 소수자인 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 제목도 소수자를 어우른다. ‘보헤미아’는 체코의 서쪽 지역을 말하는데,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유럽의 유랑민, 집시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보헤미아 사람, 보헤미안은 곧 집시를 칭하는 말이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 말 유럽에서 ‘보헤미안’은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예술가,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랩소디는 형식과 내용에서 자유로운 시적인 기악곡, 광시곡(狂詩曲)이다. 소수인이자 자유인인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보헤미안 랩소디는 제목부터 이런 뜻을 담았다.

많은 영국인들에게 이런 극소수자 프레디 머큐리는 큰 사랑을 받았다. 영국인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 BBC가 제작한 2부작 다큐멘터리 ‘Queen-Days Of Our Lives(퀸-우리 삶의 나날들)'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머큐리를 국가, 인종, 종교,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위대한 뮤지션, 예술인으로 추앙했다.

하지만 그때의 영국과 지금의 영국은 사뭇 다른가 보다. 지난 11월 11일 런던 시내 한복판인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한 한국인 유학생이 영국 청소년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백인과 흑인 청소년 10여명이 동양인 유학생에게 쓰레기를 던졌고, 이에 영어로 항의하자 "영어 할 줄 아네"라며 바닥에 쓰러뜨린 채 머리와 뺨을 때리고 몸을 발로 찼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맞으면서 "인종차별하지 마라"고 소리 질렀지만 머리를 더 때렸다고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 폭행 현장을 외면하거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가해자들을 막은 유일한 사람은 베네수엘라에서 이주한 남성 1명이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요즘 영국에는 아시아·아프리카계를 향한 인종차별·증오범죄가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틀 뒤 13일 대한민국 인천에서는 외국인 어머니를 둔 한 중학생이 또래들에게 새벽부터 저녁까지 집단폭행을 당하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심지어 가해자 중 1명이 피해자의 패딩 점퍼를 입고 그대로 경찰 조사를 받아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된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청원이 빗발쳤다. 피해자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왕따와 폭행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나 혹은 우리와 '다른' 소수자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범죄다.

종교와 인종, 성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프레디 머큐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머큐리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곡은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다. 머큐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차별과 저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했을 거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를 작곡하면서 관객을 공연에 동참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마치 한 곡처럼 곧바로 이어지는 '위 아 더 챔피언' 역시 관객과의 떼창을 위해 머큐리가 만든 곡이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곡 ‘라디오 가 가(Radio Ga Ga)'의 머리 위 박수 두 번 역시 그렇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한 627만여명(12월 4일 현재)의 한국인들은 다양한 인종의 주한 외국인·난민, 다문화가정 출신자, 성 소수자 같은 일상생활 속의 '프레디 머큐리'를 어떻게 대할까. 

최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이 심각해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원회는 심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인종차별 철폐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차별 사유를 포괄해 하나의 법률로 정하는 일반적·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정부와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하는 '프레디 머큐리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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