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평창이 평양 아닌 평화의 무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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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01-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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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북한은 대한민국과 정말 악연인가 보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둘러싼 치졸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비아냥이 국내외에서 오간다. 이에 애가 타는 청와대와 여당은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린다면 이런 볼썽사나운 싸움은 상상조차 어려울 일이다.

그런데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십분, 아니 백분 활용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서 평창올림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염려가 있었다. 외국 선수들이 한반도 긴장 고조를 이유로 참가를 포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북한이 전격 참가키로 하면서 그런 우려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북한은 돌연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아닌 이슈메이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각국 지도자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비난하고 제재를 강화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드물어졌다. 훤칠한 미녀 여가수 출신 노동당 후보위원 현송월은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다. 그가 웃었는지 찡그렸는지, 식사 메뉴는 무엇이고 잠잔 곳은 어딘지, 어떤 말을 했는지가 내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미국 NBC 방송마저 앵커를 마식령 스키장에 보내 ‘평양올림픽’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 와중에도 북한은 틈틈이 한국 사회와 정부를 압박하면서 북한에 대한 비난과 압박에 제동을 걸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외무장관회의에서 강경화 외무장관이 한 발언을 핑계 삼아 현송월을 하루 늦게 보내고 아직 평양 선수단 버스가 평양에 있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런 북한에 대해 정부는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혹시라도 평창올림픽에 차질이 있을까 애면글면하는 모습이다.

최근의 상황 전개는 북한이 진작부터 평창올림픽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느낌을 준다. 적어도 몇 달 동안을 대남 전문가들이 모여서 올림픽 참가에 따른 온갖 변수와 상황을 예상하고 대처방안까지 꼼꼼히 마련했을 터다. 타이밍과 명분을 최대한 계산한 끝에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전격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선수를 치고 전광석화로 일을 진척시키고 있다.

북한이 대남관계를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남북관계가 아주 좋았을 때조차 그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연말에는 한 해 동안 벌어진 남북관계 이벤트를 한 달 넘게 점검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여기서 나온 반성과 수정 의견을 반영해 새해 계획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맞춰 남측 관계자들과 새해 행사계획을 짰다. 그렇게 마련한 행사가 드디어 북한에서 진행되면, 관계자들은 낮에는 행사를 진행하고 밤에는 그날 있었던 행사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회의를 심야에 몇 시간씩 하느라 잠도 자지 못했다. 그 회의에서 문제라도 지적되면 다음날 행사 때 북측 관계자들의 태도가 돌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낱 사소한 행사에도 그렇게 치밀하게 움직이는데 핵개발 완성을 눈앞에 두고 벌이는 ‘올림픽 참가 작전’이니 오죽하겠는가. 아마도 수십년 대남관계와 대외관계를 다룬 전문가들이 수십명, 수백명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면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지침을 만들면 이에 따라 현송월이든 리선권 회담대표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다.

이에 비하면 남측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엉성하다. 물론 정부도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참여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참여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청와대는 물론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들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상당한 준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큰 흐름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이런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 남한의 태도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북한은 대단히 현실적인데 비해 남한은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적이다. 북한은 대놓고 말할 정도로 목표와 의도가 선명하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올해가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임을 내세우고 남북관계 회복과 핵무장 박차를 동시에 선언했다. 만에 하나 자신들의 의도를 오해할까 싶어 자기들 뜻과 의도에 맞지 않는 상황 변화에는 일일이 제동을 건다.

이에 비해 남한 정부는 행여나 일을 그르칠까 걱정하면서 속시원히 말도 못한다. 목표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완화, 나아가 북한의 핵포기가 목표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 대표가 회담에서 ‘핵’을 언급이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회담을 깰 것처럼 험악하게 군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가 한국 정부의 행보를 주시한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북한을 설득해 핵을 포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거의 없다. 그러니 정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해 말을 돌리고, 국내외 비판 세력들에게 빌미를 준다. 가혹하지만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마저 피하기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모처럼의 대화 계기가 혹시라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우리 모두 마음 졸이고 있지 않으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가 두 달 뒤, 세 달 뒤에도 의미가 있을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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