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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엔터프라이즈] 건설 자재부터 첨단소재까지 영역 확장...한국경제 60년 '산 증인'

윤정훈 기자입력 : 2018-04-16 08:15수정 : 2018-04-16 08:15

정상영 KCC 명예회장.[사진=KCC]



'맡은 자리의 주인이 되자.'

KCC의 기업정신이 응축된 사시(社是)다. KCC의 창업주인 정상영 명예회장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은 평생 '현장'을 중시했고, KCC 발전의 반석을 다졌다. 지금도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연필로 줄이 그어진 도면이 있을 정도다.

1958년 직원 7명, 생산 설비 1대로 시작한 KCC는 60년 만에 5000명의 임직원과 11개국 지사, 27개의 국내외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회사로 도약했다.
한국 경제의 부침 속에서도 쾌속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한다"는 정 회장의 경영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재계의 평가다.

◆한국경제 성장과 함께 걸어온 60년

정 명예회장은 1958년 8월 22살의 나이에 KCC 전신인 금강스레트공업을 창립했다. 당시는 큰형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일으킨 현대건설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자립의 길을 택했다. 이같은 도전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KCC의 경영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명인 '금강'은 가장 단단한 보석인 금강석에서 유래한다. 또한 고향인 금강산에서 이름을 딴 것이기도 하다.

KCC가 본격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도료사업을 위한 고려화학을 설립하고 건축.자동차.선박.공업용 도료 등을 생산하며 도료사업에서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2년 후인 1976년에는 금강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서 필요한 건축자재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이 덕분에 회사는 창호, 유리, 석고보드, 무기단열재, 천장재, 바닥재 등 국내 최대의 종합건축자재회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로 D램 메모리 반도체를 메인보드에 붙이는 데 사용되는 접착제를 개발했고, 1996년에는 물에 희석해서 쓸 수 있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2000년 일본 아사히글라스와 자동차용 유리 합작회사인 코리아오토글라스(KAC)를 설립했다. 같은 해 ㈜금강과 ㈜고려화학이 합병해 무기와 유기 분야를 아우르는 기술력과 제품군올 보유하게 됐다. 사명을 금강고려화학으로 변경했다가 2005년 KCC로 바꿨다.

정 명예회장은 ‘사람이 곧 기업’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인재육성에 힘썼다. 그는 새로운 지식이 담긴 책을 구입, 배포해 임직원이 일독하도록 했다.
또 현장실습교육과 해외연수 등에 비용을 아끼지 않고 기술자들이 외국 선진기술을 견문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이는 1979년 중앙연구소, 1991년 인력개발원 등을 설립하며 결실을 맺었다.

◆'100년 기업' 향해 다시 뛴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시작과 함께 회사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임직원들의 경쟁력 함양을 당부했다. 이는 글로벌 초일류 정밀화학기업으로 나가는 기반이 됐다. 또한 경영권을 그의 첫째 아들인 정몽진 회장(2000년 취임)에게 넘겨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했다.

정 회장은 KCC는 기존의 건자재, 자동차 내외장재 뿐만 아니라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가정부터 우주 산업까지 사용되는 실리콘, 장섬유를 비롯해 반도체와 전기전자 분야의 첨단 부품 및 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제 2의 도약을 이끌고 있다.

KCC 관계자는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것이 오늘날 KCC를 일궈낸 원동력이 됐다"며 "100년을 준비하는 기업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KCC 서울 강남 본사 사옥.[사진=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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