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 대신 '양심' 우선한 법원…후폭풍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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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11-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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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전원합의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처벌하는 것, 헌법상 기본권 침해"

  • 다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했던 판례 새롭게 해야"

  • 일부 반대 의견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복무제 도입 위한 국가정책 문제"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1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정한 판결은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앞선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전쟁, 남북전쟁 등 힘없는 조국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던 국방의 의무가 개인의 양심과 인간의 존엄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대법원, 선고 배경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선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종교·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가운데 8명은 "'양심'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 파멸될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마음의 소리이고, '양심의 자유'에는 내면의 자유와 이에 따라 형성된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자유도 포함된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병역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훼손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현행 병역법은 병역의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 등 5가지로 규정하고, 현역 입영 통지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병역거부자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기소돼 1968년 7월에 확립된 판례를 바탕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헌재는 지난 6월  병역거부자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체복무제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제시한 첫 사례다.

대법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라도 감수하는데, 이들에게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한다면 이들에게는 양심이냐 형사처벌이냐 2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최소한의 소극적 부작위이며,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제기될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양심의 자유에 관한 종전 판례 법리를 토대로 이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처벌했던 판례가 변경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양심?···반대의견 "대체복무제부터 도입해야"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일부 대법관들은 반대 의견을 통해 양심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고 대체복무제에 대한 입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판결은 국민 통합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 의견을 비친 대법관들은 "양심의 존재는 명확하게 증명될 수 없고,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면서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도록 충분하고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견은 특정 종파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없이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더욱 억제하고 있다"면서 "양심의 진정성은 형사절차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종교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줄 국가적 토대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첵의 문제”라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성을 띤 현행 병역법 조항을 적용해 판단할 게 아니라 대체복무를 포함하는 국회의 개선 입법을 기다려 해결해야 하고, 이 방법이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판결의 배경과 후폭풍 예상···향후 전망은?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이번 정부 들어 진보성향의 대법관들로 대거 교체된 데다 앞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2004년 이후 하급심에서 관련 판결에 대해 대거 무죄 선고가 나온 기류도 반영됐다는 의견이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관련 재판에도 후폭풍이 일 전망이다.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대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은 227건이다. 이미 하급심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무죄 판결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04년 이후 최근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내세우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 등 헌법상 가치는 병역의무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을 유지해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소급적용 되지는 않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미 유죄가 확정돼 형을 마쳤거나 수감중인 사람은 보상 청구가 불가능하다"며 "이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가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에 고발된 병역거부자 상당수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전망이다. 검찰은 그동안 병무청이 고발한 병역 거부자들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왔다. 검찰청은 이날 판결 직후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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