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규의 알쓸軍잡]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 활동했던 KGB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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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규 기자
입력 2018-03-2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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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크렘린 누리집]


블라디미르 푸틴이 18일(현지시각)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 예상대로 압승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승리로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게 됩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총리와 대통령 등 정부 실권을 쥐고 있던 기간이 무려 24년에 달합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29년간 소비에트연방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최장기 집권입니다. 대다수 외교 전문가는 푸틴의 재집권 이유를 장기경기 침체에 따른 우경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강한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초강대국 지위를 잃고 무력감을 느끼던 러시아인들에게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푸틴은 젊고 유능한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동안 보여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통해 '강한 러시아’라는 이상이 현실화될 거라는 믿음도 심어줬다는 겁니다.

도대체 KGB가 어떤 기관이고 푸틴은 그곳에서 어떤 임무를 맡았길래 이렇게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요?
 

[모스크바 류반크 광장에 있는 KGB 본부. 사진=wikimedia]


◇ 한때 미국 CIA 압도했던 KGB

KGB는 1950년대 동서 냉전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세계 최대 정보기관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외국 곳곳에 정보망을 두고 동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의 공산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반체제 인사를 감시했습니다.

선발 과정과 훈련, 편제 등 거의 모든 정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CIA 요원의 경우 하버드, MIT, 예일, 컬럼비아, 버클리 등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을 다니는 학생 중 교수를 겸하고 있는 CIA 요원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푸틴도 국립 페테르부르크 법대에 다니다 KGB 요원으로 특별채용됐습니다. 독일어에 능통해 1985년 ‘통역관’이라는 위장 신분으로 구동독에 잠입, 핵심인사 포섭과 군사기밀 등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Tu-160 초음속 폭격기 조정하는 푸틴. 사진=wikimedia]


KGB 요원들이 각종 교육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보의 가치를 판별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해박한 지식은 필수였던 것이죠. 일례로 KGB 요원이 미국에서 빼내온 F-18 전투기의 정보로 MiG-29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푸틴 역시 항공기에 조회가 깊습니다.

2000년 체첸전쟁 당시 푸틴은 Su-27 전투기를 몰고 공군기지에 나타났고 2005년 MAKS 에어쇼에서 Tu-160 초음속 폭격기를 조정했습니다. 2010년에는 산불이 나자 Be-200 산불진화용 비행기 부조종사 자리에서 물을 투하하기도 했습니다.

푸틴이 산불 진화를 위해 항공기 부조종사를 맡은 것과 관련, 블로거들은 “푸틴이 조종사 자격증 없이 항공기를 조종했다면 2000∼2500루블(66∼82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도 있었습니다. 푸틴은 자격증을 취득했는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푸틴은 1989년 동독이 붕괴하자 대학으로 돌아와 교수로 재직했으나 사실 KGB 요원을 양성하고 서유럽에 침투시키는 역할이 본업이었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마저 해체 수순으로 몰락하면서 푸틴은 KGB를 떠났습니다.
 

          [FSB 산하 대테러부대 알파그룹. 출처=유튜브]


◇ 소련 붕괴 후 푸틴과 돌아온 KGB

KGB는 그해 8월 소비에트연방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에 가담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실각시켰습니다. 그러나 국내외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민중들의 저지로 쿠데타는 실패했고 도리어 소비에트연방이 해산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쿠데타를 전후해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보리스 옐친의 주도하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대통령이 벨라베자 숲에서 모여 벨라베자조약을 체결하면서 러시아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공화국이 소비에트연방을 탈퇴하고 따로 독립 국가 연합(CIS)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KGB는 결국 해체됐습니다. 국외 정보수집을 담당하던 KGB 제1총국의 업무는 러시아 해외정보국(SVR)에서 맡게 됐습니다. 그러다 체첸전쟁 발생 다음 해인 1995년 옐친에 의해 KGB 제2총국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탄생했습니다.

이 시기 푸틴은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을 지내며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1996~1998년에 대통령 행정실 부국장·국장, 부실장을 맡았으며 1998년 7월에 FSB 국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99년 8월 옐친이 푸틴을 총리 대행으로 발탁했습니다.

3개월여 만에 옐친이 전격 사임하면서 푸틴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다가 2000년 5월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FSB는 2003년 연방국경청(FPS)과 연방통신정보국(FAPSI)을 흡수해 그 영향력이 현재 수준으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전직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사진=TASS]


FSB 활동 범위가 국내로 한정되어 있으나 국내외에서 첩보, 암살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푸틴의 정적이던 베레좁스키 암살 지시 등을 폭로하고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죽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리트비넨코는 2006년 영국의 한 호텔에서 차를 마신 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매우 희귀한 방사성 물질 ‘폴로늄 210’ 중독이었습니다. 리트비넨코는 유언에서 푸틴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으나 푸틴은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푸틴은 이 밖에 여러 암살 시도 의혹에 연루됐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2004년 제4대 대통령, 2008년 삼선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총리로 취임했다가 2012년 다시 제6대 대통령으로 복귀하며 자신의 장기 집권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옛 KGB 동료들을 크렘린 대통령궁, 정부, 언론, 재계 등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푸틴은 FSB와 연방경호국(FSO), 해외정보국(SVR)을 통합시켜 국가보안부(MGB)로 통합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합이 성사되면 과거 KGB가 완벽히 부활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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