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골프& 休] 인제 주연이다…‘실력‧외모‧인성’ 삼박자의 ‘장타 괴물’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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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기자
입력 2018-05-1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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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하고 있는 인주연. [사진=KLPGA 제공]


박성현이 떠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새로운 ‘장타 괴물’ 인주연(21)이 깜짝 등장했다. 172㎝의 키에 어려서부터 다져진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서 뿜어 나오는 호쾌한 스윙은 280야드도 거뜬하다. 주체하지 못하는 힘 때문에 동료들이 ‘힘주연’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스타 예감이다.

지난 3년여간 무명의 시간을 보낸 인주연의 이력은 특이한 점이 많다. 그래서 궁금하고 매력적이다. 1부 투어 시드를 유지하지 못해 2부 투어를 전전했다. 지난해에는 1부와 2부 투어를 겸업하며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한 주에 12라운드를 돈 적도 있다. 보통 강철 체력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 어려운 걸 해냈다. 1부 투어 상금랭킹은 71위(60위까지 유지)로 시드권을 얻을 수 없었지만, 2부 투어 상금랭킹 2위로 시드를 확보했다.

지난 13일 경기 수원컨트리클럽에서 끝난 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인주연은 2차 연장까지 가는 승부 끝에 김소이를 제치고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극적인 우승 버디 퍼트가 홀에 떨어지는 순간 두 팔을 번쩍 들고 기뻐한 뒤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인주연이 우승을 확정지은 뒤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1부 투어의 ‘주연’이 되기까지 인주연의 힘겨운 사투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인주연은 초등학교 때 태권도와 육상을 했다. 경기도 대표로 100m 단거리 육상 선수를 꿈꿨던 소녀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는 그의 근육질 허벅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골프채는 중학교 1학년 때 잡았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정적인 운동이란 생각에 흥미가 없었다. 취미로 즐기다 어마어마한 장타를 본 주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 골프의 매력에 슬쩍 빠져들었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집안사정이 안 좋아 골프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최경주 재단 장학생의 기회가 재능을 살렸다. 인주연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최경주가 여는 동계 캠프에 참가하는 행운을 누렸고, 프로 첫해였던 2015년에는 금전적 도움도 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후원사인 동부건설을 만나 걱정을 덜었다. “연습 라운드를 나가려면 그린피와 카트비 걱정부터 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신 최경주 프로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동부건설에서 잘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인주연은 실력, 외모, 인성의 3박자를 모두 갖춘 기대주로 꼽힌다. 장타력에 쇼트게임 능력만 다듬으면 ‘제2의 박성현’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스타성을 겸비한 출중한 외모와 사려 깊은 마음은 보너스다.

인주연이 골프에 눈을 뜬 건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뺀 뒤부터다. 작년까지만 해도 힘자랑을 하다가 ‘OB 여왕’이란 오명만 썼다. 올해를 준비하며 힘 빼는 방법을 깨우쳤다. 그랬더니 골프가 쉬워졌다. “퍼트를 할 때도 어찌나 힘을 줬는지 모른다. 모든 샷을 힘으로 쳤는데, 이젠 모든 샷을 힘을 빼고 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실히 기술적으로 더 성장한 느낌이다.” 우승은 그냥 온 게 아니었다.

스스로 최대 약점이라 생각했던 ‘새가슴’ 멘털도 잡았다. “긴장하면 골프 치는 꿈을 꾼다”고 할 정도로 결정적 승부처에서 벌벌 떨기 일쑤였다. 대회 초반 좋은 성적으로 출발했다가도 번번이 뒤로 밀렸던 이유다. 샷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도 했지만, 남모를 노력이 더 주효했다. 그의 야디지 북(yardage book)에는 두 가지 문구가 적혀 있다. 위에는 ‘훅을 잡고 팔을 휘두르자’, 밑에는 ‘차분하게 침착하게 나를 믿고 자신 있게 치자’라고 적었다. 이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우승 뒤 인터뷰에서도 인주연이 가장 많이 꺼낸 단어가 ‘차분하게’였다. “1부 투어에서도 단독 선두를 몇 번 한 적 있었다. 그런데 타수를 지킨 적이 없다. ‘차분하게’라는 말은 그 단어를 보기만 해도 더 들뜨지 않고 또 가라앉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해 적어놓고 마음에 새기고 있다.”
 

동료들에게 우승 축하 세리머니를 받고 있는 인주연. [사진=KLPGA 제공]


인주연에게 우승의 의미는 크다. 동기들이 잘나갈 때도 부러움 대신 ‘내 실력이 부족하니까’라며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뒤늦게 골프를 시작한 탓에 남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면서도 ‘왜 나는 성과가 없을까’라고 고민도 하고 있던 터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데 그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는 성격도 아니다 보니···.” 그동안의 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눈시울이 붉어진 인주연은 인터뷰 도중 참았던 눈물을 훔쳤다.

다시 웃음을 찾은 건 우승상금이란 말이 나온 뒤다. 인주연은 이 대회에서 1억4000만원을 받았다. 웃음 뒤에 떠오른 건 그동안 없는 형편에 뒷바라지로 고생하신 부모님 생각이다. “어렵게 골프를 쳤기 때문에 뭘 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님께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사실 금액도 너무 커서 감이 없다. 지금은 골프 라운드 비용 걱정 없이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돼 기쁘고, 이젠 시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너무 좋다.” 인주연은 이번 우승으로 2년간 시드권을 확보했다.

생애 첫 우승과 함께 마음껏 울고 웃은 인주연은 “이 대회 우승으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앞으로 골프를 치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골프를 하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갖고 선수 생활을 정말 오래 하고 싶다. 그만큼 더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주연은 무명의 조연을 끝내고 인제 주연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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