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TV] 마이웨이 '서수남', 10억 빚 남기고 잠적한 아내 3년전 미국에서 죽은 딸 "굴곡많은 인생에 눈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윤정 기자
입력 2018-07-13 07:4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 마이웨이 방송 화면 캡처]


가수 서수남이 많은 시련이 불어닥쳤던 지난날을 담담히 고백했다.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떠난 아버지, 10억의 빚을 남기고 잠적한 아내, 그리고 세상을 떠난 첫째 딸에 대한 아픔을 털어놨다. 

12일 방송된 TV조선 '마이웨이'에서 서수남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뒀던 서수남은 현재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0년부터는 우간다 봉사활동을 시작, 많은 사람들과 나눔을 펼치고 있다.

서수남에게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람은 부모님, 그리고 빚을 남기고 잠적한 아내, 먼저 세상을 떠난 첫째 딸이다. 서수남은 자신이 태어나고 100일이 되기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그는 "1942년 2월에 저를 낳으시고,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4월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스물여섯 살에 남편을 잃고 나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을 사셨다"고 했다.
 
서수남은 "어머니는 나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고, 위장병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런 어머니 때문에 학교도 가기 싫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으나 돈 벌 데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고 싶었던 서수남이 가진 것은 노래 실력뿐이었다. 서수남은 "어떤 사람이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이 너무 외국 노래를 잘하는데 당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하더라. 가봤더니 에이전시가 있는 미8군 용역 회사였다"고 밝혔다.
 
이어 서수남은 “2000년에 큰 시련을 겪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절망이었다.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라며 가장 믿었던 아내가 빚 10억을 남기고 도망간 사연에 대해 전했다.

그는“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고 했다. 서수남은 자신이 운영하던 노래 교실에 채권자들이 찾아올 때까지 아내의 부채를 알지 못했다며 “아내는 10억 빚을 남긴 채 잠적했다”고 고백했다.

서수남은 “현금과 집이 날아갔다. 셋방을 얻을 돈도 없을 정도였다”면서 “채권자에게 무릎을 꿇고 1년만 살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냉정하더라”고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또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대인기피 증세가 왔다”며 “그때 딸이 셋이었는데 다들 결혼할 나이에 그런 시련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이 일로 인해 서수남은 꾸려오던 노래교실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제가 강단에 서면 주부님들이 ‘서수남 망했다더라’, ‘서수남 아내가 도망갔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괴로웠다”라고 전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서수남은 "셋방 얻을 돈도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됐다. 그 이후로 몸이 망가지기 시작해서 대인기피 현상도 생겼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쟤는 왜 이렇게 어리석어?', 또 어떤 사람들은 '안됐다'고 하고. 정말 상처가 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이 그 이상 비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수남은 또 "아이들이 세 명 있었는데 걔들이 전부 여자아이였고 결혼을 할 나이였다. 그때 그런 시련을 겪었다. 딸들이 결혼만 했어도 그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거다"라며 "내가 고생하는 건 괜찮은데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비참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고 했다.
 
그는 "하늘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곤경에 빠져야 하나요' 자문하게 되더라. 60을 바라보는 나이였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희망이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절망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서수남은 딸을 먼저 보낸 슬픔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서수남은 "아는 사람은 없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다음다음 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며 "처음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보호자를 찾는다고 하는데, 남편과 조금 다퉈서 별거 중이었나 보더라"고 밝혔다. 이어 "얘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보더라. 병원에 있다고 보호자가 빨리 와 달라고, 위출혈이 됐다고 미국 병원 응급실에서 그러더라. 비행기 예약을 하고 가려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이미 사망했다더라"고 덧붙였다.
 
서수남은 "유골이 화물 비행기로 왔다. 인천 터미널에 가서 그 유골을 안고 오는데"라고 말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서수남은 "살아서 부모가 그런 경험을 정말 하면 안 된다. 정말 가슴 아프고 내가 죄가 많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한편 서수남은 1992년 1집 앨범 ‘서수남의 세상 사는 이야기’로 데뷔했다. 아리랑 브라더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우리 애인 미스 얌체’ ‘동물농장’ 등의 곡을 발표해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