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美·中 환율전쟁’ 정해진 타임테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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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18-07-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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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세폭탄·기술봉쇄에 이은 환율압박까지…‘세 개의 통상전쟁’ 가시화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중의 한 사람이다. 인물 캐릭터가 갖고 있는 호감도가 높기도 하지만 재임 기간(1981∼1989) 중 그가 시행한 경제 정책인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통해 미국 경제의 재건(再建)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힘의 논리만이 미국을 위대하게 한다"라는 강경보수 노선을 고수하면서 많은 결과물을 잉태했다. 미·소 냉전 체제를 종식하고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통해 개혁·개방의 길로 끌어냈다. 초강대국 미국 일극(一極) 체제로 옮겨가는 초석을 다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라는 묘수를 통해 당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일본 경제의 위세를 한방에 꺾었다. 달러 강세로 인한 재정·경상수지 쌍둥이 적자를 경감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엔화의 평가절상을 통해 미국에 투자한 엄청난 일본 자본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기도 했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그 원초적 태생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땅을 칠 일이지만 일본이 너무 쉽게 양보한 것이 엄청난 화근을 자초한 것이다.

2017년 혜성 같이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과 매우 흡사하다. 정치적 배경이나 캐릭터가 유사하고 정책 노선도 거의 빼닮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정치적 슬로건과 더불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라는 경제 정책만 보더라도 '레이건 따라 하기'라고 하는 말이 딱 들어맞다. 다만 상대만 중국으로 바뀌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틈타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하면서 경제력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에 더하여 군사력도 커지면서 미국 패권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 정도로 무소불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2년 중국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부상한 시진핑 체제는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걸면서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 '미래 패권은 중국의 몫'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도 불편했고, 언젠가는 양쪽이 심하게 격돌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팽배해왔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킨게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판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힘겨루기 양상이다.

상품에 대한 관세 폭탄에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기술 봉쇄에 이어 환율 압박으로 이어지는 트럼프 사단의 시나리오는 정해진 수순대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고, 실제로 약발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적 딜레마이긴 하다. 중국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임이 예견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타임테이블이며, 현재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미국이 쓸 수 있는 다음 카드가 환율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파다했다.

중국도 이를 간파하고 마지막 샅바를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기세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전쟁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 지에 대해 골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통화가치 절상으로 일본이 당한 처절한 사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압박에 쉽게 백기를 들지 않을 것임은 매우 분명하다. 무역전쟁 장기전에 대비하여 내수 부양을 위한 재정·금융 꾸러미를 준비하고 있다. 위안화의 급격한 절상을 억제하기 위한 다면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미·중 무역전쟁 틈새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 노리는 일본의 계산법

한편 통화전쟁을 끌고 가야할 트럼프 진영에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빠른 금리 인상은 달갑지 않다. 노골적인 불만 표시와 더불어 속도 조절을 간접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중국, 유럽연합(EU) 등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판에 달러 강세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트럼프 측은 자신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이 단기적으로 미국이나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를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 무역, 즉 글로벌 무역 질서가 제대로 구축되면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미국 내에 더 많은 공장과 일자리가 생겨나고, 고질적인 무역적자도 해소될 것이라는 신념이 강하다. 그리고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상황이 양호한 지금이 적기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턱밑에서 패권을 넘보고 있는 중국에 치명상을 입혀 제대로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포석이다.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을 위해선 레이건 방식이 트럼프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성공 방정식이다.

관세 폭탄·기술 봉쇄·환율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고래 싸움의 와중에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무역전쟁에 몰고 올 부정적 파장과 자국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에 가장 크게 노출된 국가의 리스트에 한국을 여섯 번째에 올렸을 정도다. 초조와 긴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다른 묘책이 없어 전전긍긍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틈새에서 어부지리를 노린다. 오히려 이익이 생겨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시적으로 미·중 양국에 수출하는 일본 상품이 타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양대 거대시장에서 반사이익이 생겨나면서 일본 상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속적으로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엔화의 급격한 절상을 최대한 억제해 나가는 정책을 고수한다. 수출만이 일본 기업의 재기를 돕는 최고의 약발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면적 통상 압박이 중국의 부상을 위축시킬 수 있겠지만 중국의 미래는 외부적 충격보다 내부적인 상황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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