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글로벌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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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우 기자
입력 2018-03-1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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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익산에 6000억 투자, 종합식품단지-도계공장-가공플랜트 건립

  •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한 고교생 사업가, 재계 30대 그룹 일궈

  • 삼계탕 美 수출량 절반 차지…이후 中·EU 진출도 순조로워

  • “익산 ‘푸드 트라이앵글’, 인구 14억 동북아 공략 허브될 것”

김홍국 하림 회장(왼쪽 첫번째)이 집무실에서 외국인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하림그룹 제공]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집무실에는 ‘지구본’이 있다. 그는 프로필 사진이나 홍보 영상을 촬영할 때도 이 지구본을 꼭 한 번씩 손에 든다. ‘글로벌 생산성 1위’를 달성한다는 비전을 스스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김 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미꾸라지와 개구리, 부모님 몰래 퍼온 쌀독의 쌀까지 사람도 못 먹을 귀한 먹이를 줘가며 병아리를 키웠다. 병아리들이 토실한 닭으로 자라자 시장에서 당시 시세보다 비싼 마리당 250원에 팔았다. 이렇게 손에 쥔 2500원이 김 회장의 종잣돈이었다. 그렇게 또 닭을 길러 팔아 이번에는 돼지를 18마리 샀다.

“저는 그냥 농업과 닭 사육이 좋았어요. 저희 집 4남매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저만 유독 농고에 간다니까 반대는 심했지만요.”

◆고등학생 사업가, 대기업 총수 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 회장은 염소까지 키우기 시작했다. 전국영농학생 전진대회 원예·축산 부문서 우승했다. 18세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축산사업을 시작했다. 양계장을 직접 설계하고, 볏짚을 납품하는 일까지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공무원 월급이 20만이었던 그 시절, 고등학생 김 회장의 한 달 수익은 300만원이 넘었다.

1982년 순조로웠던 그의 사업장에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돼지와 닭 값 폭락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것이다. 결국 하던 일을 정리하고 식품 회사에 취직했다.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2년치 월급을 모아 사업자금을 만들어 회사를 나왔다.

“왜 돼지 값은 떨어졌는데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 값은 그대로 일까?”

하림그룹의 진짜 태동은 1986년 이 하나의 의문에서 시작했다. 닭, 돼지 값이 떨어지면서 쓴 맛을 본 김 회장에게 2차 가공 산업과 유통에 대한 생각을 심어준 계기다. 농장과 공장, 시장을 아우를 수 있는 ‘삼장(三場) 통합경영’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며 하림그룹은 성장했다.

그러나 하림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두 번째 시련을 맞는다. 회사가 부도위기까지 몰린 끝에 김 회장은 세계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 신청을 했다. 실사팀이 회사를 방문해 두 달간 조사한 끝에 1998년 10월 2000만 달러(약 213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김 회장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IFC 투자에는 나름의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CEO 자질과 능력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김 회장은 “IFC 컨설팅은 회사를 발전시키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들과 협의해 경영구조 개선과 원가 절감 방안을 마련했다”며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나자 주위에서는 나를 단순한 사업가에서 국제적인 금융기관에서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평가했다. 회사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으로 격상했다. 위기가 만들어준 결과다”라고 회고했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재계 30대 그룹 반열에 오른 성공한 기업가. 김 회장의 성공신화는 자수성가형 경영인 중에서도 손꼽힌다. 실패를 극복하고 더 크게 성공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 법도 하지만, 김 회장은 과거의 영광보다 개척해야 할 미래에 방점을 찍는다.

그의 경영철학은 ‘단순함’이다. 말 그대로 단순하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려면 복잡한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글로벌 생산성 1위라는 비전 실현을 위한 큰 틀이기도 하다.

