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통계는 정책의 방패막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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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범 기자
입력 2018-06-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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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충범 건설부동산부 기자

야구 경기를 보면 '좌우놀이'라는 속어가 있다. '왼손 타자는 왼손 투수에게 약하다'는 통상적 인식으로 인해, 감독이 경기 승부처에서 왼손 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왼손 투수를 올리는 작전을 뜻한다.

좌우놀이는 지난 수십년간 국내 야구계에서 어느 정도 정설로 통할 만큼 통계적으로도 유의한 전략이다. 한국뿐만 아닌 일본, 미국에서도 좌우놀이를 시도하는 감독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 타자의 능력이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극단적인 좌우놀이에 치중하는 감독들도 종종 있다. 당연히 이럴 경우 그 팀의 성적이 좋지 않게 마련이다. 좌우놀이에만 골몰한 나머지 여러 변수들을 놓칠 수 있어서다. 통계 맹신의 대표적 사례다.

정부 역시 부동산 정책을 설계하거나 지표를 발표하는 데 있어 유의한 통계를 활용한다. 수년간 누적된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시장 흐름 등을 감안해 신뢰도 높은 자료를 내놓는다.

문제는 정부가 통계를 활용해 내놓은 결과물과 시장 간의 괴리감이 종종 느껴진다는 점이다.

작년 발표된 '8·2 부동산 대책'은 투기지역 지정 등 고강도 규제책이 대거 담겨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이룬 대책이다. 특히 투기지역은 주택담보대출 제한, 자금조달계획 선정 의무화 등 강한 규제가 걸려 세간의 관심을 모았는데, 서울시 11곳과 세종시 등 단 12곳만 이에 해당됐다.

이 중 노원구가 투기지역에 포함된 것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해 당시 직전 2개월 주택가격상승률이 직전 2개월 평균 주택가격상승률의 130%보다 높거나, 직전 1년 상승률이 직전 3년 평균 상승률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집값 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고 주변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싶으면 투기지역으로 선정했다는 얘기다.

국토부의 통계 기준에 의거한 해명은 매우 명확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노원구가 강남 4구나 세종시와 같이 투기지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학군이 좋고,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많은 노원구는 분명 국토부 입장대로 '핫'한 지역일지 모른다. 하지만 평균 아파트 가격은 아직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국토부가 지난달 초 발표한 '2017년 주거실태조사'도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자가보유율이 2014년 58%, 2016년 59.9%, 2017년 61.1% 등 점차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의 주관적 관점이긴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내집 마련이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3~4년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긴 했지만 집값 역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가구를 대상으로 법적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소유 여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자료(등기)로 주택의 법적 소유현황을 파악해 작성하는 '주택소유율'과는 다를 수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인식을 조사했다는 뜻인데,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대목이다. 통계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부와 시장의 해석이 크게 엇갈릴 수 있는 것이다.

종종 야구 감독들은 좌우놀이를 잘못했다고 시인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실패의 원인을 통계 탓으로 돌린다. 부연 해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제대로 된 데이터를 활용한 시장 분석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더욱 면밀한 시장 분석을 통해 현실성을 반영한 자료 및 대책을 내놓길 많은 사람들은 원한다. 통계를 해명의 방패막이로만 사용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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