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루'가 여혐이라고?…'프로불편러'가 된 女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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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입력 2018-04-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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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유튜버 보겸은 지난달 개인방송에서 자신의 유행어인 '보이루'의 여혐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YouTube '보겸 TV 캡쳐']


“’보이루’는 여혐(여성혐오) 단어 아닌가요? 불쾌하니까 쓰지 말아주시죠.”

A씨는 얼마 전 SNS 게시물에 인사말로 ‘보이루’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익명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댓글 폭격을 당했다.

보이루는 유튜브 구독자 20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1인 방송인) 보겸의 이름과 인사말 ‘하이루’를 합친 합성어다. 보겸이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 인사말은 최근 가장 '핫'한 유행어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단어를 여성의 성기와 연관시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보이루는 여혐 논란에 빠지게 됐다. 검색창에 여혐을 검색하면 보이루라는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다. 네티즌들은 이 단어를 두고 온라인 상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A씨에게 해당 댓글을 삭제할 것을 요구한 이들은 "원래 뜻과 상관없이 여성을 만나면 악의적으로 '보이루'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뜻을 알고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며 댓글폭격을 이어갔다. 

거센 비난에 당황한 A씨는 결국 해당 댓글을 삭제했다. 그는 "아무 의미없는 단어에도 저렇게 죽자고 달려드는데 말 한마디 하기도 무서워 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8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 및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
 

◆'프로불편러'가 된 그녀들…'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여성인권 신장 운동은 지난해 미국에서 불어온 '미투(#Me Too) 운동' 열풍으로 인해 본격화됐다. 

유력 정치인과 예술계에서 실세로 군림하던 이들을 몰아낸 미투운동은 성희롱과 성차별에 침묵하던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미투에 용기를 얻은 여성은 주체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그 동안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던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동안 잠잠하던 여성들 날선 반응과 지적을 이어나가자 남성들은 당혹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괜찮았던 말과 동작 하나하나에 검열이 이뤄지자 불편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는 이같은 권리를 주장하고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프로불편러’로 규정했다.

특히 페미니즘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Megalia·이하 메갈) 등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페미니즘 집단이 그렇다.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활동하자 사람들은 '꼴페미' 등으로 부르며 페미니스트를 불편한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적했다. 페미니즘을 덮어놓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여성에게 부여돼 있던 나약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본인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그들은 우리가 옛날 갖고 있던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아직 우리 사회에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수시로 문제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근 대학에 갓 복학한 B씨도 대학 단체 채팅방에서 다른 남학생이 '김치녀'라는 단어를 썼다, 채팅방에서 쫓겨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그 말이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며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많은 남성은 페미니스트들이 '마녀사냥'처럼 과도하게 남성만을 탓한다고 느끼며, 성대결 구도에서 이들을 적으로 간주한다. 이에 SNS는 성대결의 피 튀기는 전쟁터로 변하게 됐다.
 

[연합]

 

지난 2016년 방영된 tvN의 인기드라마 ‘또 오해영’은 남성의 강제 키스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의 행위로 활용되며 여혐 논란을 낳았다. ['또 오해영'화면 갈무리]


◆'녀(女) 시리즈'부터 맘충, 김여사까지…뿌리깊은 '여혐' 논란

남성들의 반응과는 상관 없이 페미니즘은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에 변화시키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당연시해온 언어습관부터 바로 잡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여혐은 단어 자체로 여성을 증오하고 미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가 생각한 틀 안에 박제해둔 여성이 틀 밖의 행동을 할 때 생기는 거부감'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란 원래 지적으로 열등하고,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며, 어린애 같거나 관능적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혐표현은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김치녀, 된장녀 등 '녀(女) 시리즈'부터 맘충, 김여사, 미스김 등은 모두 대표적인 여혐표현이다.

이 단어들은 지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등 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여성을 비하한다.

여자는 분홍색을,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한다거나 여자는 드세면 안 되고 남자는 약하면 안 된다는 관념들 또한 여혐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 스며든 여혐표현은 TV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여자 아이돌은 당연한 절차인듯 카메라와 MC들을 향해 애교를 부린다. 남녀 아이돌이 복근이나 몸매를 드러내며 춤을 추면 카메라는 그의 몸을 위아래로 훑는 식이다.

드라마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손목을 낚아채고 일방적으로 애정표현하는 것을 강한 남성 또는 사랑의 표현으로 미화시킨다. 이 모든 여혐표현은 아직까지도 전파를 통해 여과없이 방송에 나오고 있다.

미투운동 이전에는 사회적 분위기 상 이에 대한 지적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누군가 불편함을 드러내면 '굳이 그걸 따지고 넘어가야 하냐’거나 ‘농담에 죽자고 달려든다’며 되려 예민한 사람 취급을 해왔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앞줄 가운데)이 지난해 9월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보이스 간담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여전한 페미니즘 '非공감'…아빠들 중심으로 男집단도 조금씩 변화 물결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성 인권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남녀갈등 상황을 사회인식이 변하는 과도기에 겪어야 할 진통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특히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사회가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혜련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전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한창 페미니즘에 대한 (남녀간, 학계간) 논쟁이 진행 중이다. 여러 사람이 상처받기도 하고 논쟁적이기도 한 데, 이 또한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남성뿐 아니라, 일부 강성 페미니스트에 대해 "남녀가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데, 남녀가 서로 뺏긴다고 잘못 이해하는 것 같다"며 "남녀 모두의 삶이 바뀔 필요가 있다. 역차별로 남녀 대결구도가 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금의 진통에서 변화를 빨리 가져가려면 좋은 남녀관계가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한다"며 "돌봄이나 생계부담,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남성성을 강요받고 있다. 지금의 사회 구조가 남성에게도 좋은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역시 "(일부 페미니스들이) 바라는 세상이 무엇이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남녀가 뒤바뀐) 역전을 바라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굉장히 많은 운동과 연대하며 (서로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성 집단에서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최근 딸을 둔 아빠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 늘며 '빠미니스트(아빠+페미니스트)'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사회적으로 올바른 성인식이 안착되도록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는 남성단체 '성평등보이스(우리사회 성평등 확산에 앞장서는 남성모임)'을 주관, 남성들의 페미니즘 동참을 유도한다. 

성평등보이스는 지난 2월 입장문을 내고,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성평등보이스는 김형준 명지대교수를 단장으로, 배우 권해효씨 등 성평등과 폭력예방을 실천해온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학계·언론방송계·문화체육계 남성 45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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