◆단순함의 철학···세계 기업과 無제한 경쟁

김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지 못한 기업은 단 한 발짝도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미국을 먼저 뚫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림그룹은 2011년 사료 값 폭등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세계 19위 닭고기업체인 미국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하고, 앨런하림푸드로 이름을 바꿨다. 업계 최초의 미국 시장 진출이다. 이 회사는 이후 실적이 호전돼 흑자 전환했다. 앨런하림푸드의 연간 생산능력은 국내 닭고기 소비량의 절반인 22만톤에 이른다. 인수 이후에도 김 회장은 앨런하림 공장 정상 가동화를 위해 수차례 미국과 한국을 오갔다.

하림그룹은 2014년 최초로 국산 삼계탕 미국 수출을 이루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1999년 미국이 우리나라 양계농장 위생관리 미흡 등을 이유로 한국산 삼계탕 수입을 금지한 후 15년 만의 성과였다.

미국 앨런하림푸드 델라웨어 공장에는 수출을 위한 즉석 삼계탕 설비가 갖춰져 있다. 이와 함께 2개의 무항생제 부화장을 운영 중이다. 기존 부화장인 시포드(Seaford) 부화장 외에 닥스보로(Dagsboro)를 2016년 새로 지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병아리는 앨런하림의 직영농가 및 계약사육농가로 간다. 이에 따라 앨런하림이 생산하는 닭고기 역시 무항생제 닭고기가 된다. 특히 새 부화장은 약 234억원을 들여 최첨단 시설을 완비했다. 무려 250만개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 

깐깐한 미국 식품위생관리기준을 통과하면서 삼계탕 중국 수출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EU(유럽연합)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국가별 삼계탕 수출 검역 실적에서 미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 수출량은 지난해 610톤 370만6000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하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432톤, 274만6000달러(약 31억3928만원)로 절반 이상이다.

중국의 경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2016년 11월부터 삼계탕 수출이 중단됐다가, 올해 2월부터 재개됐다. 대 중국 수출에서는 지난해 20t, 9만6000달러(약 1억23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중 하림 삼계탕이 6t으로 3분의1가량이다. 하림 관계자는 “중국 실적이 다시 회복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미국 앨런하림 푸드를 방문, 시찰하고 있다.[사진=하림그룹 제공]


◆하림 첨단 종합식품단지, 동북아 공략 교두보

하림그룹은 전북 익산에 첨단 종합식품단지 건립을 본격화했다.

4년여의 사전 준비단계를 거쳐 착공한 ‘하림푸드 콤플렉스’는 4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했다. 2019년 말 완공과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만709㎡(약 3만6500평) 부지에 식품 가공공장 3개와 물류센터 등 복합시설이 들어선다. 현대인 식생활 패턴에 부응하는 가정 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과 천연조미료, 즉석밥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하림그룹은 인근 익산시 망성면 소재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에도 170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최대 최첨단 도계 및 가공시설 증축공사를 진행 중이다. 인접한 익산 망성면 국가식품클러스터에는 이미 5만3623㎡(약 1만6000평)의 부지를 확보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 식품가공 플랜트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세 곳을 통틀어 ‘하림 푸드 트라이앵글(Food Triangle)’로 지칭한다. 최소 6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 가동하면 동북아 식품허브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림그룹은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인구 14억의 동북아 시장이 유럽보다 더 좋다”며 “네덜란드의 와게닝겐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작고 자원도 부족해 식량 자급률이 2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농산품 무역흑자는 연간 35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간 200억 달러 적자다. 로테르담항으로 실어온 과일 등을 재포장하거나, 인근 식품공장에서 가공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방식 덕분이다.

김 회장은 식품 클러스터가 하나의 단지가 아니라, 여러 개 모여 벨트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익산의 종합식품단지는 동북아 시장 공략을 위한 김 회장의 또 하나의 시작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대로 새만금 신항이 조성된다면, 하림종합식품단지에서 생산한 가공식품들을 중국과 일본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직영 농장에서 닭들을 직접 살피고 있다.[사진=하림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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