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머리만 있고 허리는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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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01-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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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육정수칼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새 2년차로 접어들었다. 9개월 가까이 지났으니 이제는 국민에게 어느 정도 안정감을 줘야 할 때가 됐다. 하루하루 익숙한 느낌으로 아침을 맞아 일상생활을 시작할 때도 됐다. 그런데 아직도 자고 나면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람은 누구나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은 본능이 있지 않은가 싶다. 우리 헌법은 정부가 그런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존중하고 실현시켜줄 책무가 있다는 기본 정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큰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침 방송 뉴스를 틀거나 신문을 펼치기가 두렵다. 이 정부가 국민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남북한 문제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선언한 문대통령을 믿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험준한 산악의 비포장도로를 폭주하는 ‘버스’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을 보면 승객들을 책임지고 안심시켜줘야 할 안내원은 운전사 눈치만 살피는 격이다. 장관들조차 자기 분야를 책임지고 국민에게 발표하기가 어렵다. 각 부처는 들러리를 서다가 국민의 반응이 안 좋다 싶으면 청와대로부터 대신 야단이나 맞을 뿐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의 권한 개편안 발표장에는 청와대만 있었을 뿐 해당기관은 뒷전에 머물러야 했다. 오직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단독 발표만 있었다.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도 나름의 의견이 있을 법한데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검찰, 경찰의 상위기관인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장관마저 그랬다.

이런 발표 형식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이 담당 장관들을 제치고 대(對)국민, 대(對)언론 발표를 하는 것부터 비정상이다. 해당 부처 및 청(廳)의 의견을 제출받아 검토라도 해봤는지 모르겠다.
보도에 의하면 검찰의 권한 축소에 대한 검찰 측 의견을 수렴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상급기관인 법무부가 수용했다. 검찰은 별도로 독자적 의견을 낼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수용했다’, ‘의견을 낼 권한이 없다’는 답변은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자백과 다름없다. 검찰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는 ‘검찰은 정치권력의 이해 내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검찰권을 악용해 왔음’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검찰권의 악용 사례가 더러 있었다 하더라도 검찰 조직을 싸잡아 범죄단체처럼 규정한 것은 도(度)가 지나쳤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간부들은 문 대통령이 심사숙고해서 임명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의견까지 무시한다면 청와대가 방대한 정부 조직 전체와 업무를 어떻게 꾸려갈 심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검찰 내부의 불만이 점점 커질 경우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걱정이다.

이번 ‘권력기관 개혁방안’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對共)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안보수사처 신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약칭 공수처)를 별도 수사기관으로 신설하며 △검찰의 1차 수사지휘권은 대부분 경찰에 넘기고 특별수사와 기소권(起訴權) 및 공소(公訴)유지권만 남기는 것 등이다.

결국 국정원과 검찰의 고유권한을 축소하고, 경찰의 권한은 대폭 확대해 ‘공룡 경찰’로 만드는 셈이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지방경찰로 이원화할 경우 우선 인력 확보예산이 부수적으로 크게 늘어날 소지가 있다. 또한 검찰보다 상대적으로 권력에 더 약한 경찰의 속성상 권력의 충견(忠犬) 역할과 선거 개입의 위험성까지 커질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면서 수사기능만 분리해 보내겠다는 것은 간첩수사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의 누수(漏水)가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장기간 유지해온 외국 정보기관들과의 네트워크도 상실될 위험이 크다. 오죽하면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가 우려를 표명하는 신문광고를 냈을까.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얘기다.
3개 기관 개편안은 해당 부처의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여 운영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국정을 사사건건 해당부처를 찍어 누르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각 부처가 보다 나은 방안을 내놓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로봇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문정인 청와대 특보의 입씨름을 놓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송 장관의 발언내용을 ‘경고’한 것이라든가, 최근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비트코인 대책 발표 내용이 현 정권 지지자들의 반발을 사자 청와대가 그 내용을 부인해버린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사례다.

청와대가 관여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반응이 안 좋으면 그 책임을 해당 부처로 떠넘기는 처사는 졸렬한 것이다. 이렇게 당하고 나면 해당 부처는 적극적인 정책 수립을 주저하고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게 될 것이 뻔하다. 이는 공직자들이 일은 하지 않으면서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봉급만 타먹는 식충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머리인 청와대만 움직이고 허리 역할을 하는 각 부처는 부동자세를 취한다면 역(逆) 피라미드 모양의 비효율적인 정부가 되어 결국 정권의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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