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물신불사(物神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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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8-0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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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머니(Money)'인가.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도 결국 돈타령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70편 열전에서 69번째가 '화식(貨殖)'이다. 바로 재물을 늘린 거부(巨富)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대적으로 보면 재벌열전(財閥列傳)이다. 고매한 선비, 웅지를 품은 영웅, 기개에 찬 협객을 다룬 사마천이지만 역시 ‘돈의 맛’을 아는 중국인이다.

중국어로 생의(生意)는 장사나 비즈니스를 뜻한다. 생각이 난다면, 돈 버는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던가. 새해 인사도 '궁시파차이(恭喜發財)'다. 큰 돈을 벌라는 축원이다. 줄여서 '파차이(發財)'라고 한다.

사마천은 “천금의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운을 뗀다. “백성은 상대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 많으면 하인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를 꿈꾼다고 한다. 전형적인 물신(物神) 사상이다.
특히 부자가 되는 데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에 정해진 주인이 없다고 했다. “농부는 양식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자재를 공급하며, 장인은 물건을 만들고, 상인은 유통시킴으로써 돈을 번다”고 했다. 거만(巨萬)의 부(富)를 쌓은 인물로 농민·도굴꾼·도박사·행상·술장사·대장장이·식당·수의사를 소개한다. 한마디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큰 부자가 되는 첩경은 상업이라 했다. “부자가 되는 길에는 농업이 공업에, 공업이 상업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업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간파했다. “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비싸질 조짐이며,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각자 생업에 힘쓰면 물건을 부르지 않아도 밤낮으로 모여들고, 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만들어 낸다.” 바로 시장경제 이론이다.

그는 시세차익을 자연법칙으로 봤다. 예컨대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을 때 사들이고, 사들일 때 판다.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옷은 판다.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풀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 판다”는 것이다. 백규(白圭)라는 재벌 이야기인데, 그는 “사업은 마치 이윤과 여상이 계책을 꾀하고, 손자와 오자가 군사를 쓰고, 상앙이 법을 시행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 듯하지만, 현대에는 규제 대상이다. 바로 ‘독점’과 ‘매점매석’이다. 원조는 춘추시대 월(越)의 재상 범려(范蠡)이다. 구천(句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최후 승자가 되자, 일등공신인 그는 미녀 서시(西施)와 함께 숨는다. 나중에 큰돈을 벌어서 도(陶)의 주공(朱公)이 된다. 비결은 똑같았다. “물자를 쌓아 두었다가 시세를 보아가며 내다 팔아 이익을 거뒀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19년 동안 세 차례 천금을 벌었다.

독과점 금지와 공정거래를 내세운 요즘 세상에선 어떨까. 백규와 범려 같은 부자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할까.

지난 2015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이 연세대에서 강연했는데, 요지는 ‘경쟁이 아니라 독점이 기업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구글(Google)의 경우 검색 엔진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데 마치 독점이 아닌 듯 위장한다는 주장이다. 휴대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애플 아이폰과 경쟁하고, 무인차 시스템으로 자동차 메이커와 경쟁하는 듯 호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완전경쟁에서 기업은 돈을 벌 수가 없고, 독점 상황에서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경쟁은 패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실패한 기업은 모두 엇비슷한데, 성공한 기업은 이유가 제각각”이라고도 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을 비튼 것이다. 원전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각”이다.

여전히 생업보다 생의(生意)인가. 너도나도 큰돈을 꿈꾼다. 정치도 돈 바람에 우왕좌왕이다. 노자는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했다. 텅 빈 태허(太虛)야말로 만물을 생성하는 대자연의 본연이라고. 하지만 이들에겐 꽉 찬 물신불사(物神不死)가 본원일까. 한때 “부자되세요~”란 광고가 유행했다. 돈 바람에 재벌그룹 사장 출신이 대통령도 됐다. 그가 얄팍해진 국민 주머니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신의 주머니만 채웠다.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옳은 길이다. 의리(意利)는 이익을, 돈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다스부터 국정원 특별활동비까지 논란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측근들은 의리(義理)일까, 의리(意利)일까. 가물한 물신(物神)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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